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김재규 재심 시작했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신 지 31년 되는 날에 기쁜 소식을 올립니다. 1979년 10월 26일 저는 고3이라 새벽에 등교를 했습니다. 그 시절은 뭐든 성적순 서열이라 고등학교 평판이 서울대에 몇 명 합격시키느냐가 좋은 학교 나쁜 학교 판단의 기준이었고, 많은 국민들이 박정희를 반신반인으로 추앙할 때 박정희를 다카키 마사오, 스미모토 미노루라고 평가 절하한 몇 안 되는 노인이었죠?
솔직히 고3시절은 할아버지 말씀을 이해 못 했어요. 할아버지 재산이 소 99마리를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3까지 한해 2마리씩 14마리 팔아 학비를 대셨고, 재수 3수 4수 걱정 마라. 한 해 소 3마리씩 팔아도 장손 서울대만 가면 된다고 하셨는데, 전두환이 징집 나이를 콱! 줄여 어쩔 수 없이 3수 후기대 청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로 입학해 서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손자의 소설 <의인>은 김재규가 10월 26일 다카키 마사오 총독을 살해한 김재규를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비난하던 시절 조부는 손자에게 김재규가 군단장 시절 박정희가 전방에 오면 현리 군단장 공관에 가두고, 하야 성명을 녹음해 발표하려 했으나 하필 그해 눈이 많이 와서 춘천 군단까지만 돌고, 현리 3군단은 그냥 위문품만 트럭으로 가고 서울로 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일단 공부할 시기는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생이 되면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로 소설을 쓰되 발표는 돌아가시고 30년 후에 진행하라고 하셨습니다.
2024년 12월 3일에 허접하고 말이 안 되는 계엄이 있을 거라고 알기라도 하셨나요?
할아버지 돌아가신 날이 1994년 12월 14일인데, 30년 후가 2024년 12월 14일이거든요. 마음 급한 장손이 <백서>를 2023년 1월 10일에 발행했는데, 일 년만 늦게 출판했으면 12월 3일 계엄과 딱 맞는 출판이 될 뻔했습니다. 아쉽지만 상관없어요. 그 잘 못된 계엄이 백서를 소환했고 할아버지가 <의인>으로 칭송한 김재규 재심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