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카롱 Jul 27. 2024

마음의 안정을 찾아

템플스테이를 권하는 그대에게

감사해~ 시험이 닥쳐올 때에 주께서 인도하시니 두려움 없네

또, 감사해~ 고통이 찾아올 때에 주께서 지켜주시니 승리하리라~~


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김마리아의 모교를 다녔었다. 미션스쿨이라 성경공부와 기도가 학교생활의 큰 축이 틀림없었지만 그로 인해 종교인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천주교 신자이신 어머니의 삶을 통해 천주교의 교리가 궁금해 잠깐 성당을 찾기는 했었지만 그도 별로 오래가지 않아 냉담의 길에 들어서고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래도 한동안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괴로울 때면 고등학교 때 가열차게 부른 저 노래를 소환했다. 흥얼거리며 눈물을 훔쳐내다 보면 마음을 진정하는데 꽤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정성껏 부른 적도 없고 가사조차 다는 기억하지 못한다.


저 노래가사를 되뇌는 동안 맞닥뜨린 슬픔의 그림자가 마음속에서 거둬지는 느낌은 받은 것 같다.

속이 후련해지며 다시 몸을 일으키고 가사에 몰두하며 마음을 다잡고 현실을 받아들이곤 했다.


근 십 년째 잊고 있었다. 더 이상 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주변사람들의 말대로 큰 어려움을 이겨낸 것도 같고 좋은 일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최근엔 이렇다 할 일이 없이도 마음이 변덕스럽게 요동치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주변에 마땅치 않거나 불안하거나 조바심 또는 서운함 등의 감정들이다. 그렇게 좋지 않은 감정에 몰입하다 보면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나 마음을 다잡기 힘들 때도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을 가진 신을 믿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다녔던 성당의 십자가에 걸린 예수는 잘생긴 서양남자의 얼굴이 아닌 신자 중 한 분과 매우 닮았다고 말들 할 만큼 한국인 아저씨의 얼굴 모양이었다.  


종교학자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사람들의 60퍼센트 이상이 무종교인이라고 한다. 교회나 성당의 힘이 적어지기는 했으나 신을 부정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슬람권은 말할 것도 없겠다. 무종교인이라면 신의 존재,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인데 그런 동시에 제사라는 문화가 존속되는 한국의 사회현상은 기이한 점이다.

무종교인이라면 유신론자가 아니니 유물론자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불교신자는 아니면서 템플스테이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매우 좋았다며 권하는 사람들이 있다.


봐서요!라고 대답하고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요 며칠사이 권한 이의 말이 떠오른다. 최근엔 예측불가능한 세상의 빠른 변화와 수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 디스토피아적 영화를 보다 보면 예전과 달리 뭔가 불안한 마음이 자리하는 것을 느낀다. 과학의 발달로 해명된 세상의 원리와 인권의 발달로 현대에 이른 사회에서 종교는 예전의 힘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직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헛헛하다. 영적인 목마름만큼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혼돈스러운 것은 아닐까? 일상에서의 마음의 일관성을 찾기가 힘들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생각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신에게 맡긴 존재의 의미나 업보와 내세를 내세운 강력한 신앙이 내어준 자리에 무엇이 들어설 수 있을까?

작은 감정의 소용돌이 탓에 템플스테이를 권하는 그대의 말소리가 머릿속을 드나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