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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Jan 13. 2024

말 수 없는 남자

신뢰

일단 그는 매우 마르고 왜소하다. 일반적인 남자의 키를 훨씬 밑돈다.


그가 얼마나 작은 지를 한 마디로 말하기는 쉽다. 부엌 씽크대 위 콘센트를 고정하는 일을 하기 위해 씽크대 위에 올라앉은 모습이 별로 어색하지 않다.


그는 말 수가 매우 적다. 이렇다 저렇다 길게 말하는 법이 없다. 웬만한 인사치레미사여구는 사용하지 않는다.


60대 중반일 것이다. 숱이 적은 파마머리는 손가락 길이로 들떠 있으며 염색할 시기가 다가오는 두피 쪽은 하얗게 보인다. 지방이라곤 붙어있지 않은 얼굴광대에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다. 점퍼 이곳저곳에 공사장에서 바르고 온 흔적들 넘치고 신발은 뒤꿈치가 접힌 낡은 안전화이다.


그는 말 수가 매우 적다. 돌출한 앞니 탓에 입술을 당겨 꼭 다문 입에 힘이 주어져 있다.


고작해야

"안 돼요, 그거 못 써요." 라든가 "그거만 한 건 별로 없어요."라는 식인데 그 말들 뒤에 다른 부연 설명을 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뢰가 간다. 어지간한 확신이 아님 그렇게 말할 거 같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집의 화장실과 부엌을 수리하기 위하여 주변의 인테리어 가게를 찾아 나섰을 때다. 이미 유명한 브랜드 업체를 포함해 두 곳의 상담과 견적을 받은 후라 대략의 예산이 머릿속에 있었다. 마지막이다 맘먹고 잘 지나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인테리어 가게를 찾아갔으나 때마침 닫혀있었다. 보통 인테리어 가게 사장들은 기술자가 많아 현장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런 사정인가 싶어 잠시 서성였다. 돌아갈까 말까를 망설이는데, 정갈하게 정돈된 작은 트럭이 내 앞에 서더니 곁눈질을 하는 남자가 차에서 내려 가게문을 열었다.

따라 들어갔다.


" 뭐 하시려구요?" 멀뚱이 눈을 뜨며 하는 말에 바로 "집을 좀 수리해야 돼서요."라고 말했다. 어서 오세요? 라든가 많이 기다리셨나요?라는 인사도 없이 본론으로 옮겨갔다. 대충의 내 사정을 설명하니 대동소이한 아파트 구조를 이미 아는 그가 짧게 말했다. "그 시간이면 다 돼요." 내가 말미에 붙인 걱정, "명절 전에 될까요? 에 대한 답이었다. 대략 '이런 정도의 비용이 든다'던지 '좋은 걸로 하시면' 이라던지 여느 가게에서 듣는 말과는 다른, 별 내용 없는 말뒤에 내가 가장 우려한 공사기한에 대한 답이 가장 시원하게 들려왔다. 간혹 요즘은 모두 좋은 자재를 쓴다며 가격대를 올려놓고 보는 사장들과는 조금 다른 접근이 느껴졌다. 굳이 그런 거 안 해도! 라든가 이거면 충분하다! 는 뉘앙스도 있었다.


조금 나은 제품을 택하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그러다가도 주머니사정을 고려하여 그부분은 이걸로!라고 하면 "그건 못써요!" 단호했다. "이쁜 대신 문제가 있어요." 소신이 분명했다. 확신에 찬 사람은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뾰족한 입이 삐죽이 다물어져 있었다. 샘플 책자와 가게에 놓인 몇 가지 실물들을 보여준 뒤 바로 정하자는 제스츄어도 없이 잠깐의 정적시간이 지나갔다.


그는 말 수가 매우 적다.

보통의 사장으로 불리는 인테리어 가게의 주인들의 제스츄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빨리 결정하셔야지 그 기간을 맞출 수 있다 말할 것이 예상으나 전혀 그렇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하면서도 다른 기타의 말을 붙이지 않는 그에게 믿음이 갔다. 그럼 결정한 뒤에 다시 오겠다는 나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도 신기했다. 다른 가게처럼 그 기간 안에 끝내려면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 가게에 다시 찾아가 굵직한 주요 제품들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세부적인 것까지 정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수전같은 것 말이다. 씽크대쪽 전문가는 회사 쪽에 연락해서 보내줄 테니 그와 정해지는 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기한을 염려하 나는 다시 하루 이틀 지연되어야 한다는 게 다소 걱정되었다. 씽크대는 본사? 아하! 그는 많은 시간을 욕실공사 분야 숙련된 기술자로 살았던 것 같다.


부엌공사 내용이 결정되자 전체공사의 규모가 결정되었다. 그러던  그의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나와 상담을 하는 중 걸려오는 전화에도 응답이 매우 짧은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결론만 짧게 이야기하고 상대편의 말이 끝나지 않아 전화기 밖으로 소리가 들려도 개의치 않고 전화를 끊는 습관이 있었다. 안녕히 계세요. 라든가 그럼 담에 전화 다시 드릴게요. 그런 말 정도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전화를 해도 "네. 오후 4시쯤이면 됩니다."정도 내용만 말할 뿐 인사치레가 전혀 없다.

