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얏!”
“사람 살려!”
“진호 형! 왜 그래?”
시흥시 정왕동 ㈜ 서울 앤 아이 주상복합 신축공사장에서 해체작업 중에 거푸집에 깔렸다. 보의 밑면을 바치고 있던 받침대 두 개가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가 넘기기 전에 떨어졌다. 뒤로 물러났다. 안전모를 착용한 덕에 머리는 이상이 없었다. 왼쪽 다리가 움직일 수 없었다.
현장소장과 공사과장은 해체인원 4 명과 정리 인원 12 명을 동원해서 짓누르고 있는 보 밑면을 들어 옮겼다. 보통은 보의 양 옆면은 폼으로 연결하고 밑면은 합판으로 되었다.
하지만 정왕동 주상복합 신축 공사장은 보 밑면이 폼과 앵글로 연결되었다.
공 해체팀장이 물었다.
“진호 형! 진호 형! 정신 있어요?”
“응, 정신 있어.”
“이거 몇 개야?”
“세 개 ”
“형, 확실히 말해, 정말 머리는 이상 없는 거지?”
“음, 정말 머리는 안전모 덕분에 이상 없어.”
“그래, 형은 안전모 하나는 잘 썼지.”
그는 건설현장 근로자로 나오기 전에 20 년을 직업군인으로 복무했다.
안전모에는 군대 시절 철모 속에 넣고 다니던 흑백사진 한 장과 여행용 휴지를 넣고 다녔다. 사진과 여행용 휴지가 안전모의 완충 작용을 높였다면 그것도 머리를 보호하는데 나름 기여했다.
현장소장은 그를 누르고 있는 폼과 앵글로 연결된 보 밑면을 들어내고 해체 인원과 정리 인원을 동원해 현장 밖으로 들어내려 했다.
현장소장이 그를 불렀다.
“하진호 씨!”
“예!”
“정신 들어요?”
“예, 정신 있어요.”
“들어서 현장 밖으로 이동할게요.”
“미쳤어요? 내 다리 왼쪽 움직일 수 없으니 빨리 119 나 불러줘요.”
비상 사이렌을 울리면서 119 구조대가 달려왔다. 119 대원은 신속하게 안전모를 벗겼다. 부목을 대고 흔들리지 않게 몸을 묶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하진호!”
“어떻게 다쳤어요?”
“해체하다가 보 거푸집에 깔린 겁니다.”
“왼쪽 다리가 골절이니 부목을 대고 온몸을 묶을 겁니다. 아파도 참아요.”
“예.”
“여기서 마취할 수도 있는데, 병원이 가까이 있어 마취 없이 이동하니 아파도 참으세요.”
“예.”
다른 대원은 그를 내리누르던 보 밑면을 사진 찍고, 최초 상태를 사진 찍고 이동했다. 119 구조차량은 신속히 정왕동 시화병원으로 이동했다.
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응급실 당직 의사가 인수받았다. 시화병원 제1 정형외과 과장 김 청야 과장이 물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하진호!”
“어떻게 다쳤어요?”
“공사장에서 해체하다가 보 밑면에 깔렸어요.”
“보 밑면 무게가 어느 정도입니까?”
“한 200 킬로그램!”
“환자분, 대퇴부가 많이 골절되었어요. 수술하게 되면 전신마취가 필요해요. 수술할 동안은 아픈 줄 모르는데, 마취 풀리면 많이 아파요.”
“예, 알겠습니다.”
수술실로 들어가자 김청야 과장은 그에게 전신마취를 시켰다. 응급실에서 환자 이동용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실에서 마취를 담당한 의사가 마취를 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하진호!”
“예, 좋아요. 하나 둘 셋 이렇게 스물까지 세 봐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채 열을 세기 전에 마취로 잠들어 버렸다.
8월 19 일 오후 3 시 30 분에 수술실로 들어가 7 시 40 분이 되어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이동했다. 간호사들이 간호와 간병을 겸하는 병실이었다. 오늘은 보통 병실이 없어서 2 인실 사용하고 공동 간병인실이나 4 인실이 나오게 되면 그리로 이동한다고 했다.
8월 20 일이 되었다. 마취가 서서히 풀리자 비명을 질렀다.
“아 야!”
“환자분! 왜 그래요?”
“다리가 쿡 쿡 쑤시고 아파요.”
“예, 서서히 마취가 풀리면서 아파요. 아파도 참으세요. 일단 진통제 한번 주사할 테니까 진통제는 많이 맞으면 안 됩니다. 하루에 3번 이하로 맞아야 하니까 참아보고 간호사 부르세요.”
“예.”
“간호사 선생!”
“예, 환자분!”
“저 부탁이 있는데 말해도 됩니까?”
“말해보세요. 뭔지?”
“제가 다칠 때 현장서 썼던 안전모 속에 흑백사진 한 장이 있을 텐데, 그걸 좀 찾아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간호사가 원무과에 협조하여 현장에서 그가 썼던 안전모에서 흑백사진을 찾아왔다.
“이거 맞아요?”
“예, 감사합니다.”
“누구예요?”
“내 첫사랑입니다!”
“이름은?”
“박은경!”
“아주 오래된 사진이네요.”
“예, 1975 년 사진입니다.”
은경이 중학교 2 학년 경주로 수학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흑백사진 속 은경의 모습 뒤로 다보탑이 보였다. 은경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계양산 아래 계양초등학교 24회로 다니다가 6 학년 때 진호가 서울로 전학을 갔다.
중학교 2 학년 때 그는 속리산 법주사를 경유하여 경주 불국사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은경은 백담사를 경유하여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 경주 불국사를 다녀왔다.
이때 찍은 사진 검은색 교복에 하얀 칼라의 독사진을 편지 속에 넣어 보냈다. 그는 속리산 문장대 정상에서 바위에 앉은 사진을 은경에게 보냈고, 은경은 다보탑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보냈다.
전신 마취가 풀리자 통증을 느꼈다. 왼쪽 대퇴부부터 아픈 기운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진통제를 맞고 아픔을 참아가며 환자복 주머니에서 은경의 흑백사진을 꺼내 봤다.
빙그레 웃음이 났다. 검은색 치마, 하얀 칼라에 검은색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여중생 은경의 모습이다. 이 사진을 부적처럼 간직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에는 지갑 속에 주민등록증 아래 숨겨 지니고 있었고, 198X 년 3월 4일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후는 철모 속에 숨겨 여행용 휴지로 사진을 가렸다.
1986 년 3월 4일 육군 소위로 임관한 그는 조치원역에서 호남선 열차를 타고 광주 송정역에 내렸다. 송정역에서 쌍촌동 육군 보병학교 까지는 군용 버스로 이동했다.
