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春)

봄은 견딤일까? 성취일까?

by 산율

어머니는 유독 봄을 좋아하신다. 봄이 오면 어머니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겨우내 움츠렸던 몸짓에도 활기찬 에너지가 넘쳐난다. 그 에너지는 곧장 화단으로 향하고, 겨우내 흙 속에 잠들어 있던 화단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시장에서 사 온 형형색색의 꽃들로 화단과 집 안팎을 채우신다. 이런 이유로 동네 분들은 어머니의 집을 ‘꽃집’이라 부른다.


어머니 집에 드디어 봄이 왔다.


어머니의 화폭 속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았던 주인공, ‘꽃’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며칠간 기승을 부리던 꽃샘추위가 물러간 자리에 아파트 화단에도 꽃들이 보인다. 피는 못 속이는 것인지, 나도 모르게 가던 길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서 향긋한 봄냄새,꽃냄새가 난다. 겨울 산책보다 봄 산책이 유독 가볍게 느껴지는 건, 비단 얇아진 옷차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음의 무게마저 한결 가벼워지는 것, 그것이 봄 산책이 주는 묘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봄은 곧 ‘견딤’이다. 매서운 칼바람과 하얀 눈발을 묵묵히 버텨낸 생명만이 받을 수 있는 훈장이고 선물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생에 봄날이 왔다"는 표현 속에는, 차마 다 말하지 못한 인고의 시간이 숨어 있다. 그 견딤의 깊이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다 알 수는 없지만, ‘봄날이 왔다’는 말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알 수 없는 안도와 평안을 느낀다.


또 봄의 꽃들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아무리 공을 들이고 정성을 쏟아도, 어머니의 화단에도 우리 집 아파트 화단에도 꽃은 오직 ‘자기만의 시간’에 맞춰 핀다. 타인의 시선에 욕심내지 않고, 계절의 속도를 앞지르려 서두르지도 않는다. 묵묵히 제 시간을 견뎌낸 자만이 누리는 당당함으로 꽃을 피운다.


그러나 그 견딤의 곁에는 늘 지침과 낙담이 따라붙는다. 빨리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욕심도 생긴다. 어머니의 그림 속 꽃들과 아파트 화단의 작은 꽃들을 보며, 그 견딤에 지쳐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시간을 거스르려 했던 나의 크고, 작은 욕심이 보였다. 인생이 100세라면 이제 반환점을 돌아가고 있는데, 시간에 대한 나의 탐욕은 끝이 없다. 남보다 먼저 피고 싶고, 더 오래 피고 싶고, 더 화려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 이 부질없는 욕심은 언제쯤 사라질까? 한 송이 꽃으로 수많은 꽃과 어우러지면서도, 묵묵히 자기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저 한 송이 꽃의 모습이 사실은 내 모습일 텐데, 오래 피지 못할까 봐, 더 예쁘지 못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내려놓고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나의 꽃을 기다려야 하는 나이임에도, 나는 여전히 계절을 앞서가려 애쓰고 있다.


이 봄날은 또 금방 지나갈 것이다. 꽃향기는 어느새 짙푸른 녹음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하지만 환경이 척박하든 시절이 좋든, 겸손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견딤’ 그 자체가 삶의 모습이다. 그 견딤의 과정을 통과한 후 비로소 각자만의 고유한 향과 색을 지닌 꽃으로 태어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인생이라 부른다.


문득 나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슨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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