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3

1979년 그해 가경 선생과 손자

by 함문평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해야 할 고3에게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1979년이었다.

가경 선생이 한우를 팔아 의장 전학을 시킨 이유는 경기고를 가서 서울대학을 보내려는 계획이었으나 이미 박지만 때문에 서울시 고교입시가 뺑뺑이 된 것에 욕을 하고 명필은 붓을 안 가린다는 말로 손자를 위로해 주시고 대방동 S중학교 야구장 외야수 담장 너머 S고등학교 영어선생님 고철 X선생님 댁 전세를 빼서 흑석동 고등학교 부속여자고등학교 올라가는 담장 끝집을 반하니 부엌 한 칸을 얻으셨다.


장손이 걷고 버스 타고 전철 타고 등교 하교 하는 시간에 잠이라도 더 자고 공부할 때는 한석봉처럼 공부하라는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셨다.


하지만 시국에 영향력 하나 없는 분이지만 말로라도 시국에 대한 평가를 손자에게 하셨다.


1979년 가장 먼저 가경 선생을 화가 나게 한 것은 백두진 파동이었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지 말을 고분고분 잘 들어주는 백두진을 국회의장에 내정한다는 것이었다. 가경 선생은 차지칠이 이 미친 새끼가 건의할 일을 건의해야지 경호실장 놈이 감히 국회의장에 콩 놓아라 팥 놓아라 하면 박정희가 김일성과 다를 것이 뭐냐 하시면서 민주국가에 지역에 국민들 투표로 당선된 몇 선 국회의원 있는데 머저리 멧돼지 놈 건의에 유정회 국회의원이 아니라 거수기 노릇만 한 놈을 국회의장을 시킬 바에 학교교육받은 적 없고 한문 수학만 한 내가 해도 두진이 보다 잘하겠다고 하시면서 손자 공부 잠시 중단하고 막걸리를 한 되 받아오라고 하셨다.


그해 10월 16일에 유신독재에 항거하는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데모를 했는데 시민들이 합세하여 커졌다. 부산에 파출소 경찰서 도청 세무서 방송국이 파괴되고 민주공화당 사는 당윈들 당직자들이 미리 알고 다 도망가서 짱돌에 유리창만 파손되었다.


박정희는 계엄을 선포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하자 또 열을 식히느라 공부하는 손자 잠시 멈추고 막걸리 한 되 받아오라고 하시더니 아예 술은 혼자 마시면 맛없다고 나를 책상에서 내려와 술상에 앉게 하셨다.


공부도 공부지만 앞으로 살 날이 구만리인 손자는 목표는 서울대로 공부하지만 꼭 서울대만 원서 써서 재수 삼수 구수까지라도 한다면 횡성 소를 다 팔아 올려도 되는데 대학교 평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번 부마사태에 대해 어떤 생각이냐고 물으셨다.


예 잘은 모르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한 것이 결과적으로 박정희 자신과 국가에 보탬보다는 해로움만 준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가경 선생은 무릎을 치시면서 역시 내 손자야 하셨다.

keyword
이전 03화월남참전군인 전투수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