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침묵을 싫어한다.
어머니 화폭에서 만들어진 집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온화한 색채가 지붕을 덮고 있다. 그 위로는 세상의 풍경을 수줍게 내다보는 작은 창문들이 뚫려 있다. 앞마당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제각각의 빛깔로 피어나 집을 호위한다. 하지만 이 그림들을 볼 때마다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그림 속 풍경은 평생 어머니가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공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고, 어머니가 살아오신 진짜 '집'의 모습은 이토록 평온한 정물화가 아니었다. 수많은 식구가 한데 엉켜 살며 비좁은 틈새마다 서로의 어깨가 부딪히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가며, 밥 짓는 냄새와 누나들과 내가 만들어 내는 끝도 없는 소음에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지독한 동적인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왜 당신의 붓끝에서 저토록 고요하고 쉼이 느껴지는 집을 그리신 걸까? 아마도 평생을 소란스럽고, 분주한 삶을 사신 어머니는 쉼과 평온함으로 넘쳐나는 집을 바라셨던것 같다.
집은 침묵을 싫어한다.
종종 소음이 가득 찬 도시를 떠나는 상상을 한다. 한적한 숲 속이나 파도가 보이는 바닷가에 소박한 집을 짓고, 아무런 방해 없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삶. 그것은 현대인들이 품고 사는 가장 보편적인 그림 중 하나다. 층간소음이 이웃 간의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이 되고,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조차 아파트의 '민원'의 대상이 되는 삭막한 아파트 공화국에서, 고요함은 곧 예절이고, 품격이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그 '한적함'과 '조용함'을 집도 좋아할까? 집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무런 기척이 없는 상태란 곧 버려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조용하고 평온한 집은 얼핏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서늘한 슬픔이 고여 있다. 집의 진짜 생명력은 사실 우리가 그토록 밀어내려 애쓰는 그 '소음'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은 숨을 쉬지 않는 거대한 석조물에 불과하다. 온기 없는 벽돌과 콘크리트가 덩어리 진 차갑고 무거운 덩어리일 뿐이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데이터가 보여주는 논리에 파묻혀 생활하고 집으로 향한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 때 쏟아지는 아이들의 소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아이들의 소리가 쉼이 아닌 또 다른 일, 육아로 다가온다. 하지만 퇴근 후 돌아온 집에서 아무 소리도 느끼지 못할 때는 힘듦을 떠나 두려움이 더 든다. 집의 살아 있음, 생명력을 느낄 수 없다. 물론 아이들이 거실을 운동장 삼아 뛰어다니며 만들어내는 쿵쾅거림은 아랫집 눈치를 보게 만드는 골칫거리다. 하지만 그 시끌벅적함이야말로 집이 가장 건강하게 숨 쉬고 있다는 신호다. 부부 사이의 다정한 대화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날 선 감정이 부딪히는 다툼의 소리조차 침묵보다는 백번 낫다. 다툼 뒤에 찾아오는 화해의 목소리, 미안함이 섞인 감정들 그리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이어지는 일상의 대화들 이 소리들은 집에게는 혈관에 피를 돌게 하는 펌프질이다.
어머니 그림은 여전히 조용하고 고요하다. 평온한 그림너머 부엌에서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 마당 끝에서 노는 자식들을 부르던 소리, 그리고 담장 건너 마당에서 이웃들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던 그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들린다. 어머니의 그림이 이토록 따뜻하고 평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지 색감이 고와서가 아니다. 그 움직이지 않는 집으 모습에서 어머니가 오랜 세월 동안 온몸으로 겪어낸 '삶의 소리'들이 켜켜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소음 가득한 현실을 살아내셨기에, 역설적으로 저토록 평온한 집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림 속의 집은 소음이 없는 곳이 아니라, 모든 소란함을 사랑으로 품어 안은 집이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침묵은 평화도 아니다. 침묵은 단절이다.
적어도 집에서는 무례하고, 가장 싫어하는 손님이다.
집은 침묵을 먹고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내뱉는 거친 숨소리,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다정한 말소리, 간식 하나를 두고 더 많이 먹겠다며 다투는 아이들의 불협화음 그리고 함께 울고 웃으며 만들어내는 일상의 소란함을 먹고 자라며 건강해진다. 오늘도 퇴근길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를 반기는 것이 차갑고 적막한 고요가 아니라 가슴 벅찬 소란함이기를 바란다. 집이 가장 싫어하는 침묵이라는 손님이 감히 발붙일 틈이 없도록, 더 많이 말하고 더 크게 웃으며 이 소중한 공간을 사람의 숨결로 채워나간다.
집은 침묵을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