"그럼 그때 가겠습니다"라는 내 대답은 허공에서 사라지다 끊겼다. 보통은 말을 다 들어주지 않고 끝내면 기분이 상하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나한테만 그러는 것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어서고 한편으로는 인사가 중복되는 것의 불편한 경험(카톡이나 문자 등)이 떠오르며 신박하게 느껴졌다.


세부적인 선택들을 다 끝냈다. 계약서를 써야 한다.

세부적인 단서들을 놓치지 말라는 지인들의 조언을 떠올리고 말을 꺼냈다. "사장님 계약서는?" 그가 희미하게 콧웃음을 치기에 말을 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계약서를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딴 공사를 해놓고 발뺌을 한다, 계약서 쓰는 순간부터 착수금을 요구한다는 등의 쓰라린 경험들을 인터넷에서 확인했음에그의 콧웃음엔 이상한 신뢰가 갔다. 아직도 그때 그의 시덥지않게 여기는 흐미한 웃음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매우 궁금하다.


확정이 되기 전 어느 날 자질구레한 수전 등의 선택으로 가게에 가기 위해 나섰다. 거리 가로수를 다듬던 인부들 내 발걸음을 보고 물었다.

"이쪽으로 건너가세요."

"지나가려는 게 아니고 바로 이가게 들어가야 해서요."

"아~ 김 00 사장님 가게요!" 한 인부가 사장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일의 종류가 비슷한 탓인지 동네 이웃들인지 아무튼 반가움이 일었다.


공사 바로 전날 엘리베이터에 붙이는 주민 양해 안내문에 관한 연락이 없어 궁금하던 차에 관리실에 들렀더니 그가 벌써 다녀갔다고 한다. 알아서 하는 사람이다 싶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엔 우리 집 공사 양해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타일 재료들은 언제 가져다 놓는 걸까 하고 새벽에 나가보면 이미 현관 앞에 적재되어 있는 식이다.


공사는 어지러히! 상상초월의 먼지를 발생시키며 장대하게 시작되었다. 진짜 공사가 시작되기 전 준비과정만으로도 이미 에너지가 소진된 기분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담엔 절대 안 한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끝난 뒤 몸살이 난 것은 물론이다.


공사는 말 그대로 명절연휴 이틀 전 끝이 났다. 명절연휴 하루 전 날 전체를 확인하려고 들렀던 그의 손에는 마지막 장비가 있었는데 그것은 내방의 문짝을 손보려는 장비였다. 덧붙인 장식이 약간 떨어져 보기가 흉했던 상태를 말끔히 처리해 주었다. 부엌 공사를 마친 젊은 사람들이 콘센트를 제대로 꼼꼼히 고정시키지 않은 것을 보고 짧은 아! 소리를 내더니 인상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가볍게 씽크대 위로 올라앉아 일일이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말 수가 매우 적다. 일을 하는 내내 별 말이 없다.

차를 건네도 그저 고개로만 고마움을 표할 뿐이다. 하나의 일을 마치면 "어디 없으세요? 가 유일한 말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명과 자신의 집이 여전히 체리목이라는 말이 유일한 사적 대화였다.


공사가 다 끝나고 돌아서는 그에게 작은 선물 꾸러미를 내밀었다.

"이게 뭐죠?" 얼굴로 묻는 그에게

"명절 잘 보내세요. 정산되는 대로 문자 주세요."

그가 고마움에 약간의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네."하고 작고 굽은 등을 보였다.

이걸로 끝났다면, 그의 적은 말수, 인상적인 얼굴과 왜소함은 잊어버렸을 것이다.


공사가 다 끝났지만 내주머니 속에서 십원도 나가지 않은 상태로 여러 날이 지났다. 명절이라 재촉할 만도 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히려 명절에 돈 얘기를 하시기가 그런가? 하는 의아심에 명절 연휴를 다 보내고 소식을 기다리고도 하루이틀이 지났다.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했다. 문자에 답도 없었다. 허허! 희한도 하다 싶었지만 이것 또한 그의 일의 방식일 거라는 믿음에 일주일이 더 지난 후엔 그냥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다 다시 일주일이 가는 사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그의 안녕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명을 기억해 단지로 찾아가 그이 이름을 말하고 집으로 찾아가야 하는 건가? 망설이며 이틀 뒤, 그에게 문자가 왔다. 한마디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이 계산 정산서와 계좌번호, 그리고 대표이름 김00이 적힌 문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바로 계좌이체를 했다. 만족할만한 금액이었다. 이전에 받아본 브랜드업체 견적에 비해 오백만 원가량이나 저렴했다. 그 브랜드의 용품들을 썼음에도 말이다. 그나 나나 처음부터 딱 얼마라는 말도 없이 시작한 희한한 공사, 공사가 끝나고 무려 한 달 가까이 지불을 안 했던 희한한 공사 경험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 어디에 알려볼까 잠깐 망설인 적도 있었다. 아직도 믿을 만한 사람이 많은 사회라는 게 흐뭇하다.


정산이 끝난 후 정확히 일주일 뒤 그는 일하는 도중에 들렀다며 포셰린타일 여분을 가져와 베란다 창고에 내려놓고 갔다.


그는 내게 말 수 적은 작은 거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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