훈육 중대장이 유격훈련 순서를 정하는 제비 뽑기에서 1번을 뽑아서 진호가 소속된 제3 중대가 유격 1기로 입소하였다. 순서는 3, 5, 6, 9,10, 8, 2, 1, 7 중대 순으로 정해졌다.
4는 군대서 죽을 사(死)와 음이 같아서 4 중대는 없고 바로 5 중대로 이어졌다. 첫 주 훈련은 기초 체력 단련이었다. 이름이 기초 체력 훈련이지 거의 삼청교육대 목봉체조 수준이었다. 구보, 연병장 축구 골대 돌아오기 선착순, 오리걸음, 유격체조 등으로 이루어졌다. 기초 체력 훈련을 마치면 두 줄타기, 세줄 타기, 외줄 타기, 활차 도하 훈련 등을 하였다.
세줄 타기 훈련은 동복 유격장 강 중류에서 두 줄 타기와 활차 도하 훈련은 하류에서 실시했다. 각 단계마다 교관 한 명과 조교가 3 명 씩 배치되었다. 가끔가다 발생하는 도하 중간에서 무서워서 못 가거나 안전벨트 맨 상태에서 두 줄이나 세 줄에서 떨어지는 경우 구조하기 위해 조교가 복수로 배치되었다. 올빼미 번호 순서대로 세줄 타기를 하였다. 교관 조 상근 중위가 구령을 붙이고 조교의 시범이 있었다.
“올빼미들! 시범 잘 봤습니까?”
“예.”
“목소리가 작습니다. 올빼미들 아침 식사 못했습니까?”
“했습니다.”
“밥 먹은 소리가 아닙니다. 죽도 못 먹은 소리 내지 말고 힘차게 외칩니다. 알겠습니까?”
“예~~에!”
“일 번 올빼미 앞으로!”
“옛, 일 번 올빼미 도하 준비 끝!”
“일 번 올빼미 애인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이름이 뭡니까?”
“김경희입니다!”
“김경희 3 회 복창!”
“김경희, 김경희, 김경희!”
“좋습니다. 도하!”
“도하!”
“유격, 유격! 유격! 유격! 유격!”
유격을 복창하며 1번 올빼미가 도하를 마쳤다. 순서대로 도하를 하였다. 49번 올빼미 하 진호 소위 순서가 되었다.
“49번 올빼미 도하 준비 끝!”
“49번 올빼미 애인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이름이 뭡니까?”
“박은경입니다!”
“박은경 3회 복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
“교관이 3 회 복창하라는데 49번 올빼미 4 회 복창했습니다. 49번 올빼미 정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정신 차리는 의미에서 박 은경 10 회 복창합니다.”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 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박은경! 이상입니다!”
“좋습니다. 도하!”
“도하!”
“유격, 유격, 유격, 유격, 유격!” 유격을 외치면서 세줄 타기를 마쳤다.
기초 체력 훈련과 장애물 통과 훈련을 마치고 3 중대는 도피 및 탈출 훈련을 하였다. 교관 강 각성 중위는 도피 및 탈출 훈련은 전쟁에서 본대에서 고립되었을 때 지도와 나침판을 가지고 목표지점을 찾아가는 훈련이라고 했다. 41번부터 50번까지 5 조가 되었다. 각 조에 부여된 좌표를 찾아가면 그 좌표에 육군에서 사용하는 콘크리트 말뚝에 독도법 부호가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해당 좌표 옆에 도식하면서 찾아가는 훈련이다. 조장은 매일 돌아가면서 했다. 이동 간에는 절대로 민간인 구역으로 내려와서는 안 된다. 민간인 집이나 상점 주변에는 교관이나 조교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걸리면 한 명 때문에 조 전체가 유격에서 최저 점수를 받는다고 했다.
그가 소속된 5 조의 출발은 좋았다. 첫 번째 좌표를 찾아가니 독도법의 <보병 제17 사단> 표시가 있었다. 두 번째 좌표를 찾아가는데 좌표가 민간인 과수원 한복판을 지나가게 되었다. 오늘의 지휘자 그는 올빼미회의를 소집했다.
“올빼미 집합!”
“올빼미 집합, 모여라!”
“오늘 내가 조장인데, 두 번째 좌표를 보니 저기 민간 과수원 안에 우리 좌표가 있는데, 내 생각은 그냥 건너뛰고 3번 좌표로 갈까 하는데 올빼미들 생각은?”
“43번 올빼미 의견 있습니다!”
“말해봐!”
“만약에 이걸 건너뛰고 9 개 만 찾아 최종 목적지에 갔을 때 다른 조들이 모두 10 개 다 찾으면 우리 조가 꼴찌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나 그 많은 조가 10 개 찾는 일은 없다고 본다.”
“45번 올빼미 의견 있습니다. 저는 49번 조장 올빼미 의견에 찬동합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어느 한조는 민간 구역에서 포로로 잡힐 텐데 이거 하나 건너뛰고 포로 안 되고 9 개 신속히 찾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잠깐이면 될 줄 알고 올빼미 회의를 소집했는데, 시간이 반시간이나 흘렀다.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되니 조장은 사회만 보고 거수는 안 하고 나머지 올빼미 거수 바란다. 먼저 이곳 건너뛰자 손들어! “
“3 명!”
“이번 목표 찾고 가자 손들어!”
“6 명, 그럼 다수결 원칙으로 찾고 간다. 41번 곽승종 올빼미는 김범진 올빼미와 둘이 척후조로 임명한다. 과수원에 침투하여 민가에 사람 유무를 확인하고 없다고 확인되면 나무에 양말 한 짝을 매달아 신호하라.”
“예, 알겠습니다.”
“나머지 8 명은 동서남북으로 은폐된 곳에서 사주 경계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척후조가 출발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과수원집 바로 옆 나무에 양말 한 짝이 걸렸다. 그것을 본 8 명의 본대들은 야호! 환호를 질렀다. 과수원 안은 너무 조용했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한 듯 10 명은 다시 만나자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기쁨도 잠시 서로 얼싸안은 상태서 호각 소리가 들리고 동작 그만하는 교관의 굵직한 음성이 들렸다. 유격 총괄 교관 민병달 중위의 목소리였다. 10 명의 올빼미는 부동자세를 취했다.
“오늘의 조장은 몇 번 올빼미입니까?”
“예, 49번 올빼미!”
“조장 올빼미는 교관이 분명 어떠한 경우라도 민간 구역에는 나타나지 말라고 한 말을 기억합니까?”
“예, 기억합니다!”
“그런데 왜 여기 민간 과수원에 들어온 것입니까?”
“예, 처음에는 그냥 건너뛰고 3번 좌표로 가려했는데, 조원들 의견이 나누어져 다수결로 정해서 찾기로 했습니다.”
