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면 올무를 만들어 뒷산에 20 개 정도 매설하고 열흘 후에 돌아보면 토끼들이 걸렸다. 어떤 놈은 눈을 감고 어떤 놈은 눈을 감지 않은 것도 있었다. 가장 슬픈 눈이 올무에 걸린 토끼의 눈이다.
안선형을 찾아간 것은 영업을 위해서였다. 상조 한 계좌 4만 5천 원을 가입시키면 10 만원의 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한 달에 15 계좌만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첫 달은 그럭저럭 아는 사람 통해 15 계좌를 달성했으나 다음 달부터는 갈 곳이 없었다.
궁리 끝에 헌책방에서 동기회 인명록을 3 만원에 구입했다. 소대장 시절 동기부터 찾았다.
“예 안선형입니다.”
“선형! 나 영수다. 율곡사단에 같이 근무했었지?”
“야, 이게 몇 년 만이냐?”
“30년은 되었지?”
“반갑다. 지하철 충무로 7번 출구로 나온 방향으로 직진하다 보면 편의점 하나 있고 그거 골목 지나면 5 층 건물인데 1층은 핸드폰 매장, 2층은 출판사, 3층은 광고회사, 4층이 우리 여행사야. 언제든지 놀러 와.”
“여행사 사장님이시구나?”
“사장은 뭐, 여행하는 사람 모집해 가이드 겸 하는 거야.”
“알았다. 오늘은 통화만 하고 며칠 후 시내에 일 생기거든 그때 봐.”
“그래.”
강소팔 영업이사가 교육한 대로 했다.
친한 사람과 통화했다고 바로 방문하면 거절당하기 쉬우니 통화로 인지시킨 후에 뜸을 들이고 방문했다.
“충성!”
“영수야 잘 왔다. 반가워, 이게 몇 년 만이냐?
“1986 년 소위 시절 보내고 금년 2024년이니 44년 만이네?
“참 세월 빠르다. 소위 시절 엊그제 같은데 벌서 44 년이 흘렀구나!”
“그러게 말이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4번 변해서 만났다.”
“나이는 들어도 얼굴 윤곽은 소위 시절 얼굴 윤곽 남아 있다.”
“목소리 조용조용한 거 여전하시군?”
“그래 목소리가 작아서 항상 대대장님에게 혼났는데.”
선형과는 동해안 최북단 통일전망대 부대에서 함께 보냈다. 팔도 사나이 노래처럼 전국의 사투리가 부대에 다 있었다.
우리 대대도 선형은 서울, 나는 강원도 , 박해익 소위는 전라도, 박흥수 소위는 경상도, 이경민 소위는 충청도였다. 부대 일과를 마치면 독신 장교 숙소에서 ‘동양화’라는 은어로 불리는 화투를 즐겼다.
충무로 문무빌딩 4층 여행사에서 인사를 하고 대한극장 옆 골목 식당으로 갔다.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면서 44 년 서로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나누었다.
솔직히 상조 한 계좌 가입해줘 하는 소리가 목구멍에 턱 밑까지 올라왔어도 40 년 만에 만난 동기에게 그 소리는 할 수 없었다. 선형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기로 했다.
질문을 던지고 선형이 대답을 하고, 강 이사가 가르쳐준 대로 머리를 끄덕이면서 칭찬도 하고 맞장구도 치고 고객을 춤추게 만들라는 강 소팔 이사의 말을 잘 실천했다.
그는 광장시장에 있는 박해임에게 전화를 했다.
“선형이다. 해임이 너 전영수라고 알아?
“알지? 소위 시정 통일전망대서 고생했는데요?”
“그래 영수 바꾸어 줄 테니 통화해 봐.”
“여보세요? 박해임이야?”
“오랜만이다.”
“선형 사무실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바로 간다.”
선형, 해임, 영수 셋이 모여 율곡사단 군대 시절이야기를 했다.
“율곡사단에서 전역 전에 개고생을 했다.”
“왜?”
“88 서울 올림픽 전야제 하는 날에 월북 사건이 발생했다. 기억나?”
“아하 조 일병 사건 말이지?”
“그래 내무반에 수류탄 2 발 던지고 월북한 사고.”
