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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구 Feb 07. 2024

축구를 하다가 쇄골이 부러졌어요

대학교에서 있었던 일

대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그때 당시에 나는 과대(과의 반장)를 하고 있었고, 학교는 기숙사가 아직 안 지어졌기 때문에 1학년들만 다른 지역에서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회 선배들밖에 아는 선배들이 없었다. 매주 주말마다 집에 내려가서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곤 했는데 그 주는 학생회 선배들이 저희와 축구를 하러 버스를 타고 오기로 했기 때문에 일요일에 일찍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축구를 시작하는 시간보다 2시간 정도 일찍 도착한 나는 왕 돈가스를 먹었다. 이게 화근이었던 것일까. 축구를 시작하니 배가 미친 듯이 콕콕 찌르는 느낌을 받았고 조금만 뛰어도 금방 숨이 찼다. 그동안 축구를 해왔던 나이기 때문에 선배들에게 나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큰 활약이 없이 전반전이 끝났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후반전이 시작이 되었다. 소화가 되어서인지 몸이 가벼워지고 더 이상 배가 찌르는 느낌이 없었다. ‘이제 보여줄 수 있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뛰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쿵...!


“야 괜찮아? 방금 엄청 큰 소리가 났는데??”


몸이 다부진 선배와 부딪힌 것이다. 그때 잠깐이었는데 어떻게 부딪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고 팔꿈치 쪽만 쓸린 것처럼 따가웠다. 그래서 별 거 아닌 줄 알고 제 왼쪽에 있는 물을 왼손으로 집으려고 했는데 왼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른손으로 물을 마시고 쉬고 있는데 한 선배가 뼈가 부러진 것일 수도 있으니 근처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선배님의 말에 택시를 타고 근처엔 병원이 없어서 40분이 걸려 대학병원으로 갔다.


혼자 택시를 타고 가면서 생각을 해보니 지갑을 들고 오지 않았다. 나의 사정을 기사님께 말하니 기사님은 내 표정과 몸을 보고 그건 나중에 생각을 하고 일단 빨리 가자고 하셨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내 표정이 심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최대한 부드럽게 운전을 해주셨다. 도착을 하고 계좌번호랑 나온 가격이 적힌 명함을 받고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 앉아서 기다리던 와중에 엄마와 누나가 왔다. 그때의 엄마는 얼음길에 넘어지셔서 한쪽 발에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깁스한 발을 끌면서 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뭐래??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전화받고 깜짝 놀랐잖아."


"쇄골뼈가 부러졌다는데..? 세동강이 나버렸대... “


엄마의 놀란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축구를 어떻게 해야 쇄골뼈가 세동강이 나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바로 다음 날 저녁에 수술 날짜가 잡혔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당황한 것도 잠시 두려움이 몰려왔다. 큰 수술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누나는 갑작스럽게 온 상황이라서 짐을 챙겨서 다음 날 다시 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혼자 잠을 자고 있는데 새벽에 남자 간호사분이 오셔서 제모크림과 스타킹을 주면서 1시간 뒤에 수술을 하니까 겨드랑이 털 제모를 하고 팬티를 벗고 스타킹을 신으라고 하였다. 나는 잠도 덜 깬 채 부랴부랴 한 손으로 겨드랑이를 제모하고 스타킹을 신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쇄골을 수술하는데 스타킹을 왜 신은 지는 의문이다.


할 일을 끝내고 피곤해서 다시 잠에 들었다. 잠을 깨고 보니 옆에는 엄마와 누나가 아닌 대학교 선배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의 집과 병원이 거리가 좀 멀었기 때문에 근처에 사는 선배한테 연락을 한 것이다. 그렇게 같이 수술실로 가고 있는데 나의 긴장을 풀어 주려고 가벼운 농담을 나누며 수술실로 갔다. 처음 수술실을 접한 나는 엄청 긴장을 했다. 안은 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고 모든 것이 낯선 환경이어서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다고 들었는데 정신이 너무 멀쩡해서 이것을 말을 해야 하나 안 해.. 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 병동으로 가니 엄마와 누나가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환하게 웃으며 배고프다고 하였다.


입원을 하는 동안 한 친구가 계속 제 옆에 있어 주었다. 병간호를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친구는 몸집이 남들보다 크기 때문에 자는데 많은 불편함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원을 할 때까지 묵묵히 내 옆을 지켜주면서 나를 도와주었다.


병간호를 해준 친구와 귀한 시간을 내어 병문안을 와준 친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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