“49번 올빼미는 전쟁이 나도 다수결로 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49번 올빼미는 군인 정신이 털끝만큼도 없는 올빼미로 생각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수결 방식이 투철하니 그 썩고 천박한 자본주의 정신을 빼고 군인정신을 주입하기 위해 포로 신문소로 이동합니다. 조교 49번 올빼미 포로 신문 시작!”
“예, 알겠습니다!”
“49번 올빼미 이외 9 명의 올빼미는 완전군장으로 과수원 울타리 보행합니다. 실시!”
“실시!”
과수원 흙벽돌집 안방으로 들어갔다. 벽에 대형 북한의 인공기가 걸려있고 하단 좌우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군화를 신은 상태로 49번 올빼미를 벽에 나무 십자가에 묶었다. 빨강 모자를 쓴 조교가 물었다.
“49번 올빼미는 소속, 계급, 군번, 성명을 말하시오!”
“......”
“아하, 49번 초장부터 묵비권 행사다 이거지?”
“묵비권 남조선 안기부 놈들이 민주인사 고문할 때 민주인사들이 쓰던 방법인데, 동무는 지금 포로로 잡혔다.”
“제네바 협약에도 소속, 계급, 군번, 성명은 말하도록 되었다, 어째서 그 네 가지도 말 안 하는가 49번 올빼미 동무!”
“좋다, 동무가 묵비권을 행사하니까 지금부터 우리도 우리 임무를 수행한다.” 방구석에 세워놓은 야구 방망이로 전투화 밑창을 개 패듯 때렸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49번 올빼미 소속은?”
“군번은?”
“계급은 역시 묵비권?”
“...... ”
“이런 멍청이가 어떻게 남조선 국방군 장교가 되었지?”
“하는 수 없지. 지금부터 물고문, 전기고문, 고춧가루 고문, 잠 안 재우는 고문 49번 올빼미 원하는 것으로 해 준다 골라라.”
커다란 고무 물통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조교는 49번 하 진호 포로를 물통에 얼굴을 처박았다. 1분 30초, 2 분, 3분 3분 30초 점차 시간을 늘려가며 물고문을 했다. 물고문을 30 분 정도 하자 49번 올빼미가 자백을 했다.
“소속은?”
“육군 보병 학교”
“계급은?”
“소위입니다.”
“군번은?”
“성명은?”
“하진호입니다.”
“좋소, 진작 시원하게 대답하면 힘든 고문 안 해도 되었지, 공연한 고집을 부려 조교도 힘들고 하 소위도 힘들었습니다.”
“가족은?”
“애인은?”
“없습니다!”
49번 올빼미가 고문을 당하는 동안 9 명의 조원들은 완전군장으로 과수원 울타리 안에서 보행하고 있었다. 49번 올빼미에게 김일성 김정일 만세! 3번 외치면 풀어준다고 회유했다. 49번 올빼미는 끝까지 저항했다. 고문을 이어가도 나를 죽이지는 못한다는 마음으로 버티고 전기고문도 참았다.
올빼미 10 명이 완전군장 보행과 고문에도 김일성 만세를 않고 저항을 하니까 금요일 오후에 풀려났다. 원래는 10 개의 좌표에 표시된 독도법 부호를 다 찾아야 하지만 1번 < 보병 17 사단>을 찾고 2번을 찾다가 화, 수 , 목 3 일간을 고문으로 시달리고 금요일을 맞이했다. 금요일에 풀려나면서 2번부터 8번까지의 좌표의 독도법 표시를 문제지 옆에 조교가 표시해 주었다. 끝까지 김일성 만세를 부르지 않고 저항을 잘했기에 주는 상이라고 했다.
제5 조 올빼미는 북쪽의 대형 송전탑만 보고 정상의 송전탑 아래 9번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정상에서 9번을 찾으니 10번은 처음 유격 훈련 도피 및 탈출을 출발했던 숙영지 축구골대 옆에 있다는 메모가 있었다. 5 조 올빼미들이 3 중대 200여 명의 올빼미 중에서 가장 먼저 출발지점에 도착했다.
중간에 포로로 고문은 당했어도 10 개의 독도법 부호를 모두 찾았다. 토요일 오후 3 시까지 이곳에 집결하면 되는데 5 조는 오전에 다 찾고 도착해 있었다. 오늘의 팀장 41번 정규일이 올빼미들 소집을 하였다.
“올빼미들 우리가 오후 3 시 여기 모이면 되는데 우리 오후 3 시까지 뭐 하면서 시간 보내지?”
“50번 올빼미 남석우 건의 있습니다.”
“말해봐라 50번 올빼미!”
“우리가 여기서 오후까지 빈둥거리다 교관에게 걸리면 청소나 하게 되니 점심때도 되어가니 강가에 가서 물고기 잡아 매운탕이나 먹읍시다.”
“좋아요 한 표!”
“좋아요 2 표!”
“나도 한 표!”
“좋다, 그러면 여러 올빼미들이 다 찬성하니 강으로 출발!”
출발 명령을 내리고 하 소위는 철모를 쓰기 전에 철모 속 숨겨둔 흑백사진 은경의 검은색 교복에 하얀 칼라가 눈부신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김범진 올빼미는 어느새 대검으로 축구 골대를 감싼 녹색 그물망을 가로 1 미터 세로 3 미터나 잘랐다. 양끝을 나무로 묶어 손잡이를 만들었다. 진호와 범진은 그물망 양쪽을 잡고 나머지 8 명은 강 상류로 올라가서 고기를 몰고 내려왔다. 녹색 그물망에는 붕어, 버들치, 모래무자, 피라미, 쏘가리 등 다양한 물고기가 잡혔다. 방 상상 올빼미는 쌀을 씻어 밥을 짓고, 이 학원 올빼미는 된장, 고추장, 채소를 준비했다. 어느새 곽승종 올빼미는 살금살금 민가 밭에 가서 풋고추, 깻잎, 상추를 뜯어왔다. 유격 마지막 날 토요일의 점심은 강가에서 매운탕으로 배부르게 먹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소 병학 올빼미가 소주를 꺼냈다.
“여러 올빼미들 여기 주목! 매운탕에 소주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다들 소주 한잔씩 , 모두 반합 따까리를 들어.”
“이거 어디서 구했어?”
“구하긴 어디서 구해. 훈련 출발 전에 좌표 다 찾고 들어오면 여기 원위치라고 해서 미리 소주 사서 축구장 옆 소각장에 숨겨두고 떠났다가 지금 찾아왔지?”
“야, 정말 소병학 올빼미 선견지명 있다.”
“자 모두 따랐으면 건배한다. 5 조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은경은 5 공주집의 맏딸이었다. 순서대로 은경, 은서, 은희, 은주, 은옥 다섯 딸과 아내 문 화자까지 여섯 명의 여자들 속에 아버지 박 정훈만 홀로 남자였다. 정훈은 술만 마시면 아내에게 아들 하나만 낳자고 재촉했다.