“1990 년에 중대장을 강학수 대위에게 물려받았는데 월북사고 난 부대더라고."
"고생 좀 했겠다."
"그럼 전투력 최하 중대를 야금야금 끌어올리고 전방 철책 들어갈 때 1988년 사고 당시 이병이 병장이 되어 이들을 핑계로 대대장에게 철책 들어가는 위치를 9,10,11중대 순이 아니라 11,10,9 순으로 해달라고 했지. 거기서 순찰을 돌다가 박해임도 만나고."
"선형은 1988년 전역한 후에 어떻게 지냈어?
“처음에는 포드자동차 디자인실에서 일하다가 제일기획으로 이직해서 3년 일하고 94년도에 일본 유학을 갔어. 거기서 디자인 공부를 좀 더 했지. 그런데 말이야 니들 정호영, 윤종필, 백 운택, 김병욱 알지?”
“알지 윤종필은 임관 10 주년 행사에 행사준비위원장도 했었어요.”
“그놈들이 나를 간첩으로 몰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교도소 생활 2 년 했다.”
“뭐야?
“아니 무슨 오해받을 짓을 했기에 간첩이 된 거야?”
“일본 유학 시절에 돈이 없어 민족장학금을 받았거든.”
“민족장학금 그거 조총련계통 자금으로 만든 장학회인데?”
“그걸 알아?”
“알지? 정보장교로 20 년 굴러먹었는데, 반국가 이적단체와 지령을 따라 하는 인터넷 사이트 종류별로 다 구분했었지.”
“그런 일도 했어?”
“2012년 전역할 때 보안서약서 5 년 이내 해외 나가지 않을 것이며 군대서 득문한 사항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해서 모르쇠로 살아왔지 이제 다 지나서 말할 수 있다.”
“그럼 너도 민족장학금 받을 걸로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보이니?”
“아니, 민족장학회가 조총련 계통의 자금으로 만들어지긴 했는데, 후에 민단 자금이 보태져서 지금은 남이나 북이나 구분 없이 일본에 와서 공부하는 한국인 중에 재능 있으나 어려운 학생 남북 구분 없이 장학금 주는 걸로 회칙을 바꾸어 장학금 받은 것은 문제 안 되는데 그걸로 간첩을 만들었다 납득이 안 간다.”
“어떤 놈이 간첩을 만든 거야?”
“정호영, 윤종필, 백운택, 김병욱이야.”
“백운택은 처음부터 장기 복무한 것이 아니고 자기는 5 년 근무하고 나간다고 표창을 육사나 장기 복무하는 동기들에게 양보하다 보니 막상 대위에서 소령 진급할 때 1차로 못하고 2 차로 했고, 소령에서 중령도 3 차에 했고 중령에서 대령도 3 차에 했다는 것이야. 그런데 사실은 정 호영, 백운택, 김병욱, 윤종필은 진급해서는 안 될 놈들이 진급한 것이라고 아는 동기들은 다 알고 있어.”
“정호영 육군대학에서 시험부정 사건은 나도 들어 알고 있어. 육군대학 입교했는데 정호영이 한 기수 앞에서 공부했어. 육사 출신끼리 스터디 결성했는데 정호영이 기무에서 잔뼈가 굵었고 육군대학을 마치고 다시 기무부대로 원복 된다고 하니 교관들도 정에게 밉보이면 안 될 거 같으니 시험문제 초안을 흘려준 것이지. 답을 미리 다 외워서 문제를 읽지도 않고 답을 쓴 것이야. 시험 마치고 나와서 외운 답을 서로 불러 맞춰보니 육사 중에 똑똑한 몇 명이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에 투서를 한 것이야.
육군본부 5 부 합동검열 나오고 육군대학 창설 이래 최고의 수치스러운 날이라고 했다. 시험문제 유출에 관련된 교관은 교관 임기 전에 야전으로 방출되어 갔고, 정호영과 같이 공부한 육사 중에 잘 나가는 몇 명이 정호영은 절대로 소령에서 중령 될 수 없게 육군 본부 인사운영통제실에 감시하겠다고 까지 말을 했거든.”
“그런 정호영, 백운택도 예비역 중령이야.”
