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힘겨운 대학시절
AT=Animal Training
앞에서 중고등학교 생활이 힘들었다고 했는데 대학생활은 더 힘들었다.
3수를 해서 대학을 갔기에 군대를 병으로 가면 고교 후배들 또래에게 경례를 해야 하기에 장교로 가려고 ROTC를 신청했고 힘겨운 체력검정을 통과했다.
학점 2학년 2학기 학점까지 합산해서 최종발표를 했다.
겨울방학에 횡성에서 쇠여물을 끓이는데 전보가 도착했다.
ROTC 최종합격을 축하합니다.
1985년 2윌 XX일부터 2주 동안의 가입단 교육이 있으니 교련복을 지참하여 학군단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머리를 논산훈련소 입대하는 신병처럼 깎고 교련복에 운동화를 신은 24기 동기들이 모였다. 선배들이 AT라고 명명된 훈련을 했다.
영어의 Animal Training의 앞 글자를 따서 AT라고 하는데 사람이 아닌 동물훈련이었다.
새벽 4시 30분에 집합하거나 늦은 밤 9시에 집합하여 굴렸는데 선착순이 제일 고역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실하게 태어났다.
쌍둥이 두 번째로 태어났으니 어머니 뱃속에서 혼자 먹어도 부실한 양분을 둘이 먹고 태어났다.
먼저 태어난 아기가 형 나중에 태어난 아기가 동생이지만 과학적으로는 나중에 태어난 아기가 형이라는 말을 고등학교 생물선생에게 들었는데 형은 세 살 때 홍역으로 죽었다.
체력이 부실해 100명이 선착순을 해서 잘 뛰는 동기는 10바퀴 안에 끝나는데 나는 항상 50바퀴 이상 돌았다.
팔 굽혀 펴기 쪼그려 뛰기 오리걸음 통닭구이 매미 포복 물속에서 잠수 어깨동무하고 달리기 김밥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이름의 동물훈련이었다.
그런 훈련을 시키면서 목적은 장교 후보생으로 어떠한 역경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이라고 했다.
그 시절은 학군장교를 위한 취업설명회가 별도로 할 만큼 대우기 좋았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된다고 요즘은 장교보다 병이 대접을 받는다.
지금은 병사들 복무기간은 단축되고 내년에 병장 월급이 200만 원이라 ROTC보다 병장이 더 인기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게 다 군대도 미필한 인간들이 고위직을 차지한 병폐다.
30년 전에 가경 선생이 나라가 잘되려면 모든 선출직 2급 이상 공무원은 병역을 필한 사람으로 충원해야 한다고 일갈하셨는데 요즘 ROTC 지원자 미달 소식을 접하니 씁쓸하다.
지금도 잊지 못할 시건이 암호명 식목일 사건이다. 지난여름 홍수에 위험하다는 119 경고를 청주시청이 무시해서 미호강이 범람한 그곳을 우리가 ROTC훈련 시절은 미호천으로 불렀다. 쉽게 말해 강축에도 못 드는 미호천으로 불리다 이느 순간 강으로 승격되었다.
식목일이 쉬는 날이라고 선배들이 미호천 다리 밑으로 저녁 8시에 집합을 시켰다. 우리들의 불문율은 정한 시간보다 10분 전에는 다 모였다.
처음에는 물속에서 선착순을 시켰다. 지상에서도 선착순 쥐약인데 수중에서 하는 선착순은 너무 힘들었다.
달리기 잘하는 동기생은 두세 번에 끝이 나지만 나는 10번을 넘기고 선배들이 너그럽게 다섯 명을 합격선에 넣을 때 등수 안에 들어 쉴 수 있었다.
밤이 새도록 미호천 붕어와 대회도 하고 수중 오리걸음 수중 김밥 침상 위에 수류탄 침상아래 수류탄을 하고 먼동이 트자 선배들은 거기서 무심천 강변 우리 대학까지 구보를 시켰다.
혼자 하라면 못하는데 동기생이 하니까 함께 뛰었다. 힘들게 참고 달렸는데 탈수가 심해서 학교 교문을 통과한 첫 경사에서 쓰러졌다. 눈을 떠 보니 충북의료원 응급실이고 가경 선생과 아버지가 와계셨다. 횡성군 강림에서 충북으로 원까지 택시로 오셨다.
가경 선생은 이거 할아비보다 손자가 먼저 죽으면 안 된다고 ROTC해지하자고 하시고 아버지도 그냥 병으로 군대 마치고 ROTC해지하자고 하셨다.
나는 가입단 훈련부터 식목일까지 훈련 고생한 것이 아깝다고 가경 선생과 아버지를 설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