1976 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기상 관측을 하고 20 년 만의 추위가 기록되었다. 12 월 24 일 정훈은 술이 취해 집에 들어갔다. 화자는 술 냄새나는 정훈의 옷을 벗겼다. 양말도 벗기고 아랫목에 재웠다. 자는 줄 알았는데, 슬그머니 정훈이 화자의 가슴을 더듬었다. 이어 입술을 화자의 입에 키스를 했다. 오랜만에 일이라 화자도 몸을 정훈에게 맡겼다.
“왜 이래?”
“아니, 당신이야말로 왜 이래요?”
“왜, 내 나이가 어때서?”
“이 나이에 우리 애 생기면 애 언제 키워요?”
“내가 산에서 호랑이에게 물리는 꿈을 꾸었거든, 이번에 당신 임신하면 꼭 아들일 거야.”
“딸 다섯도 벅찬데, 또 낳으면 당신 죽을 때까지 고생고생 하다가 저 세상 가게 돼!”
“그래도 아들 하나 두면 든든하지?”
“임신한다고 아들이란 보장 있어요? 아들이라고 확신만 되면 당장 임신하고 싶어요. 딸인지 아들인지 모르니 임신 두려운 거지.”
1977 년 새해가 밝았다. 정월에도 영하의 날씨에 눈도 많이 내렸다. 계양산 아래 은경집에 처마 밑까지 장작을 가득 쌓아 놓고, 창고에 쌀이 가득, 김장독에 김치와 동치미가 가득하니 걱정은 없었다.
2 월 어느 날 화자의 몸이 이상해졌다.
한 겨울에 감자떡이 먹고 싶다고 했다. 다음 날은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평소는 고기를 별로 먹지 않던 화자가 두 근을 혼자 다 먹었다. 다섯 딸들은 돼지고기 냄새만 맡았다. 은경이 아버지에게 한 마디 했다.
“아버지, 엄마가 돼지고기 먹고 싶다고 하면 좀 넉넉히 사지, 엄마만 먹고 우린 뭐예요?”
“그래, 미안하구나 내가 내일 다시 장보고 오마.”
화자는 돼지고기 다음으로 겨울에 수박이 먹고 싶다고 했다. 정훈은 겨울에 수박을 어디 가서 구하냐고 내일 김포보건소에 같이 가자고 했다. 보건소장은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산부인과 전공을 한 최치영 의사가 공중 보건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군의관은 3 년 공중 보건의사는 5 년인데, 최치영은 산부인과 전공이라 군대보다 공중보건의사를 택했다.
“문화자 님?”
“예!”
“임신 축하드립니다!”
“아들입니까?”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보, 임신이래.”
“그래, 태교 잘해 멋진 아들 낳아.”
임신을 확인한 정훈은 안흥에 하나밖에 없는 택시를 불러 집으로 왔다. 중간에 택시에서 화자가 닭을 먹고 싶다고 했다. 강림 정육점에 들러 생닭 두 마리를 샀다. 은경네 식구는 이날 닭 2 마리로 닭볶음탕을 해 먹었다.
2 월 마지막 주가 되었다. 은경이 김포 중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인천여자 고등학교에 합격해, 방 한 칸 얻어 자취를 해야 했다.
처음 자취 준비는 짐이 많다. 동생 은서가 언니 은경 짐을 인천까지 같이 날랐다. 시외버스를 같이 탔다. 처음 타 보는 버스라 은서는 차멀미를 했다.
은경은 인천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진학했다. 그리고 졸업 후 반년 정도 기다려 1985 년 9월 1일 부로 강화고등학교 수학교사가 되었다. 여기서 미술교사 박춘수 선생을 만나 결혼을 했다. 경기도 파주, 연천, 문산, 포천 일대에서 4년마다 이동하며 근무를 했다.
결혼 후 임신을 하고 첫 아이를 낳았다. 태어날 때 산소부족으로 아기가 태중에서 산소 부족으로 인한 정신지체아로 태어났다.
영화 마라톤에서 초원 엄마처럼 은경은 살았다. 모든 것이 첫 딸의 정신지체아를 살려야 한다고 학교를 사표를 냈다. 전국에 그 방면의 유명한 박사들은 다 찾아다녔다.
아이를 처음에는 간병인을 구해서 간병했는데, 아예 은경이 직접 간병을 배웠다. 직접 간병을 하면서 간병인 사무실을 개업을 했다. 첫 딸을 위해 수도권으로 이사를 했다. 안산에 ‘데레사 간병인협회’를 만들었다.
은경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정말로 세상에 착하게 살아온 내가 왜 이런 지체장애를 가진 자식을 하느님에 주신 건지 하늘을 원망했다. 아이에게 전념하느라 시댁과 친정과도 거의 인연을 끊고 지냈다. 대학교, 고둥학교 동창회도 참석을 안 했다. 아니, 못했다. 오직 첫 달을 위해서 모든 것의 제1 결정이 지체장애 딸을 위해 모든 결정을 그 애 위주로 결정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나이가 되어도 발음이 부정확하고, 손의 기능이 땅바닥의 동전을 줍지 못했다.
안산 단원 고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간병인사무소 ‘데레사 간병인회’를 개업했다. 원래 은경의 전공은 수학교육과지만 대학 때 일반선택으로 특수교육도 공부했다. 속초 고등학교 사표를 내고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안산 일대의 간병인이 필요한 병원에서 은경은 데레사 간병인을 파견 보냈다.
진호는 1990 년 10 월 2 일 부대이동을 하였다. 전방 철책을 지키던 2 대대가 예비 부대로 이동하고 3 대대가 철책선 경계근무를 하게 되었다. 동해안 최북단 통일전망대를 기준으로 해안 명파 마을부터 북으로 통일전망대 좌측 1 킬로미터까지 9 중대가 담당했다. 그 좌측이 10 중대 그 왼쪽이 11 중대 순으로 책임구역이 정해졌다.
10 월 9 일 한글날이었다. 철책선 경계 근무는 그날이 일요일이든 국경일이든 하는 일은 똑같다. 야간 경계 근무를 철수하고 실탄을 반납하고 소총을 어깨 위로 하고 격발을 했다.
“이상 무!”
“이상 무!”
아침 식사를 하고 해안을 멀리 볼 수 있는 고가초소만 점령했다. 오전 10 시쯤 명파 초소에서 상황보고가 들어왔다.
“해안 14 초소입니다. 어선 한 척 북상!”
“알았다, 계속 감시하라.”
“전 초소 들어라 명파 초소에서 어선 한 척 북상 중이다. 어로 한계선 넘지 않게 미리 경고 방송, 경고 사격 준비하라!”
“예, 알겠습니다.”
