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피리카코탄
부슬부슬 내린 비에 적셔진 우산을 털고 우산꽂이에 우산을 꽂았다. 센터 오른쪽의 엘리베이터 옆엔 "포로 톤코리(큰 톤코리)"라는 이름의 조각상이 있었다. 우포포이에서 연주도 들었던 그 현악기 톤코리였다. 센터의 상징물이었지만 다소 육중한 모습에 작품명을 보기 전까지는 톤코리인지 알 수 없었다. 악기보다는 토템을 닮은 이 톤코리에는 조각가가 보이고자 한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전시실을 먼저 구경하고 싶었던 탓에 설명을 찬찬히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관람 경로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작은 자료실 겸 체험관이 있었고, 맞은편엔 전시실이 있었다. 체험관에서 할 수 있는 전통의상 아미프의 시착 체험이나 전통공예 체험 등은 모두 무료였지만, 전시실은 관람료 200엔을 받고 있었다.
앞서 갔던 박물관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에 전시된 전시물들은 대부분 복제품으로, 직접 들어보고 만져보는 게 가능했다. 체험 위주의 개방적인 전시실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아미프와 민구들은 비라토리쵸의 니부타니 박물관만큼 풍부했다.
박물관을 돌아보며 상대적으로 많이 만났던 옷들인 치지리, 카파라밉, 치카라카라페, 루운페 말고도 다양한 의복이 전시돼 있었다.
그중 한챠(hanca, ハンチャ)는 주로 비라토리 지방 남성들이 작업복으로써 일상적으로 걸쳤던 의복이었다. 무명천과 감색 원단으로 만들어진 옷으로, 누비옷처럼 실을 기워 튼튼하게 만들었다. 해지거나 뜯어지면 꿰매서 더 오랫동안 입었다고 전해진다. 기모노의 종류 중 하나인 한텐(はんてん)과 같은 구조를 하고 있지만 소매가 없는 것도 있고, 길이는 기모노보단 짧으며 무릎이 가려지는 정도가 일반적이다. 겨울에는 방한용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니부타니 박물관에서 봤던 물고기 가죽 옷도 전시돼 있었다. 쳅우루(cepur, チェㇷ゚ウル), 사할린 아이누어로는 카야하(kayah, カヤㇵ)라고 하는 이 어피옷은 어획량이 높은 사할린에서 주로 연어나 송어 등의 가죽을 사용해 만든 것이다. 등지느러미에 난 구멍들은 다른 물고기 가죽을 덧대어서 막았는데, 그로 인해 옷 곳곳에 타원형의 무늬가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또 소매 끝부분이나 옷 앞섶 같은 곳에는 무명천으로 문양이나 자수를 놓았다. 이따금 유리나 금속제 구슬을 꿰매 장식하기도 한다.
만주 북부에 흐르는 아무르 강 유역이나 사할린 북부에 분포한 민족들도 이 같은 어피를 가공하는 문화를 가졌다고 한다. 아이누도 북방의 다양한 민족들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어피를 부드럽게 가공해서 활용하는 것보다, 대체로 신발이나 가방 등의 소재로써 사용되는 것이 독특하게 느껴진다.
또 특이한 재료로는 야라스(yarsu, ヤㇻス)라는 나무껍질을 재료로 한 냄비가 있었다. 자작나무나 참피나무의 껍질, 송진, 난티나무 실을 사용해서 만든 냄비로 나무껍질을 천천히 불을 쬐며 서서히 구부려 만드는 것이다.
이 야라스는 취사를 위해 쓰였지만, 역시나 재료가 수피인 탓에 가열할 때는 주의가 필요했던 듯하다. 가열 시에 야라스가 타지 않도록 물이 끓을 때까지 약한 불로 쓰거나, 구운 돌을 물 안에 넣어 끓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해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나무를 재료로 한 냄비는 세계 곳곳에서 이따금씩 보이는 듯하다. 독자적인 주조 기술이 부족해 교역에 의존했던 아이누에게선 철제가 귀하기 때문에 대체용으로 사용된 게 아닐까.
다양한 민구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고 무슨 명칭인지 보는 재미가 있었다. 종종 일본어에서 파생된 듯한 이름을 가진 것도 종종 있었는데,
주걱 - 일본어 헤라(へら), 아이누어 페라(pera, ペラ)
국자 - 일본어 히샤쿠(ひしゃく), 아이누어 피삭쿠(pisakku, ピサック)
특히나 기억에 남는 건 이 두 가지가 되겠다.
2023.04.06 가다
2023.04.25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