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인생 이야기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30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경 선생)가 들려준 이야기를 손자(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쓴 글이다. 왜 하필 사후 30년 후라고 하셨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는데, 30년이 지나니 이해되었다.
그전에 이 이야기를 글로 쓰면 출판사가 망하고 작가도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을 미리 예견하고 30년이라고 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증거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계엄선포와 국회의원 계엄해제 의결, 그 후 일련의 사태를 보니 소름이 돋았다.
태어나 어머니에게 젖을 떼고 장손이라는 이유로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1960년 대 그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에 할머니는 장손에게 김치 매워하면 김치를 씻어서 안 맵게 먹여주셨다. 요즘은 새우가 흔하지만 그 시절 민물새우 귀한 것을 머리, 꼬리 자르고 몸통만 먹였다.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자라던 내가 취학 나이가 되어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재산을 정리하여 아버지 어머니 있는 곳에 합가를 했다.
내가 장남, 아래 여동생 둘이 있었다. 큰 여동생은 자기가 최고였는데, 어느 날 나타나 오빠라고 하니 어린 나이에 시기심이 있어서 오빠 소리를 안 했다. 무슨 오빠냐고? 둘이 싸웠는데, 여동생이 내 얼굴을 손톱으로 피를 흘리게 했고, 나는 울었다.
할아버지는 이거 장손 얼굴에 손톱으로 피를 냈다고 물푸레나무 도리깨 만들려고 베어서 그늘에 말리던 것으로 종아리를 때렸다.
그 후로 여동생은 오빠라고 불렀다.
반대로 여동생은 매운 것도 잘 먹었는데, 맵다고 하니 할머니가 김치를 씻어 먹이는 바람에 어머니가 남자를 그렇게 키우면 어떻게 하냐? 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다투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안 계시면 어머니는 김치를 그대로 먹게 했다. 어머니 회초리가 무서워 먹기는 꾸역꾸역 먹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일렀다.
입학 전에 인수, 길수, 재집 등과 검정고무신을 연결해 기차놀이도 하고, 딱치기, 구슬치기로 해가 저물어 어머니가 밥 먹으로 집으로 가자고 할 때까지 놀으ㅏㅆ다. 그렇게 놀던.챈구들이 학교에 가고 나 혼자 미취학 아동이었다. 심심했다. 할아버지 심심해요? 왜? 인수, 길수, 재집은 학생이 되었는데, 저만 집에서 노는데,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심심해요. 저를 학교로 보내주귀나 인수, 길수, 재집 중에 한 명을 퇴학시켜주세요?
지금 생각해도 그 미취학 아동이 퇴학이란 말을 어떻께 알았을까? 아무리 횡성 한우 99마리 자산가 할아버지도 남의 귀한 아들을 퇴학시키느니 미취학 내 손자를 입학시켜보려고 나의 손목을 잡고, 주민등록 한통을 떼서 학교로 갔다. 요즘은 주민들옥 등본이 온천지 주민등록 발급기계서 지문인식과 돈만 결재하면 되지만 그 시절은 먹지를 대고 안흥면 강림출장소 호적계가 종이에 먹지를 대고, 주민등록철에 쥑힌것을 먹지 대고, 다시 써서 부본은 보관하고 원본을 발급자에게 주고, 출장소장 직인이 빨강 인주로 찍힌 것이었다. 일의 되는 사람은 앞으로 넘어진 자리에서 동전을 줍는다고, 교장 선생님이 왕년에 할아버지가 조선 마지막 서당을 운영싀절 제자가 교장 선생이었다. 다른 친구보다 반 달 정도 늦은 초등학교 신입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