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없는 사람에겐 고독을 처방할게요

by 박홍시

다 쓴 치약

스레드나 브런치에서 좀 티를 냈지만 얼마 전에 헤어졌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아이였는데, 가차 없이 차였어요.

구질구질하게 잡아보려고도 했는데 연락조차 받지 않습니다.

과정은 이랬습니다.

어느 날부터 너무 대답에 영혼이 없고, 들은 체 만 체 하고 만나자는 약속도 잡지 않길래 조금씩 불안해졌습니다.

며칠간 그 상태를 참다가 "날 좋아하긴 해?"라는 말을 던졌고, 그대로 그 아이는 3일을 잠수 탔습니다.

3일 동안 온갖 생각이 다 들고 손발이 덜덜 떨렸습니다.

3일이라는 시간 후 "우리 헤어진 거야?"라는 질문에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고,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습니다.

며칠간은 슬픔에 살았고, 또 며칠은 증오에 살았고, 그다음 며칠은 외로움에 살았습니다.

베개와 눈망울은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녀와의 카톡에 남은 '1'은 지워질 생각을 않았고,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너무 했던 거예요.

그녀와 만났던 초창기와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중환자의 링거처럼 온갖 정신병을 몸에 둘둘 꽂고 있었고, 눈은 생기를 잃었으며, 툭하면 울거나 침울해졌습니다. 몸은 또 어떤가요. 그래도 어디 가서 외모로 나쁜 소리는 안 듣던 제가 살은 뒤룩뒤룩 찌고, 면도도 잘 안 하고, 다크서클은 짙어졌습니다.


아마 그녀에게 저는 다 쓴 치약이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쭉쭉 나오고 양치질도 상쾌했던 치약이 점점 말라비틀어지고 잘 안 나오기 시작했던 거죠. 그렇게 아무리 짜도 나오지 않던 저의 여유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참 못됐어요.

아프다는 핑계로(물론 진짜 아프긴 했습니다) 밥 먹듯이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틀어박혔고, 마음에 불안감이 흘러넘쳐 따뜻한 말 한마디, 사랑한다는 말한마디 해주질 않았습니다.


같이 있어도 외로운 사람

가장 문제는 한 가지. 외로움입니다. 그녀가 있음에도 외로웠습니다. 그 누구도 저를 이해해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 살았습니다. 겹친 악재와 뜻하지 않은 지병들, 매일 같이 찾아오는 자괴감은 혼자가 아님에도 저를 외톨이로 만들었습니다. 곁에 그녀가 있음을 망각하고 매일 같이 외로움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럴수록 더 나돌아 다니고, 여자친구와 자주 만나고, 더 사랑해줘야 했음을 잊은 거죠. 자괴감, 자책 그리고 반추로 점철된 삶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 외로워졌습니다. 그녀가 떠났으니까요. 그간 내가 너무 싫어서 대부분의 친구들을 떠나보냈고, 이젠 내 옆을 지켜주던 마지막 친구도 떠나갔습니다. 외로움 그 자체가 되어 세상에 혼자 남겨져 소외감을 느끼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진짜 외로움이 엄습하자, 내가 배가 부른 놈이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이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는 의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의로 혼자가 되면 외로움, 자의로 혼자가 되면 고독입니다. 저는 그동안 외로웠어요. 나의 마음을 누군가가 채워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혼자가 된 지금은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고독을 처방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혼자입니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는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교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국 인간은 혼자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공감은 없습니다. 제가 그 사람이 되어보질 못하고, 또 반대도 안되는데 어떻게 완전히 공감하고 서로를 품을 수 있겠습니까. 다 적당한 선에서 공감하는 거죠. 그렇기에 혼자 잘 지낼 줄 알아야 하는 거예요.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공감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는 겁니다.


저는 이때까지 그걸 모르고 나를 구원해 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원자는 멀리 있지 않았어요. 거울 속에 있었습니다.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자신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장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랑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외로워진 지금 알았습니다. 사랑과 공감은 누군가 주는 것이 아닌 내 마음속에서 끌어올려야 하는 것임을.


저에게 고독을 처방했습니다. 더 이상 타의가 아닌 자의로 혼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혼자서 행복할 줄 알아야 하는 게 그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독해야 합니다. 심리학자 폴 틸리히는 "혼자 있는 고통은 외로움, 혼자 있는 즐거움은 고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녀가 떠나가며 저에게 준 마지막 선물은 고독입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저에게 선물을 주고 떠나는 것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저도 다시 사람을 만나고, 다시 사랑을 하고 어쩌면 결혼을 할지도 모릅니다. 과거와는 달라야 합니다. 그 모든 것에 중심에는 내가 있고, 고독으로 스스로를 가득 채워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내 물 잔을 비워 상대방을 적시는 게 아니라, 내 물 잔에서 차고 넘치는 물로 상대방을 적시는 것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물 잔은 고독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모두 고독하려고 노력합시다. 스스로가 온전하게 자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리는 근육과 뼈로 버티지만 마음은 고독으로 버티는 것이에요.


저는 혼X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혼밥, 혼영과 같이 무언가 혼자 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 혼자가 됩니다. 혼자 시내에 가서 쇼핑을 해보았습니다. 너무 어색해서 후다닥 살 물건만 사고 돌아왔습니다. 아직 대인기피도 남은 것 같고요. 그렇지만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덥고 습했지만, 내리쬐는 햇볕이 기분 나쁘지 만은 않았습니다. 가방을 메고 양손에 무언가 가득 든 채로 버겁게 걸어 다녔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결코 사고 싶었던 걸 사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제가 무언가 혼자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흥분시켰습니다. 그리곤 사온 책을 다 읽었습니다. 평소에 어떤 책을 완독 했을 때보다 훨씬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저도 이렇게 고독을 배워갑니다.


이제는 그저 조용히, 나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라 믿습니다.

아직 서툴고 부족하지만, 매일을 고독으로 채워가며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괜찮다고. 지금 이 길이 맞는 길이라고.

그러니 오늘도, 천천히. 아주 조금씩.

나를 사랑해 볼게요.

누군가 같은 이유로 아파하고 있다면, 당신도 기억하세요.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의 시작이니까요.

고독은 외로움이 아닙니다.

고독은 내가 나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입니다.


ps.

JM에게.

이런 말하기 미안하지만, 많이 사랑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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