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만에 경험하는 계엄
12.3일 윤 내란수괴가 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하도 가짜뉴스가 많은 세상이라 가짜뉴스로 생각했다. 어어 하다 보니 진짜였다.
유튜브 방송으로 국회의원들은 계엄해제 의결 위해 국회의사당으로 모여달라고 했고, 일반 시민들도 여의도로 모여들었다.
개봉동서 버스를 타고 영등포역에 내려 걸어서 여의도로 갔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 계엄이 선포되었다. 제주도를 제외한 계엄이었다.
김종필이 춘래불사춘이라는 소감을 말했는데, 정말 봄 같지 않은 봄이었다. 5월 17일 제주도를 제외한 계엄에서 전국계엄으로 확대한다고 주영복 국방부장관이 전군주요 지휘관회의를 했다. 전국서 모여든 장군들이 보안사에서 사전 짜준 각본대로 백지에 장군들 자필 동의를 받았다.
유일하게 군수기지사령관 안종훈 장군만 반대를 했다. 이 시국에 제주도를 제외한 계엄으로도 유지되는데, 구태여 전국계엄으로 확대하면 최규하 대통령에게 부담만 주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안 장군은 전국계엄이 실시되고 강제 전역을 당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 공군이 국방부장관이 된 것은 육해공 돌아가면서 구방장관 한다는 것은.표면적인 것이다. 사실은 79년 12.12군사반란 성공 이후 주영복 공군참모총장 공관에서 만찬을 했다. 그 자리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문구의 현수막을 공관에.걸고 만찬을 했다. 전두환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건 어디 기록에도 없다. 다만 이미 고인이 된 주영복의 아들이 나의 흑석동 고교 후배라서 아는 것이다.
그 시절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에게 알아서 설설 긴 별넷, 별 셋 똥별들의 유산이 2024년 12월 3일에도 계엄사령관 박안수, 방첩사령관 여인형, 수방사령관 이진우 , 특전사령관 곽중근, 기타 등등 맹목적으로 출동한 똥별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똥별들 지휘를 받는 여단장, 연대장, 대대장 들은 국민교육헌장을 안 외운 세대답게, 정의의 명령이 아닌 것에 저항을 했다.
출동 명령에 비행기 주유를 천천히 하였고, 수방사 공역통제를 총괄하는 대령은 P-73 공역 통제 특전사 비행 허가를 불허했다.
P-73 공역 통제라는 것은 과거 청와대를 기점으로 일정 반경 내에 비행을 하려면 24시간 전에 승인 요청을 보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반드시 비행시간과 비행 지점을 정확한 좌표로 보고해야 하고, 비행 목적을 명시해야 한다. 계엄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봉쇄하러 간다는 목적을 말할 수 없으니 그냥 두리뭉실하게 비행허가를 요청했다. 수방사령관이 수방사 병력을 출동하라고 한 상태에서 공역통제 장교 대령과 작전항공 장교 소령은 명확한 목적이 팩스로 오지 않은 이상 비행을 허가할 수 없다고 버텼다. 거기에 하늘도 도왔다.
멀쩡한 하늘에서 눈발이 날렸다. 진눈깨비로 변했다. 헬기에게 가장 쥐약이 진눈깨비인데, 비행 출동 시간을 늦추었고, 윤 내란 수괴는 왜 빨리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봉쇄 못하느냐고 비화폰으로 닦달했다.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들이 다 아는 명령에서 출동준비 군장꾸리고 비행기 탑승하고, 내리 고의 시간사용계획을 신의 아들 부동시로 면제받았으니 그런 개념이 없이 닦달만 했다.
1979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계엄이 실제상황이라는 것에 놀랐다. 더 놀란 것은 1979년에 중고등학교 검정교복에 교련복을 입어본 사람들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손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처럼 놀랐다.
놀라운 것은 1979년은 계엄선포하면 당연히 계엄에 순웅했지만, 세월이 흘러 국민교육헌장을 안 외운 세대들은 왜?라고 따질 줄 알고, 부당한 계엄은 총칼 아니라 핵폭탄을 투하해도 아닌 것은 지옥까지 가도 아니라는 사고의 변화를 몰랐다.
그래서 12월 3일 국회의사당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시민을 BBC와 CNN, NHK가 생중계했다. 요즘 일본도 한국을 따라 데모를 하려면 조센징처럼 하자고 페이스북으로 인스타그램으로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