어선은 계속 북상했다. 바다에 어민들만 아는 부표로 어로 한계선을 설치했는데, 그것을 통과했다. 초소 병력들은 공포탄을 쏘고 실탄 사격도 했다. 신호탄도 올렸다. 어선은 계속 북상했다. 9 중대장 하 대위는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대대장님, 9 중대장입니다. 어선 한 척이 어로 한계선 가까이 북상합니다. 소총으로는 신호가 안 되니 106 미리를 사용하겠습니다.”
“월북자 아니야?”
“현재로는 월북 기도인지 단순 북상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현지로 갈 텐데, 9 중대장은 어디에 있을 거야?”
“예, 통일전망대 106 미리 초소로 오십시오. 거기서 106 미리로 배를 돌리겠습니다.”
“배를 돌리는 것보다 명중시켜 수장시키는 것이 어떠냐?”
“아닙니다. 배 후미에서 전방으로 포탄 나가게 하여 배를 돌리겠습니다.”
9 중대장은 부대대장 조 규정 소령에게도 전화를 했다.
“부 대대장실, 김 상병입니다!”
“음, 나 9 중대장이다. 부대대장님 바꿔라.”
“지금 주무시는데요.”
“야, 실제상황이라고 전화받으시라 해!”
“9 중대장, 뭐야?”
“충성! 실제상황입니다! 어선 한 척이 어로 한계선을 넘어 북상 중입니다. 통일전망대에서 106 미리로 선수를 돌리겠습니다.”
“대대장님은?”
“통일전망대 106 미리 진지로 온다고 했으니 부대대장님도 그리 오십시오.”
“알았다!”
106 미리 분대장 안봉희 하사가 9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중대장님, 106 미리 2 정 배에 조준 완료했습니다. 사격하겠습니다.”
“배를 명중하지 말고 뒤에서 배 밑으로 포탄이 지나가 배를 돌리도록 하라!”
“중대장님! 차라리 명중이 쉽습니다. 그게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안 봉희 하사에게 명령하는 거다.”
“예, 알겠습니다. 줄이기 5 미리 발사!”
“발사!”
“쾅! 쾅!”
두발의 106 미리가 발사되자 배 앞에 하얀 물기둥이 솟았다. 배는 천천히 선수를 돌려 남하하기 시작했다. 106 미리 사격으로 고가초소 비닐막이 터져나갔다. 통일 전망대 유리창도 몇 장 파손되었다. 배는 남하하여 명파 어민 통제소로 이동했다. 어민 통제소에는 이미 사단 기무부대장, 사단 정보참모, 기무부대 전방 담당 반장, 해양경찰 정보과장, 거진 경찰서 정보과장, 국가 안전기획부 속초 파견관 등이 집결했다. 명파 어촌계장 이 선훈 씨도 나왔다. 명파 소초장 최기철 중위가 남하하는 배를 소총을 겨눈 상태서 어민 통제소로 나왔다. 최 중위로부터 신변을 인도받은 헌병이 헌병 차량에 태워 호송했다. 거진 경찰서 명파 파출소에서 최초 합동 신문을 하였다.
< 최초 합동 신문 조서>
-성 명 : 전창우 (54 세, 남)
-주민번호 : 351214-1056***
-주 소 : 강원 고성군 현도면 명파리 산 65 번지
-직 업 : 어 부
**** 월경 경위 *****
상기 명 전 창우는 1990. 10. 8 일 자신의 어로 잡이 배가 엔진에 문제가 있어 거진 항에서 수리를 하였으나 재차 고장이 발생하여 속초 대포항 대명 공업사서 선박을 수리하여 명파로 오던 중 배안에서 음주(소주 4 병)로 명파 어민 통제소를 지나 월경한 사고임.
-대공 용의점
본인의 진술과 명파리 가족관계, 개인 채무 등 모든 점에서 월북 사유가 없어 단순 월경으로 대공 의심할 사항 없음.
**** 조사 자 ****
- 00 사단 정 보 참 모 중령 윤 영 빈
- 기 무 부 대 파 견 반 대위 김 종 오
- 해양경찰 속 초 서 경위 박 재 집
- 거진 경찰서 정보과 경위 장 재 길
- 국가안전기획부 4 급 양 성 철
이 사건으로 최초 발견자 최기철 중위, 통신병 이헌정 일병이 사단장 표창을 받았다.
합동 신문조가 최초 발견 지점부터 마지막 106 미리 발사까지 전 과정을 조사했다. 사단 군수처에서는 소모한 실탄과 예광탄 공포탄을 보충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자 하 진호 대위는 철모를 쓰기 전에 철모 속 숨겨둔 흑백사진 은경의 검은색 교복에 하얀 칼라가 눈부신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10 월 10 일 3 대대장실에서 주요 직위자 회의를 하였다. 대대장 정 건영 중령은 이번 10월 9일 민간 선박 월경 차단 작전은 결과는 좋았지만 우리가 반성할 점이 많다고 했다.
“9 중대장! 발견은 명파 초소에서 했는데, 왜 배의 선수를 돌리지 못하고 월경선 직전까지 갔지?”
“예, 저도 참 그 점이 답답했습니다. 해안 4 소초부터 호각 불고 신호탄 쏘고, 공포탄 실단 다 쏴도 바다에 얼마 안 가 물속으로 들어가지 배에 경고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맨 마지막 106 미리 아니었으면 월북 못 막았을 것입니다.”
“뭐, 획기적인 방법 없을까?”
“중대장에게 106 미리 진지 이동하여 해안 4 초소나 3 초소에서 사격할 수 있다면 통일 전망대 가기 전에 배를 저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 앞으로는 교전 교칙 변경해 평시 월경 방지 위해 106 미리를 진지 이동하여 사격할 수 있도록 개정하도록, 작전장교 알았지?”
“예, 수정하겠습니다!”
부대대장 조규정 소령이 한 마디 했다.
“야, 9 중대장 106 미리로 배를 명중시켜 격침시키면 우리가 다 훈장이나 표창받을 텐데 왜, 명중 안 시켰어?”
“부대대장님, 그 배가 월북의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격침시켜요?”
“야, 9 중대장은 장군 되기 틀렸구나. 장군 되려면 안면몰수하고 격침시킬 기회에 격침시켜야 한다. 이미 명파 초소 넘은 것은 격침해도 너에게 잘했다 그러지 왜 격침 이유는 따지지 않는다.”
“예, 다음 이런 기회 오면 격침시키겠습니다!”
“너 앞으로 제대하는 날까지 그런 기회는 없다.”
“9 중대장은 훈장 탈 수 있는 기회 잃어버린 거야!”
“그렇게 훈장 받으면 마음 편하겠어요?”
그 말에 대대 회의 참석자 모두 웃었다.