“그렇게 주변에서 진급하면 안 된다는 소리 들은 놈들이니까 비장의 카드를 쓴 것이 나를 간첩으로 만들고 역할 분담을 해서 내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 다들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을 했고 그중 둘은 대령으로 전역을 했다.”
“영수는 보병이 왜 정보를 했어 그냥 보병으로 있으면 중령이나 대령은 될 텐데?”
“율곡사단에서 중대장을 하고 2 차 중대장 간 것이 부산에 있는 군수사령부였어요. 거기서도 보직 마칠 것 다 마치고 나니 명령 난 곳이 정보사령부 전투서열 장교를 명령이 나더군. 그거 마치고 대위에서 소령 진급을 했는데 용지를 주면서 정보에 O표 한 사람은 정보사령부서 근무하고 X표 한 사람은 야전으로 방출된다는 거야. 그래서 정보에 O 표하고 남아서 정보장교하고 소령으로 20년 만기 채우고 전역했다.”
“고생했구나?”
“고생은 뭐 다 밥 먹고 사느라고 직업으로 한 거지?”
“정보장교는 약간의 머리도 있어야 하고 순발력, 담력이 있어야 하는데, 네가 정보장교라는 것이 신기하구나?”
“말 가는데 소도 가. 군번이 좀 늦어 그렇지 남 하는 만큼 해.” 전국 각지에서 훈련은 따로 받았지만 동기라는 이유로 어디를 가더라도 말을 놓고 지내는 동기 4 명이 한 명을 간첩으로 만들고 4 명은 승승장구해서 연금을 받고 살아가고 간첩으로 몰린 동기는 20 년 동안이나 법정과 변호사 사무실을 드나들어야 하는가?
선형은 홀어머니가 식당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자식 공부를 시켰다. 아들이 합격하자 동네 어른들을 불러 없는 살림이지만 국수 대접을 했다. 그 아들이 간첩으로 몰리자 기절을 했다. 선형은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아들 하나 믿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아들을 키웠는데 그 아들이 간첩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없고 재산 없어도 자식은 학교에서 지우개 하나 남에게 빌려 쓰지 않게 키웠는데 아들이 간첩이라고? 어머니는 그렇게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고인이 되었다.
충무로 여행사에서 안선형, 박해임, 전영수 3 명이 모여 캔 맥주를 마시는데 TV화면 자막에 안보지원사령관에 함영신 중장 내정이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야, 기무사령관에 선배 함영신 내정이란다.”
“함영신, 잘 알지. 부산 군수사령부 의장대장 시절에 사령관 비서실장이었어요.”
“도움 좀 받았겠네?”
“의장대는 행사가 생명인데, 공문이 인사처에서 수발로 내려오면 준비 시간 촉박하거든. 비서실에서 행사 관련 공문은 바로 의장대 전령 오라고 해서 바로 복사해 주었다. 의장대장 18 개월 동안 행사 준비시간 촉박한 일은 없었다.”
“그럼, 영전 축하드린다고 전화해 봐?”
“그럴까?”
휴대폰을 눌렀다. 신호가 갔다.
“예, 함영신 중장입니다.”
“충성! 전영수입니다. 선배님! 군수사령부에서 의장대장 지낸 전영수 대위 기억하시죠?”
“그럼, 기억하지. 지금은 후배는 어떻게 지내나?”
“선배님은 별 셋까지 가시는 동안 저는 소령으로 전역해서 상조회사 일 하고 있습니다.”
“그래, 열심히 잘하고 언제 시간 되면 사령부 놀러 오게.”
“예, 알겠습니다. 충성!”
“야, 그렇게 싱겁게 인사만 하고 끊으면 어떡하니? 선형 억울한 사연 사령관 재임 중에 해결해 달라고 해야지?”
“30년 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가 전화로 사건 말하면 실례지?”
“동기회 밴드에 간첩사건에 대한 글 올렸다가 얼마나 항의를 받았는지 모른다.”
“왜?”
“재판 진행 중인 것에 대해서는 일체의 중립을 유지하라고.”
“무슨 중립을?”
