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변호하는 문단, 나를 드러내는 공백

by 네로

*표지의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었습니다(키워드: 멀리 보이는 바다, 풀내음이 날 것 같은 풀숲, 그리고 그 사이의 오래된 노트와 만년필).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문단이 길어지곤 한다. 처음부터 장황하게 쓰려던 의도는 없었다. 그저 내가 쓴 문장이 오해받을까 봐 한 문장을 더 보탰고, 그 문장이 다시 오해될까 봐 또 한 문장을 보충했을 뿐이다. 그렇게 쌓인 문단은 어느새 하나의 거대한 '설명'이자 '해명'이 된다.


직접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문단 전체가 그 말을 대신한다. 상황을 깔고 조건을 나열하며, 내 선택이 얼마나 불가피했는지를 보여주는 식이다. 그렇게 한 문단을 채우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나를 이해해 줄 독자가 있을 것 같고, 적어도 너무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면 가장 중요한 문장은 늘 빠져 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선택했다"는 말 말이다. 한때 '용서'에 대해 쓰며 이 변명의 구조를 공들여 완성한 적이 있다. 파문과 호수, 돌과 수면의 비유를 빌려 고통을 '질서'의 문제로 옮겨놓았던 글이었다. 상처를 구조로 환원하니 글은 "좋은 글이다"는 찬사를 받았다. 나 역시 그 평가에 만족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그 글에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돌을 던진 사람의 얼굴이다. 인물을 꺼내는 대신 구조를 말했고, 책임을 묻는 대신 질서를 설명했다. 그 선택은 글을 단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안전한 자리로 숨겨버렸다. 문단은 잘 작동했지만, 이야기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대신 나를 방어하는 데 온 힘을 쓰고 있었다.


변명은 대개 감정이 아니라 판단에서 온다. 이 선택이 옳았는지, 내가 이해받아야 하는지 작가가 글 안에서 미리 결론을 내려버리면 독자가 들어올 자리는 사라진다. 친절한 설명은 독자를 헷갈리지 않게 하지만, 동시에 글을 아주 평평하게 만든다.


요즘은 문단이 길어질 때마다 멈춰 선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문단은 정말 필요한 설명인가, 아니면 나를 변호하고 있는 건가. 그 질문 앞에 서면 문단은 줄어들거나 아예 통째로 사라진다.


그 자리에 아무 말도 없는 공백이 남는다. 가끔은 그 공백이 불안하지만, 여백이 남아 있을 때 글은 더 오래 살아남는다. 변명하지 않는 문단은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판단하지 않은 채로 독자와 함께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다.


나는 아직도 자주 변명한다. 글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그렇다. 어떤 문단은 나를 숨기고 있고, 어떤 문단은 나를 드러내고 있다. 변명하지 않는 문단 하나를 남기기 위해 여러 문단을 지우는 일. 그게 지금의 내가 수필을 쓰며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선택인 것 같다.

월,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