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無題)Ⅱ

아빠의 낡은 정답지에서 찾아보는 아들의 질문

by 산율

초등학교 6학년이 된 큰 아들이 저녁 늦게 영어 학원에서 돌아왔다.


아들: "아빠, 나 영어학원 진짜 그만 다니면 안 돼요? 일 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이젠 정말 가기 싫어요. 내용도 하나도 모르겠고... 그냥 중학교 가서 배우면 안 될까요? 친구들하고 놀 시간도 아예 없는데, 난 공부보다 친구들이랑 노는 게 훨씬 좋단 말이에요."

아빠: "공부를 시작했으면 어느 정도 결과는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네가 학원 가기 싫은 이유가 단지 내용이 어렵고 이해가 안 돼서 힘든 거라면, 그만두는 게 답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단순히 어렵고 하기 싫다는 이유로 중간에 놓아버리는 건 아닌 것 같아."

아들: "아니요, 그냥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좋다니까요. 어차피 뭘 하든 먹고살 순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까지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빠: "뭘 하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들: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딱히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뭐, 어떻게든 그냥 살 수는 있지 않을까요?"

아빠: "그냥? 아직? 너 나이키 광고 카피인 'Just Do It' 알지? 때로는 그냥 하는 그 행동 자체를 통해서 목표나 의미를 찾아가야 할 때도 있는 거야. 아빠 생각엔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계속 이어가는 게 필요해 보여. 단지 친구랑 놀고 싶어서, 혹은 공부가 좀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건 설득력이 부족해."

아들: "요즘은 챗GPT한테 물어보면 다 나오잖아요. 지금 하는 공부가 결국 수능이나 대학을 위한 거라면, 난 대학 가고 싶은 생각도 없거든요."

아빠: "그래! 그런데 '아직', '그냥' 같은 막연한 말들만 하면서 무조건 안 하겠다고 하는 건 아빠가 이해하기 힘드네. 네 생각처럼 삶은 그냥 막연하게 살아지는 게 아니거든. 삶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결과물이야. 지금 아빠와 엄마의 모습도 우리가 살아온 결과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도 그분들이 지나온 시간의 기록이지. 우선 네가 왜 학원을 안 가고 싶은지 네 마음은 알았으니까 엄마랑도 이야기해 볼게. 하지만 단지 힘들고 싫다는 이유로 중단하는 건 아빠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구나."

아들: "넵. 알았어요."

세상에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나조차 그 나이 때 책상 앞보다는 운동장이, 교과서보다는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이 좋았다. 친구와 놀고 싶은 아들의 마음은 본능이다. 그 당연한 마음 앞에 나는 '영어'와 '수학'이라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만 했다.


학원을 가기 싫다는 아들과 한참을 실랑이하고 돌아앉아 내가 강조한 그 지식들이 정말 아들의 앞날에 정말 필요한 지식들인지 나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지식을 소비하는 방식이 초 단위로 변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노동을 넘어 육체적 노동도 대신하려고 하는 지금, 내가 자라온 방식 그대로 아이를 몰아세우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지?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나에게는 나름의 정답 지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태어난 시기가 다르고,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갈 아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오래되고, 형편없는 오답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사교육은 이미 거대한 생태계가 되어버렸다. 자원은 부족하고 경쟁은 치열한 이곳에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쏟아붓는 교육은 '성장'을 위한 동력이 아니라 삶을 짓누르는 '압박'으로 작동한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만약 목적이 그저 '경제적 부'라면 그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차라리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이 ROI(투자 대비 효율)가 훨씬 높을지도 모른다. 혹은 올바른 인성과 시민 의식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국어, 영어, 수학 문제를 하나 더 맞히기 위해 아이의 저녁 시간을 저당 잡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교육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늘 이 지점에서 답이 없는 무한 루프에 빠진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부모의 등 뒤에서 속삭인다. "남들 다 하는데 너만 안 해도 되겠어?" 이 목소리를 이겨낼 철학이 지금 우리 부부에게는 없다.


결국 답은 부모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과 결단력에 달려 있다. 부모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 그 파동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자녀들이다. 아빠인 내가 헤매고 있기에, 아들은 가도 되지 않을 길을 억지로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른 방향으로 양육하는 지혜로운 아빠가 되고 싶었지만, 오늘 아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나는 나의 밑천을 보았다. 확고한 교육철학도 없이 그저 세상의 속도에 뒤처질까 전전긍긍하는 근시안적인 아빠. 그 초라한 모습에 스스로 실망감이 몰려왔다.


아들은 "그냥 살 수 있지 않냐고?"라고 물었다. 나는 '그냥'이라는 말이 싫었다. 너무 무책임한 단어이기에 그 단어가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아직 어린 아들에게 "삶은 결과물"이라는 거창한 말로 아들의 입을 막아버렸다. 하지만 어쩌면 아들은 미래의 결과보다 지금 이 순간의 '과정'을 더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그림에는 제목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내 아들의 그림에도 그 제목은 아들이 정하는 것이고, 만드는 것이다. 조금은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 응원해 주는 그런 아빠였으면 어땠을까? 그래 우리 함 재미있게 어떻게 노는 것이 더 좋을지 고민해 볼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아빠였으면 어땠을까? 후회가 된다.


현명하게 오늘을 즐기며,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아빠와 아들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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