“그러니까 선형 재판에 우호적인 한 편과 정 호영, 백운택, 윤종필, 김병욱 등이 속한 한편을 나누어 중립을 지켜달라는 뜻이겠지?”
“동기회 집행부 미친 새끼들 아녀?”
“세상이 그런 걸 어떻게 해? 소크라테스 형에게 물어봐?”
"너 정보장교라면서 의장대장도 했어?"
"처음에는 장군 되려고 보병 장교였다. 그러다 소령시절에 보병이 정보사령부에 근무하는데, 정보 하면 남고 보병하면 야전군으로 나가라고 하더군. 그래서 정보가 되었지.”
"정보장교면 북한 정보 많이 알겠네?"
"그 후로는 전혀 남조선은 신경 끄고, 북조선만 신경 쓰다 보니 선형이 억울하게 간첩이 되었고, 20 년이나 재판 진행 중이라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다시 전화를 했다.
“충성! 안보지원사령관 내정 축하드립니다.”
“후배 고맙네!”
“선배님 안보지원사령관 가시면 동기생 안 선형 간첩사건을 재조사해주세요?”
“그 사건은 이미 오래전에 판결 났는데, 재조사한다고 뭐 달라질 것이 있겠어?”
“당연히 재조사를 해서 동기를 간첩으로 만든 네 명의 연금을 삭탈해야죠?”
“그거 쉽지 않아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국회의원 중에 몇 명이나 찬성하겠어?”
“그럼 청와대 신문고에 올리겠습니다. 나중에 저를 원망하지 마세요.”
오래된 이야기라 지금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일본에서 (고) 김 대중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 시절에 납치된 일이 있었다. 한국의 정보기관이 일본에서 미행을 하고 요인을 납치한 것이다. 일본 신문은 한국이 일본의 주권을 침해했다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며칠이 지나고 일본에서 납치된 야당 정치인 김대중은 동교동 자택에서 몰골이 초췌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일본에서 괴한에 납치되었는데, 그건 안기부 공작이라고.
2002 년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안선형은 남산대학교 응용미술과 강사를 했다. 강사 월급이 많지 않아 가족들과 외식도 별로 하지 않았으나 어버이날이라고 노모와 아내 초등학교 4 학년 딸과 외식을 하러 나섰다. 고려대학교 근처의 ‘숲 속의 전설’이라는 음식점을 향하는 길이었다. 전철 고려대역에서 교통카드를 찍고 나오자마자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신분증 검사를 했다.
“안선형 씨 맞죠?”
“예, 그렇습니다만......”
“서울지방경찰청 보안과 배상찬 경위입니다. 당신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아니, 동명이인도 있을 텐데 저는 간첩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간첩인지 아닌지는 가서 조사받으면 알게 됩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80 노모와 아내, 초등학교 6학년 딸 앞에서 가장이 수갑에 채워졌다. 바로 특수차량으로 태워져 홍제동으로 향했다.
남영동 대공 분실이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인권유린의 역사적 교육장으로 사용하겠다고 시민에게 공개하는 바람에 없어진 분실을 홍제동에 새로 지은 것이다.
홍제동 분실에서의 1 호 피의자가 안선형이 되었다. 입고 있던 자신의 옷을 벗고 분실에서 주는 푸른색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조사실은 지하 1 층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알려진 남영동의 물고문 시설 욕조 대신 일반 화장실일 설치되었고, 전기고문, 기타 고문의 자재는 남영동이 별반 차이가 없었다. 조사관 이상준 경위가 백지 10 장과 볼펜 한 자루를 주면서 그동안 일본과 한국을 왕래하면서 득문한 것을 모두 적으라고 했다.
조사관님, 저는 정말 간첩행위에 대해서는 적을 일이 없습니다.
이 새끼가 인간적으로 잘해 주니 뭘 쪼르르 네 한번 맞아야 제대로 쓰지? 하면서 걸려 있는 가죽채찍으로 등짝을 내리쳤다.
“아야!”
“아야! 아야 소리 지르면 지를수록 너에게 채찍 돌아가는 숫자만 늘어간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일본 여행하면서 졸업여행 간다고 신고하고 현역 소령을 일본 여행에 동행시킨 적 있지?”
