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은 초안들

— 수필, 현미경 아래에서가 완성되기 전의 기록

by 네로

*표지의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었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1. 문장 사이의 숨겨진 온도

현미경 아래에서 라는 수필을 적었습니다. 이 수필은 처음부터 지금처럼 차분한 글이 아니었습니다. 완성된 원고에는 나사와 초점, 냉동고와의 거리, 무언가를 닦아내는 동작들만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차가운 묘사들이 들어서기 전, 초안에는 전혀 다른 문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 겁이 났다.”

최종 원고에서 이 문장은 삭제되었습니다. 대신 나는 나사를 돌리고, 실험대를 닦고, 냉기를 묘사했습니다.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직접 꺼내는 대신, 그 두려움이 머물렀던 ‘동작’들을 길게 늘여 적었습니다.


2. 지워진 문장들이 머물던 자리

초안에는 이런 문장들도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그 균을 믿고 배양했다면, 누군가는 다쳤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판단을 믿었던 나 자신이 싫었다.”

이 문장들 역시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너무 직선적이었고,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었으며, 독자에게는 자칫 구구절절한 '설명'으로 읽힐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문장들을 지우는 대신, 실험 도구를 닦는 장면을 남겼습니다. 완성본에서는 ‘opportunistic(기회감염성)’이라는 단어가 조용히 걸려 있고, 손은 습관처럼 미동나사를 만집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3. 과잉이 선사하는 절제의 힘

사실 초안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판단’이 담겨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후회, 책임이라는 단어의 노출, 그리고 스스로를 변명하는 문장들까지. 나는 그 초안을 고치지 않은 채 따로 저장해 두었습니다. 다시 읽지는 않았지만, 삭제하지도 않았습니다.


완성된 현미경 아래에서 라는 수필은 지독하리만큼 절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 절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초안의 ‘과잉’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 뜨거운 문장들이 먼저 쏟아져 나왔기에 나는 비로소 차갑게 나사를 돌릴 수 있었습니다. 초안은 서투르고 때로는 과합니다. 그러나 그 과함이 없으면 절제 또한 태어날 수 없습니다.


4. 나를 지탱한 이름 없는 문장들

완성된 수필은 독자를 향해 있지만, 초안은 오직 쓰는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모든 초안을 억지로 다듬으려 하지 않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문장은 굳이 작품이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문장이 쓰는 동안 나를 지탱해 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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