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9수 아니고 12수
윤석열이 대통령 당선되었을 때 모 신문에서는 9수를 해서 사법고시 합격한 것이 마치 인간승리 역경을 극복한 한국인의 저력 은근과 끈기로 묘사했다.
그걸 쓴 기자를 작가는 콱 손목아지를 짱돌로 찍어주고 싶었다.
왜?
작가가 지금 해운대 송정 신시가지가 되기 전 탄약사령부 3 경비중대장을 했다. 경비중대 방위병이 210명이었다. 70명씩 조를 짜서 주간 매일, 야강 홀수일, 야간 짝수일 명령을 내고 휴가는 휴가 돌발로 입원이면 입원 조치하고 근무명령 돌리는 것이 학생시절 이차함수 풀이보다 고난도였다.
내 생일 4월 15일은 음력인데, 김일성 생일날 밤에 수영군인아파트로 생일 축하케이크와 편지봉투에 10만 원 자기 앞수표를 빵빵하게 담아 방위병과 애인과 애인 모친이 찾아왔다.
요지는 서울법대 4학년 1학기 휴학하고 방위 복무한다. 3교대 돌리지 말고 야간 홀수일 고정시켜 달라고 했다. 더 골 때리는 건 전임중대장은 그렇게 했는데, 중대장 교체로 예비사위가 공부 리듬이 깨진다고 마치 전임 중대장은 훌륭한 중대장이고 함 대위는 세상을 모르는 중대장이라는 소리로 들렸다.
케이크는 받고, 편지봉투는 돌려주었다. 케이크까지 안 받으면 또 다른 모함할지도 몰라서 방어를 했다.
윤석열이 9 수라고 하는 것은 졸업 후 9 수고, 대학 2년부터 김철수나 권영성 헌법학 개론을 외웠으면 12 수다.
그러니 헌법 하면 대가리에 유신헌법만 기억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시합격 이후는 개정헌법 읽어본 일이 없으니까 겁대가리 없이 계엄을 선포하고, 마치 그것이 대통령의 천부적인 권한으로 지금도 서울구치소서 나는 무죄야를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