그리고 오하우 정식
박물관 견학이 끝나고 전시실을 나서니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우포포이가 민족의 공생을 상징하는 공간임에도 일본은 이웃 민족들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은 딱히 없었던 것이다. 과거의 잘못에 사과를 할 순 있어도 결코 잘못을 돌아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은 이웃 민족들과 잘 지내길 원하고 평화를 갈구한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행동인가? 역사는 제대로 배우지 않으니 죄책감도 없고,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 의식엔 진전이 없다.
자신들이 탄압했던 아이누 문화를 이렇게 나라에서까지 세워가며 조성한 것은, 역시나 결국 러시아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쿠릴 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되찾기 위한 야욕인 것이다. 일본 정부의 속내는 투명했다. 하지만 이런 국립 시설이 없었다면 사라져가는 아이누의 문화를 개인이 어떻게 이처럼 홍보할 수 있을까. 씁쓸함을 뒤로한 채 흐렸던 날씨는 아까보다 구름이 걷힌 듯했다.
치키사니 광장 쪽으로 가자 큰 호수 옆에는 치세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포포이가 생기기 이전엔 이 전통가옥들을 비롯해 거대한 코탄코로쿠르(kotan-kor-kur, コタンコㇿクㇽ)라는 촌장 동상을 자랑으로 한 작은 민속촌 "포로토 코탄(poro-to-kotan, ポロトコタン)"이 있었다고 한다. 직역하면 "큰 호수 마을"이 되겠다.
이번에 처음 오는 곳이지만 이전에 종종 들은 게 있어 포로토 코탄이 더 익숙하게 들렸는데(실제로 바로 옆이 포로토 호수이기 때문에 이 이름이 더 직설적으로 느껴졌다.) 팸플릿을 보니 테에타 카네 안 코탄(teeta kane an kotan, テエタ カネ アン コタン)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국어로 옮기면 옛 모습의 마을, 아이누의 전통적인 마을 모습을 재현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teeta 테에타 - 옛날
kane an 카네 안 - ~하고 있는
kotan 코탄 - 마을, 집락
넓은 호수와 코탄의 풍경이 기분 좋게 어우러져 있었다. 포로토 코탄이었을 시절엔 저 전통가옥 안에 모여서 민속공연을 했다고 하는데, 현재 우포포이가 개관한 이래론 좀 더 넓은 공연장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된 듯하다.
그리고 한때 포로토 코탄의 자랑이었던 거대한 코탄코로쿠르 동상은, 연식이 꽤 된 만큼 붕괴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2018년 즈음에 해체됐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봤는데 직접 보진 못한다니 조금 아쉬웠다.
코탄의 맨 끝 치세에서는 아이누의 의복을 직접 입어볼 수 있는 체험장이 마련돼 있었다. 치지리나 카파라미프 같이 다양한 종류의 아미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루운페와 친파오리(チンパオリ)를 입어 보았다. 친파오리는 아이누의 의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의례복인데, 일본 무장들이 자주 입는 소매 없는 웃옷 진바오리(陣羽織)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누는 진바오리를 교역으로 손에 넣고 예복으로 입었다고 한다. 이러한 옷을 입은 모습은 아이누의 촌장 등을 묘사할 때도 꼭 등장한다. 접하기 어려운 만큼 아미프의 시착 체험은 귀중했다.
대부분의 견학을 마치고 나서 매표소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 광장 쪽엔 식당과 카페가 있었고, 홋카이도까지 와서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아이누의 전통 국 요리인 "오하우(ohaw, オハゥ) 정식"을 판매하는 카페 림세에 가보는 것이다.
연어가 들어간 쳅오하우(cep-ohaw, チェㇷ゚オハゥ) 정식은 1,200엔(약 한국 돈 12,000원)이었다. 가격대는 좀 있지만 아이누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같이 나온 쌀밥에는 기장이 섞여 있었고, 반찬 4가지가 함께 나왔다. 반찬은 왼쪽부터 순서대로 "섞은 것" 이란 의미의 라타시켑(rataskep, ラタㇱケㇷ゚), 시샤모 조림, 다시마 소스의 시토, 그리고 날치알이 섞인 단무지인 듯했다. 또 야초차(野草茶)도 있었다.
이 정식의 중심인 쳅오하우에는 연어와 함께 당근, 감자, 무 등의 채소가 뭉텅뭉텅 들어가 있었다. 푹 삶겨서 젓가락으로도 쉽게 잘렸다. 국물은 다시마나 소금으로 육수를 낸 듯했는데 맛이 맑은 동태국과 비슷했다. 특이한 건 당근 맛이 생각했던 것과 좀 달랐던 것 같다.
다시마 시토는 대개 경단으로 번역되지만 찹쌀로 빚은 찹쌀전 같았다. 한국어로 열빙어라고도 하는 시샤모는 좀 큰 멸치 조림이 생각났고, 라타시켑은 언뜻 모습은 단호박 샐러드와 닮아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채소나 산나물, 콩 등을 버터랑 섞은 요리인 듯했다. 버터가 없을 시절엔 생선기름이나 비계로 섞었다고도 한다. 이름 모를 풀 향기가 썩 입맛에 맞진 않았다.
아이누 요리는 한식에서도 이따금 찾을 수 있는 익숙한 맛이 나다가도 한 번도 못 느껴본 생소한 맛이 났다. 자극적인 맛은 없었고, 우즈벡이나 태국, 중국 요리에서 나는 향신료 맛도 없었다. 향이 강한 게 있다면 어떤 산나물이 들어갔을지 모를 라타시켑에서 났다. 완전한 정통 방식이 아닌 현대식 로컬라이징이 가미된 듯했는데도 또 생각나는 맛은 아니었다. 이 가게만의 특징일 수도 있으니까, 다른 요릿집을 또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카페 림세에서 나오며 마침 다른 한국인 여행객 가족이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있길래 나도 따라 비슷한 걸 주문했다. 시로이 코이비토 아이스크림이었다. 삿포로의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에서만 판다고 들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아무 곳에서나 파는 기분이 들었다. 맛은 평범했고 맛있었다.
이제 삿포로로 가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쓰다 보니 하루가 무척 긴 것 같다.
2023.04.05 가다
2023.04.21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