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유라는 성벽을 뚫고 나온, 문장
*표지의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었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비유라는 성벽을 뚫고 나온, 문장
나의 수필에는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세계관이 없다고 느껴왔다.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한 공모전용 글이나 문예지의 규격에 맞춘 글이 아니라, 수필가로서 나의 내면을 관통하는 고유한 결이 담긴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만이 마음 한구석에 고여 있었다.
그 마음이 깊어지던 작년 12월 중순.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뒤로하고, 아이에게 남겨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네 편의 연작 수필을 연달아 적어 내려갔다.
호수와 파문으로 용서를 이야기했고,
썩지 못한 피트모스로 몸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설명했다.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염기서열을 병실의 기약 없는 기다림에 겹쳐 놓았으며,
반사되지 못한 빛의 재방출을 빌려 고통 이후의 삶을 기록했다.
이 글들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어떤 감정도 즉시 이름 붙이지 않고, 누구의 얼굴도 정면으로 등장시키지 않으며, 사건보다 구조를 먼저 불러낸다는 점이다. 나는 늘 상처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과학과 자연이라는 차가운 렌즈를 통해 그것을 응시했다. 비유는 나를 보호하는 가장 안전한 언어였다.
비유를 거부하는 투명한 문단들
그러나 글을 쓰는 동안, 어떤 문장들은 끝내 그 정교한 비유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비유를 거부하는 그 문장들이 모인 문단은 늘 직접적이었으며, 때로는 무례할 정도로 투명했다. 이를테면 이런 문단들이었다.
"이토록 정교한 파동을, 이토록 무거운 바위를, 인간의 힘으로 던질 수 있는가. 내 생의 가장 연약한 지점을 정확히 타격해 호수 전체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존재가 과연 사람일 수 있는가."
"나를 무너뜨린 것은 지나가는 행인의 장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호수의 깊이를 가장 잘 아는 이, 이 물의 농도와 빛깔을 설계한 이의 거대한 투석(投石)이었다. 그는 내가 가장 고요하기를 바랐던 순간에, 가장 아픈 무게의 돌을 던졌다."
"그가 내게 고요 대신 파문을 주었으므로, 나는 비로소 멈춰 있는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호수의 주인이 바다로 가기 위해 배운, 가장 아프고도 투명한 화해의 방식이리라."
호수와 파문의 유려한 흐름 끝에 걸린 마음, 빛의 재방출이라는 과학적 설명 뒤에 숨긴 절망, 염기서열의 구조를 논하던 병실의 긴 밤 끝에 터져 나온 진심.
나는 이런 문장들을 애써 작품 바깥으로 밀어냈다. 너무 세련되지 못해서, 혹은 직시하기엔 너무 아파서. 그러다 어느 날, 그중 하나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아, 나는 비유의 구조 안에서도 끝내 설명을 멈추지 못한 지점이 있구나.
* 결국 퇴고 끝에 저런 문단은 전부 삭제시켜 버렸다.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마침표가 되기까지
파일 속 어딘가에 적혀 있었지만 아직 ‘글’이 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던 문장들이 있다. 브런치의 서랍 속에도. 나는 그 문장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완곡한 말로 바꾸고, 상황을 덧붙여 톤을 낮추고, 다른 문장들 사이에 섞어 흐릿하게 만들려 애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옮겨 놓아도 그 문장은 형태만 바꾼 채 다시 돌아왔다. 그 문장을 빼버리는 순간, 신기하게도 글은 생명력을 잃고 멈춰버렸다. 비유는 공중에 붕 떴고, 이야기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문제는 표현의 기교가 아니라, 그 문장이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는 당위였다.
결국 나는 그 문장을 글 한가운데,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남겨두었다. 그 문장이 자리를 잡고서야 글은 아주 느린 속도로, 그러나 확실하게 마침표를 향해 나아갔다. 다른 어떤 설명으로도 덮이지 않고, 어떤 화려한 수사로도 대체되지 않는 그 문장 하나를 안고 나서야 비로소 한 편의 수필이 완성되었다.
이제 글을 시작할 때마다 나는 비슷한 문장들을 하나씩 만난다. 잘 쓰기 위해 골라낸 세련된 언어가 아니라, 아무리 밀어내도 끝내 빠지지 않는 정직하고 고집스러운 문장들이다.
비유라는 단단한 성벽의 틈새로 그 문장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한, 나의 글은 아직 완전히 접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