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어둠의 향기

2026년에 기억하다..

by 간달프 아저씨

2026년, 병오년 나는 마흔일곱이 되었다.

이제는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쪽에 더 가까운 나이다.
그런데도 가끔, 여덟 살의 내가 먼저 떠오른다.
설명할 수 없는 냄새를 먼저 기억하는 아이.


1988년.
경기도 부천 오정동.
지금 생각하면 시골에 가까운 동네였다.
낮은 집들과 빈 공터, 어른들이 말을 조심스럽게.. 끝까지 하지 않던 동네.

서울 개봉동에 계신 조부모 댁에 가기 위해 우리 가족이 시내 쪽으로 나왔던 날이었다.
평화로운 마음을 안고 부천역을 가기 위해 큰길로 접어들자 평화의 공기가 바뀌었다.


냄새가 먼저... 왔다.


맵고, 쓰고, 목 안쪽을 긁는 냄새. 눈이 따가워서 자꾸 눈을 비볐다.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였고, 걸음은 모두 바빴다.

나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세상이 평소보다 어두워졌다고 느꼈다.

아버지는 내 얼굴을 손으로 가려주며 말했다.

“괜찮아.”


그리고는 이상하게도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이 뛰는 가운데 아버지의 걸음만 느렸다.

그 느린 걸음이 나를 보호하는 방식이었음을 나는 훨씬 나중에서야 알았다.

빵빵거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던 고함,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 소리들이 한 덩어리로 남아 있다.

나는 그날의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냄새는 기억한다.


어둠의 향기


시간이 흘러 나는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고,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되었다.


2025년 어느 밤,
대한민국에서 ‘쿠데타’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밤늦게 계엄령이 발표되었다고 했다.

그날 나는 자고 있었다. 아내는 깨어 있었고, 소식을 바로 접했지만 나를 깨우지 않았다고 했다.

아내는 혼잣말로.. “어이없어서... 2025년에 쿠데타라니.”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민주주의에 유난히 예민하다는 걸 아내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침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시간 만에 해제된 시도, 이해되지 않는 명분.

지금은 그 일에 연루된 사람들이 법의 판단을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일을 이미 지나간 일처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문득 생각했다. 만약 그 밤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지금 일곱 살이 된 내 아들이 언젠가 나처럼 설명하지 못한 채 매운 냄새를 기억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나는 민주주의를 처음부터 개념으로 배운 적이 없다.

그건 냄새였다. 눈의 따가움이었다. 아버지의 손이었다.

그리고 이유를 묻지 못한 어둠이었다.


그래서 안다. 민주주의는 당연한 공기가 아니라는 것을.
한 번 무너지면 아이의 기억 속에 향기로 남는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그 어둠을 막아야 할 쪽에 서 있다.

아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미 한 번 그 냄새를 맡았던
여덟 살의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의 나는 조금 느리게, 조금 더 단단하게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다.

어둠의 향기가 다시 기억이 되지 않도록.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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