2000 년 6월 15 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였다.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로 2004 년 5 월 26 일 남북 장성 회담이 열렸다. 남북의 합의로 쌍방의 상호 비방 금지, 선전 수단을 철거하기로 했다. 전선 155 마일 요소요소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과 백령도에서 우측 최북단 통일 전망대까지 북쪽으로 시계가 확보된 곳에 설치된 11 개의 대형 전광판을 철거하기로 했다. 아울러 북으로 보내는 전단(전단) 140 만 장을 폐기하게 되었다. 하 소령은 대북 선전을 전담하는 국군심리전단의 군수과장이 되었다.
6.15 남북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로 이루어진 명령이라 철거 기간이 6 월 16 일부터 8월 15 일 00시였다. 그러니까 8 월 14 일까지 끝내라는 뜻이다. 국군심리전단장 서경석 대령은 심리전단의 주요 직위자들을 지휘통제실에 모아 놓고 훈시를 하였다.
“여러분 TV 뉴스를 봐서 알겠지만 남북 장성 회담서 쌍방의 선전수단을 철거하기로 하였습니다. 기간이 6 월 16 일부터 8월 14일까지 끝을 내야 합니다.
이런 중대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틀림없이 철거 현장에 국내외 언론들이 보도하러 올 것입니다. 절대로 인터뷰하기 전에 단본부의 승인을 받고 인터뷰하고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랍니다.
작전과장은 철거 계획을 일자별로 수립하고, 군수과장은 재산 대장 정리 빠짐없이 하기 바랍니다. “
군수과장 하 소령은 재산대장을 꺼냈다. 전광판 하나 설치에 2 억 들었고 11 개 설치되었으니 22 억, 그 22억짜리가 철거하면 하나에 2-3 만원 고철이 되는 것이다. 1월부터 4월까지 전방 확성기 방송시스템을 정비하고 그 수리부속 트랜지스터를 도시바 정품 하나에 6600원 하는 것을 3000 원짜리 비급으로 구매하고 영수증 정리는 6600 원으로 해서 그 차액을 비자금으로 만들라는 단장의 지시를 안 들어 군수과장과 단장이 한동안 소원했다. 이렇게 철거하고 없어질 것이라면 단장 품위 유지비나 만들어 좋은 놈 소리나 들을 걸 하는 후회도 되었다. 한편 아니야 하진호, 넌 잘한 놈이야 세상에 돈으로 되는 일이 있고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확실하게 단장에게 보여준 몇 안 되는 훌륭한 장교야 하는 소리도 들렸다.
8 월 14 일 모든 선전수단을 철거했다. 확성기 방송세트 52 개소, 대형 전광판 11 개소 철거를 완료했고, 1 억장의 전단은 중대별로 지역 소각장에서 전량 소각 전에 사진 찍고 소각 장면과 소각 후의 사진을 찍었다. 전광판은 고철로 1 개소에 2만 6 천 원 고철 값을 국방부 군수국에 국고반납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8 월 14 일 24시, 즉 8월 15 일 0시를 기하여 자유의 소리 방송으로 불리던 대북 라디오 방송을 중단했다. 군수과장 하 소령은 정비 군무원 이 동진 주사와 정비관 홍성덕 사무관을 대동하고 용문산 중계소에 올라가 중계 장비 전원을 껐다. 모든 작업을 완료하고 하 소령은 철모를 쓰기 전에 철모 속 숨겨둔 흑백사진 검은색 교복에 하얀 칼라가 눈부신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이렇게 모든 임무가 중단된 국군심리전단은 전방의 확성기를 운용하던 인원과 마이크를 잡고 방송하던 여군들이 모두 심리전단 본부로 모였다. 군대는 절대로 밥만 먹고 노는 군인을 그냥 안 두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하던 심리전 -고무풍선에 전단 보내기, 전광판 불빛, 대형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새로운 심리전을 준비하라고 했다.
가칭 ‘사이버 심리전 부대’로 정했다.
정식 편제되기 전 임시 조직으로 군수과장 하 소령이 사이버 심리전 팀을 맡기로 했다.
장비를 철거한 부대의 군수과장은 그야말로 할 일없는 백수 소령으로 육군본부서 본 모양이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대북 방송을 하던 여군들 40여 명과 전방에서 방송 장비를 조작하던 남자 군인 16 명 하 소령까지 총 57 명이 사이버심리전 부대 창설요원이 되었다.
하 소령은 사이버 심리전 부대 57 명의 교육훈련 계획을 작성했다.
이미 북한은 미림대학이라는 곳에서 대량의 해커를 양성하고 대남 사이버 심리전을 중국에 나와 출처불명의 인터넷 주소를 사용해 미국과 일본과 한국을 대상으로 해킹도 하고 사이버 폭탄도 전파하는 시기에 하 소령은 부대원 훈련계획을 작성했다.
이미 컴퓨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여군들은 아우성이었다. 신윤희 중사가 최고로 불만이 많았다.
“하 소령님, 면담 신청하겠습니다.”
“신 중사가 나를 면담?”
“예.”
“그래, 점심 식사하고, 내 방으로 와.”
“예, 알겠습니다.”
하 소령이 점심을 먹고 자기 방으로 오니 문밖에 신윤희 중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손님을 기다리게 했구나. 어서 와!”
“예, 여기 하 소령님 좋아하는 캔 커피 하나 들고 왔어요.”
“아이코, 이거 손님에게 대접해야 하는데, 손님이 마실 것을 들고 왔네?”
“그럼요, 그동안 하 소령님에게 얻어먹은 아이스크림이 몇 개인데, 이 정도는 제가 해야지요.”
“신 중사가 나를 면담하는 요지는?”
“하 소령님 초안 만드신 우리 교육계획 제가 봤는데요, 요즘 누가 DOS를 배워요?”
“여군 하사들이 이거 보고 다 웃었어요.”
“왜?”
“마우스로 끌어다 붙이면 다 되는 윈도 세상에 하 소령님이 우리에게 DOS 배우라고 하니 하사들이 낄낄거리지요?”
“그럼, 신 중사는 낄낄거리는 하사 혼내주지 같이 낄낄 거렸어?”
“그럼요, 얼마나 한심 해요. 윈도 세상에 한 참 뒤진 도스를 배운다는 것이 웃음거리 아닙니까?”
“신 중사,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마우스로 무엇을 검색하는 일도 있지만 컴퓨터 저 밑바닥에서부터 공부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야.”
“그게 뭔데요?”
“그건 나도 몰라.”
“모르면서 어떻게 저 밑바닥부터 공부해야 한다고 DOS를 교육과목에 편성합니까?”
“음, 거시기 뭐냐 신 중사 해킹 알아?”
“알지요.”
“해킹하려면 어떻게 하는데?”
