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성질, Yes 여유
어머니의 그림 속에는 봄의 설렘이 있다.
창이 달린 예쁜 모자를 쓰고, 봄빛을 담은 옷을 차려입은 아가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오늘 하루를 향한 기대와 두근거림이 그 얼굴에 가득 넘친다. 누군가와의 설레는 만남인지, 아니면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울 오늘 하루가 그저 기다려지는 것인지. 굳이 이유를 알 필요는 없다. 그저 웃고 싶은 날이 있고, 오늘이 바로 그런 기분 좋은 날인 것 같다. 강아지와 나란히 걷는 산책의 모습도 그 마음과 닮아 있다. 서두르지 않는 느긋한 발걸음, 화사하게 피어난 봄나무 아래,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가벼워지고, 괜히 포근해지는 이 기분이야말로 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봄다운 선물이다.
산책, 혹은 나들이. 이 단어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말이 있다. 바로 '여유'다. 산책은 목적이 없다. 속도도, 방향도, 반드시 도달해야 할 곳도 없다.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걷는다. 그렇게 걷다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미처 보지 못했던 꽃과 나무, 익숙한 골목의 낯선 냄새, 무심히 서 있는 돌 하나. 이 모든 것을 다시 보고, 느끼게 하는 힘이 '여유'다.
우리는 너무 속도와 방향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누가 먼저 그곳에 닿는지를 겨루며 생활한다. 만약 모두가 저마다 다른 곳을 바라보고, 각자의 속도로 걸어간다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일등이다. 아니, 일등이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 없다. 물론 현실이라는 땅을 딛고 사는 이상, 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산책을 하는 동안만큼은, 그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싶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는 시간. 존재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바로 이 순간에 있다. 그것이 '여유'가 주는 힘이고, 그 힘이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얼마 전, 아내와 다툰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휴대폰 배경화면에 짧은 문구 하나를 적어 넣었다.
"No, 성질 / Yes, 여유"
돌아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여유 없이 살아왔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짜증을 냈고, 집에서조차 효율과 생산성을 따졌다. 가장 편안해야 할 공간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그런 내 모습이 같이 사는 이에게는 얼마나 불편했을지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나도 나의 그런 모습을 인지하지 못했다. 한 방향만 바라보며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나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알았다. 나에게는 산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변을 바라보는 것, 함께 속도를 맞추는 것, 잠깐 멈춰 꽃 냄새를 맡는 것, 그리고 길가의 바위 하나를 무심히 손으로 만져보는 것. 이런 작은 순간들이 지금 나에게 필요함을 느꼈다. 나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았다.
삶에는 의식적으로도 산책이 필요하다.
명상을 하고, 일과 거리를 두는 시간을 갖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집 안에서, 차 안에서, 일하는 틈틈이 잠깐 고개를 들어 내 주변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주변을 바라보는 그 짧고 작은 순간들이 우리에게 여유를 주고, 빽빽하게 채워진 일상 속에 작은 틈이 되어준다. 창문의 작은 틈으로 스며드는 빛이 지친 하루를 견디고, 잊고 있었던 살아있음을 깨우는 여백임을 안다.
산책은 삶의 틈을 만든다.
산책은 삶의 여백이다.
그 여백이 우리를 숨 쉬게 한다.
어머니의 봄처녀, 봄 나들이 그림을 바라보며 잠시 나만의 여백의 시간을 가졌다. 땡큐 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