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를 찍는 마음으로

- 완성이 아니라, 멈추지 않기 위해 쓰는 수필

by 네로

*표지의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었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완성된 글을 떠올리면 대개 매끄러운 결말이 먼저 보인다. 처음과 끝이 단정히 맞물리고, 읽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문장들. 어디에서 시작했고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는지가 분명한 글.


한동안 나도 그 형태를 따라가려 했다. 문장이 충분히 단단해질 때까지 고쳤고, 흔들리는 대목은 과감히 덜어냈다. 설명이 길어지면 줄이고, 감정이 과하면 눌렀다. 완성이라는 이름에 가까워질수록 글은 정돈되었고, 나는 안도했다.


그렇게 다듬은 글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은 생각만큼 가볍지 않았다. 할 일을 끝낸 사람의 표정이라기보다, 어딘가를 피해서 도망쳐 나온 사람의 기분에 가까웠다.


커서가 깜빡이는 화면 앞에 오래 앉아 있다가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노트북을 덮는 날이 있었다.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이 글이 충분히 '좋은지' 먼저 가늠하느라 한 줄도 시작하지 못한 날이었다. 완성을 먼저 묻는 순간, 쓰는 일은 어느새 심사가 되었다. 심사를 통과할 수 있는 문장만 남기려는 마음이 내 글의 첫 줄을 가로막았다.


그럴 때마다 수필은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식탁 위에 남은 빵 부스러기,

세탁기 속에서 돌아가던 둔탁한 소리,

병원 복도에서 한 번 더 울리던 호출음처럼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기어이 사라질 장면들.


그 사소한 것들을 붙잡아 문장으로 옮기는 동안 나는 잠시나마 제자리에 고여 있지 않았다. 글은 상황을 바꾸지 못하고 고통을 해결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문장을 적는 동안 시간은 한 칸 앞으로 밀린다. 그 작은 이동이 나를 하루 더 데려간다.


수필은 나를 단정하게 증명해 주는 보고서도, 어떤 깨달음의 요약도 아니다. 오히려 설명되지 않은 채 남겨두는 기록에 가깝다. 결론 없이 끝난 장면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 나중으로 미뤄 둔 질문들.


의미를 정리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결국 어딘가에 도달했다는 표식을 남기려 했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매번 닫히지 않았다. 어제의 생각은 오늘의 문장에서 수정되었고, 확신처럼 보이던 말들은 며칠 뒤 다시 흔들렸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표식을 남긴다. 완결을 선언하는 마침표 대신 다음을 허락하는 쉼표를.


이 문장이 충분한지 따지기보다 이 문장을 남겨도 괜찮은지를 묻는다. 완벽한 결론보다 이어질 가능성을 남겨둔다. 수필은 나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어딘가로 흘러가게 하는 좁은 길이다. 거칠고 투박해도 그 안에서 나는 멈춰 서 있지 않는다.


오늘도 마지막 문장을 단단히 닫기보다 다음 문장이 들어올 자리를 비워 둔다.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흐름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를 찍는 마음으로.

월,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