“해킹 프로그램 검색하면 세계적 유명한 프로그램 떠요, 그중에서 내가 사용할 프로그램 클릭하고 끌어다 쓰면 되죠?”
“그래, 그런데 만약에 말이야 새로운 해킹 프로그램 만들라고 하면?”
“그걸 왜 만들어요? 해킹하라면 하면 되는 거지?”
“야, 북한 미림대학 출신은 이미 해킹프로그램 만들어 활용하는데, 우리는 맨 날 남이 만든 해킹 프로그램 클릭이나 해서 북한을 이길 수 있어?”
“내가 지금 우리 교육계획을 짜는 것은 당장 뭘 하자는 것이 아니야, 당장 뭐 할 수 없고, 난 이미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 기회 다 지나 막말로 내년이면 직업 보도 가고 나 몰라 할 수도 있는데, 명색이 예비역 영관 장교가 떠난 후에 욕먹으면 안 되니까, 최소한 후배 장교에게 욕 안 먹게 하려고 교육계획 이것저것 참고하여 짜는 거다.”
“하 소령님, 교육계획 목표는 무엇입니까?”
“거의 국가정보원 심리전국장 수준 질문인데?”
“아이, 농담하지 마시고요.”
“내 교육계획 목표는 미래 언제인지 모르지만 남북이 사이버전을 수행할 때, 북한의 미림대학 출신 사이버전사와 싸워지지 않을 사이버 전사 양성이 목표다.”
“그거 민심부장님이나 심리전단장님 지침입니까?”
“아니, 아직 지침이고 뭐고 없어. 그냥 나보고 미래 사이버부대 만들기 전 단계로 우리가 수행할 일을 하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교육과목을 선정해 보라는 거야.”
“참 막연한 교육계획을 짜고 있다.”
“어머, 벌써 근무 시간 되었어요. 다음에 또 면담하겠습니다.”
신 중사는 신 중사 자리로 돌아가고 하 소령은 계속하여 가칭 사이버 심리전 팀 창설 대비 교육훈련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졸지에 남북이 상호 비방 선전하던 심리전을 동시에 중단하고, 장비를 철거하고 없어지는 부대 마지막 군수과장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이버 심리전이라는 뜬구름 잡는 교육훈련계획을 만들었다.
그래도 여군 하사 중사들은 컴퓨터 실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하 소령이 모르는 용어 나오면 그들에게 물어가면서 교육훈련계획을 완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대가 세월이 지나 대통령 선거에 박 근혜 대통령 당선에 유리한 활동을 하였다는 국가정보원 댓글 기사를 보았을 때 마음이 씁쓸했다. 자식들 내가 이런 한심한 짓거리 하라고 DOS 교육시킨 것은 아닌데. 세월이 지나 진호는 중령으로 진급에 3 회 누락되어 계급 정년으로 소령으로 전역했다.
예비역 소령 하진호는 <늙은 군인의 노래>를 애창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30 년
(중간생략)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술이 얼큰하게 취한 예비역 소령 하 진호는 늙은 군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시흥 사거리에서 은행나무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참 세월 빠르다.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려고 아내는 연대장 공관에서 식모처럼 지낸 일도 있었다. 군수과장 시절에는 군대 납품하는 물건에서 정품과 비품의 가격차이가 많은 것을 이용해 영수증 정리는 정품을 구입한 것으로 하고 실제는 비급 제품을 구입하라는 압력도 받았다. 하 소령은 내가 진급 못하면 못했지 그런 매국노 짓은 안 한다고 거절했다. 중령으로 진급하면 53 세까지 복무할 수 있지만 소령은 만 45세가 정년이다. 만 45세가 되는 2007 년 생일이 지난 익월 말일이 전역일이다. 그래서 5 월 31 일 전역을 했다.
전역을 하고 쉬면서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다. 취직은 안 되었다. 그래서 아파트 경비원을 하려고 이력서를 냈더니, 영관 장교는 연금 받는 것이 있어서 경비원 생활 오래 못한다고 뽑지를 않았다.
최성연은 변호사를 고용하여 이혼 소송을 하였다. 아내의 이혼 조짐은 몇 년 전에 있었다. 애들을 서울로 전학시키고, 하 소령 혼자 전방에서 근무할 때 아내는 서울에서 애들 학교 보내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백화점 문화 강좌에 사진 강좌를 들었다. 대방 여중과 서울 여고 시절 사진반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주변에 대학교 사진학과 출신들이 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사진 강좌를 마쳤다. 더구나 강좌 수료를 기념으로 사진 작품 전시회를 열었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다음 해에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사진 부문 입선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사진 동호회에서 초청이 있고, 지방으로 사진 촬영도 많이 다녔다. 남 녀 사진작가들이 어울려 다니며 사진도 찍고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술도 마셨다. 그래서인지 전방에서 군복 하나로 지내는 하 소령의 아내라는 것이 속상했다. 나가면 최 여사 최 작가! 호칭부터 다른데, 하 소령의 아내라는 것이 짜증이 났다. 애들에게도 네 아버지가 오직 군대만 알고 가정에 불성실해서 이혼하는 것이라고 교육을 해서 딸이나 아들 모두 엄마 편이 되었다.
전방에서 외박 나온 진호를 아내 최성연이 조용히 불렀다. 당신 비뇨기과 검사 좀 받아봐 했다. 내가 왜? 일단 왜 하지 말고 받아보라면 받아봐.
그래 좋다. 내가 비뇨기 검사해서 이상 없으면 다시 외박 안 나온다. 알아서 하셔! 신대방동 조 윤선 비뇨기과에서 검사를 했다. 진호는 비뇨기과 검사에 정상으로 나왔다. 반대로 최 성연이 임질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 사건 이후 하진호는 전방에서 근무만 하고 외박을 얻어도 전방에서 고대산 등산을 하거나 백마고지 노동당 당사 등 전적지 답사로 외박기간을 보냈다.
2009 년 4월 15 일 목동 남부 가정법원에 출두했다. 가정법원 여자 판사가 물었다.
“하진호는 아내를 폭행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진호는 마약을 복용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없습니다.”
“하진호는 알코올 중독자입니까?”
“아닙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번 하진호-최성연 이혼 소송은 2 개월의 숙려 기간을 부여하겠습니다. 그 기간 동안 두 분이 노력해 보고 조정이 안 되면 이혼을 판결하겠습니다.”
2 개월 후 하진호는 가정법원에 출두하지 않았다. 자동 이혼이 되었다. 예비역 소령 하 진호는 오늘도 술이 취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전역 후 여기저기 구직 활동을 했으나 취직이 안 되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막일’ 정식명칭으로 건설 일용직 근로자가 되었다. 시흥 사거리 대우인력에 나갔다. 김 재영 부장이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 처음이시죠?”
“예, 처음입니다!”
“우선 신분증을 주세요.”
“예, 여기 있습니다.”