“예, 그건 그 동기가 여행을 좋아하는데, 군인이라 여행 갈 기회를 얻을 수 없다고 해서 제가 차후 군대 장교 후보생이나 육사, 해사, 공사 생도들도 해외 탐방 기회에 우리 여행사가 오더를 받을 수 있게 영업적 차원에서 우선 잘 나가는 S대 동기라 먼저 여행을 맛보기 해 준 것입니다.”
“그래, 맛보기 여행 했으면 다음 여행은 왜 진행 안 했어?”
“그 후로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안 하고 전문 여행가이드로 나서서 동기생을 여행시키지 않아도 계속 일감이 있어서 진행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백 소령을 일본 여행시키면서 민족장학회 현 송월 과장은 왜 인사시켰어?”
“예, 그건 제가 일본서 쓰쿠바 대학원 미학석사과정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분이라 일본 방문할 때마다 의례적으로 인사하는 것이지 백 운택 소령을 특별히 인사시킬 목적은 아닙니다.”
“그래?”
“예.”
“여기 백운택 소령 진술서 있거든 읽어봐!”
“저는 정말 백 소령이 왜 이런 진술서를 썼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백 소령이 이런 진술서를 썼는데 그걸 보고도 아니라고 하는 네가 이해 안 된다.”
“백 소령을 불러주세요. 제가 직접 물어보겠습니다.”
“왜 둘이 입을 맞추려고?”
“피의자끼리 절대 대면 금지라는 것도 모르니?”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는 말처럼 일본여행 잘 다녀오고 민족장학회 최 송선 과장에게 대접 잘 받아 감사의 편지까지 쓴 백 소령은 진술서에 자기는 학생들 수학여행 코스를 벗어나 민족장학회 사무실을 방문하고 거기 현 송월 과장과 자신을 인사시킨 의도를 알 수 없다고 썼다. 또 한 장의 진술서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더 심하게 일본의 민족장학회 최 송월 과장이 나중에 알고 보니 대외적인 직함은 민족장학회 과장이지만 사실은 일본을 거점으로 한국의 정보를 수집하고 고정간첩을 만드는 공작책임자라고 섰다.
홍제동 분실에서 고문과 회유를 받아가면서 선형은 조사관이 원하는 대로 진술서를 썼다.
진 술 서
○ 성 명 : 안 선 형(安善炯)
○ 주 소 : 서울시 관악구 난곡로 123-1
○ 연락처 : 010-2385-7 XXX
○ 학 력 : 일본 쓰쿠바 대학원 예술분석 석사과정(수료)
본인은 200X.6.21일부터 6월 30일 근무하는 남산대학교 응용미술학과 졸업생 졸업 여행에 학생이 아닌 현역 군인 백 운택(白雲澤) 소령을 대동하여 여행을 했습니다. 제가 일본에 유학시절 민족장학회의 현 송월 과장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최 과장이 한국에 전역한 장교 말고 현역장교 가급적 위관 장교보다는 직급이 높은 장교를 친구로 사귀고 싶다고 해서 제가 대학교 동기이고 특수전 사령부에서 본부근무대장을 하고 있기에 차후 중령 진급도 무난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현 과장에게 이 동기생을 소개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학생들 수학여행에 포함시켜 여행을 했습니다.
위에 기술한 내용은 거짓이 없이 진술했습니다.
20XX. 5. 16.
진술인 안 선 형 (서명)
조사관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진술서를 들고 조사실을 나갔다. 한참 후에 사진 한 장을 들고 조사실에 와서 물었다.
"이 사진 안 선형 당신이 찍은 사진 맞아?"
"예, 맞습니다."
"여기가 어디야?"
"열쇠 전망대입니다."
"여기 윤 소령 진술서 있는데, 윤 소령이 찍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도 찍었지?"
"아닙니다. 전혀 그런 말 들은 적 없습니다."
"야,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중위로 전역한 동기가 전방 철책부대 그것도 최전방에 와서 북한을 바로 코앞에 두고 사진 촬영하면 그걸 잘 찍으라고 하는 군인 봤어? 무조건 군사시설 보호 구역 안에서는 사진촬영 금지 표시가 통문에 들어가는 곳에 주의사항 설치되어 있는데도 넌 그걸 무시하고 직은 거고 그 사진도 일본 민족장학회 현 과장에게 주었고 그 사진이 북으로 넘어갔으니 넌 간첩 아니라고 우겨봐야 넌 이미 간첩이야."