“혹시 전에 무슨 일 하셨습니까?”
“예, 뭐 이것저것 다했습니다.”
“그럼, 목수일 해보셨나요?”
“아니요, 건설일은 아니고, 과외교사, 외판원 뭐 이런 거 했습니다.”
“아 예, 그럼 오늘 최 진철 팀장이 시키는 일만 하고 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차마 일용직 사무실에 와서 전직이 예비역 소령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하 진호 얼굴이 화끈거렸다. 최 진찬 팀장은 하 진호와 한 살 차이였다. 건설현장에서 5 살 차이는 차이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최 진찬 팀장과는 서로 말을 놓는 친구로 지냈다. 처음 일을 나간 곳이 고척 야구장 건설현장이었다. 기초 공사를 하고 외야 스탠드 공사를 하는 때였다.
최진찬 팀장 이정규, 주준호, 김영철, 송진영, 하진호 등 여섯 명과 교포 4 명이 한 팀으로 갔다. 해체공이 거푸집 해체한 것을 목재는 목재끼리, 철재는 철재끼리 분류해서 다이를 만들어 쌓는 일이었다. 최 진찬 팀장이 하진호는 교포 3 명을 데리고 목수 팀 지원을 가라고 했다. 목수반장이 하 씨! 하고 불렀다. ‘예’ 하고 가니 교포들 데리고 오비끼 50 개만 목수 작업하는 곳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하진호는 오비끼가 뭔지 몰라 최 진찬 팀장에게 오비끼가 뭐여? 하고 물었다. 최진찬은 오비끼 일본말인데 우리말로 상승각이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50 개를 다 나르니 목수 반장이 다시 하진호를 불렀다. 이번에는 다루끼 60 개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번에는 최 진찬 팀장에게 묻지 않고 교포들에게 바로 말했다. 목수반장이 다루끼 60 개 가져오래요. 교포들은 ‘예’ 하더니 바로 다루끼를 나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 건설 일용직 근로자가 되었는데, 정리 공을 하다가 일 년 정도 정리를 하고 해체공이 되었다.
해체하러 여기 시흥시 정왕동 ㈜ 서울 앤 아이 신축공사장에서 해체를 하다가 앵글과 폼으로 연결된 보 바닥을 해체하다가 다쳐서 대퇴부 골절상을 입고 시화 병원으로 실려 왔다.
중환자실에서 8월 19일 하루를 보냈다. 8 월 20 일에 공동 간병인실 707 병실로 이동했다. 환자복 주머니에서 흑백사진 한 장을 꺼냈다. 은경의 사진이다. 흑백 사진을 만지면서 작은 소리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다. 가사 중에 ‘첫사랑 그 소녀는’을 ‘ 첫사랑 박 은경’으로 바꾸어 불렀다.
굳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스 폰 소리를 들어 보렴
첫사랑 은경- 이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 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중간생략)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추석 연휴에도 하 진호는 707 병실에 누워있었다. 추석 연휴라고 참사랑 간병인 협회에서 소장과 부장 과장 들이 각 병동의 간병인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707 병실은 여자 간병인 석미경 여사와 남자 간병인 강철구가 하고 있었다. 여자 간병인이 소장님을 불렀다.
“소장님!”
“석 여사 수고 많아요. 추석인데, 쉬지도 못하고.”
“환자들 간병이 일인데요, 소장님, 추석 잘 보내셔요.”
“여기 작은 선물 세트 준비했어요.”하면서 선물 세트 2 개를 꺼냈다.
남자, 여자 간병인에게 주었다.
박은경 간병인회 소장은 선물을 나누어주면서 병실 환자를 돌아보았다.
순간 하진호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박은경 소장 눈이 빛났다.
은경도 한눈에 진호를 알아본 것이다.
“하진호 환자 분! 휠체어 탈 수 있어요?”
“예, 혼자는 안 되고 휠체어 밀리지 않게 잡아주면......”
간병인이 휠체어를 잡아주고 하진호가 휠체어에 탔다. 왼 다리를 다친 그는 휠체어 왼쪽은 일자로 뻗고 오른발은 아래로 접었다. 왼쪽 다리를 흔들리지 않게 압박 붕대로 묶었다. 석미경 간병인이 휠체어를 말고 병실 문을 나왔다. 박은경 소장이 석미경 여사에게 말했다.
“석 여사는 707 병실 지켜요. 이 환자는 내가 휠체어 밀어주고 갈 때는 병실까지 내가 데려다 줄게요.”
“예, 소장님!”
은경은 휠체어를 밀고 5 동을 지나 엘리베이터에서 1 층을 눌렀다.
1 층으로 내려와 응급실 앞을 지나 하천변을 따라 조성된 갈대 공원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한적한 곳에서 은경은 휠체어를 멈췄다.
은경은 휠체어바퀴를 밀리지 않게 레버를 걸었다.
“진호라고 할까 진호 씨라고 할까?”
“그럼 난 은경아, 은경 씨, 박 여사 중에서 뭐로 불러?”
“그냥 은경이가 좋지.”
“그럼 뭐로 불러야겠어?”
“진호야, 병실서 선물 나누어주고 침대 이름표 ‘하진호’ 이름 보고 동명이인이나 하고 얼굴을 보는데, 너의 눈과 마주친 순간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군대서는 고공 낙하산 탈 때나 유격 훈련 때 포로로 잡혀도 김일성 만세 안 부르고 저항한 힘이 뭔지 알아?”
“뭔 데?”
“이거!”
하면서 환자복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낡은 흑백사진 한 장을 꺼냈다. 은경이 중 2 때 경주로 수학여행 가서 찍어, 편지로 보내준 흑백사진이다.
검정 교복에 하얀 칼라가 눈부신 사진이었다.
“어머, 이걸 아직까지 간직했어?”
“음, 이걸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살았지. 군대서나 사회서나 힘들 때 남몰래 이걸 보며 어려운 순간을 넘겼다. 포로로 잡혀 고문당할 때도 이 사진 덕분에 이겨냈다. 이번 다친 것도 사람들이 그 무거운 거 몸으로 떨어졌는데 죽지 않은 것이 용하다 하는데, 내 몸에 이 사진 숨겨둔 덕이라 생각해.”
“어머나, 나 몰라. 정말 영화 같은 순결한 사랑이 진짜로 있었네!
난 네가 이런 줄도 모르고 시집가기 한 달 정도 전에 네 편지랑 사진이랑 다 태워버렸는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의 이런 맘 몰랐어!”
하며 휠체어 옆으로 와서 진호의 목을 껴안았다. 진호 입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양 볼에 눈물이 흘러냈다. 병원 앞 천변공원에 바람이 불어왔다. 갈대들이 바람에 서로 몸을 비비고 있었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새털구름이 솜처럼 피어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