진 술 서
○ 성 명 : 윤 종 필(尹鐘必)
○ 주 소 : 서울시 금천구 시흥대로 52-18
○ 연락처 : 010-6464-7 XXX
○ 학 력 : 서울 명지대학교 경영학과(19XX)
본인은 198X.3.4. 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전후방 각지에서 근무하던 중 20XX. 6.6일 현충일에 동기의 방문을 받고 부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안 선형이 여기 경치 좋은 곳이 어디냐고 해서 열쇠 전망대가 가장 북한 땅이 잘 보인다고 했더니 가자고 해서 안내했습니다.
철조망을 카메라로 찍으려는 것을 야 군사시설 보호구역에서는 촬영금지야 했더니 꺼냈던 카메라를 가방에 다시 넣더군요. 그래서 사진 촬영을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사진이 안 선형이 찍은 것이라면 분명히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상기 내용은 거짓이 없이 진술했습니다.
20XX. 5. 16.
진술인 윤 종 필 (서명)
"윤 소령 진술서 보고도 넌 아니라고 했지?"
"예, 정말 윤 소령에게 제지를 당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넌 아무 죄 없고 현역으로 장기 복무하는 동기들 책임이라 이거지?"
"그런 건 아닙니다."
"아니긴 넌 지금까지 현역 소령들 진술서 보여주면 다 부정했어."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놈 정말 나쁜 놈이네. 저를 도와준 동기들을 완전히 노리개로 생각하는 놈이네."
홍제동 분실에 조사를 받고 구속 수감된 안 선형은 200X 년 12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 년 4 개월의 형을 받았다. 옥중에서 항소를 하여 200X 년 5월 31일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방첩과 정 호영 과장은 사령부에서 미행을 가장 잘하는 박 성규 상사와 안 용호 상사를 불렀다. 정보사령부, 기무사령부 정보업무를 하는 군부대는 민간인을 만나는 것에 대비해서 군대 계급 대위, 소령, 상사 등 대신에 직급 높은 대령은 전무, 중령급은 부장, 소령은 과장, 부사관 중사, 상사는 계장으로 호칭했다.
"부르셨습니까? 과장님!"
"그래, 박 계장 안 계장 둘이 우리 사령부에서 미행을 가장 잘한다고 해서 이번 공작에 투입하는 것이니 실수 없이 하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특수임 무니까 이걸 잘 수행하면 나는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하고 야전에 있는 동기들 3 명도 모두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자고, 박 계장 안 계장도 과장으로 승진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장교가 대령에서 장군 승진하면 기뻐하듯이 하사, 중사, 상사 지나온 기무부대 계장이 준위가 되는 것은 육군 대령에서 장군이 되는 것만큼 힘든 것인데 이번 공작만 잘하면 승진한다는데 두 명의 계장은 날아갈 듯 기뻐했다.
정 과장은 특수 임무라서 국가정보원에서 외교부와 일본 경시청 조사과에 협조 공문을 보냈기 때문에 일본에 가면 통역이나 숙박 등 편의를 국가정보원 일본지사가 협조해 준다고 했다.
"여기 공문 가지고 1 처에 가면 두 사람 여권과 공작금을 줄 것이니 수령해서 일본으로 바로 출국하도록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차렷! 과장님께 경례!”
“충성!”
“충성!”
대학교 응용미술학과 졸업여행에 백 소령을 포함시켜 여행을 하는 것을 기무사령부 박 성규, 안 용호 계장에 의해 모두 사진으로 녹음 파일로 남게 되었다.
백 대령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는 갔으나 안 받았다. 윤 종필, 정 호영, 김 병욱에게 전화했으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냈다. 가장 군대서 출세를 했고 전역한 후에도 S대학교 출신답게 S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에서 비상계획관을 하고 있는 백 대령에게 문자를 보냈다.
○ 수 신 : 백운택
○ 발 신 : 전 영수
○ 내 용 : 안 선형에게 영업을 하러 갔다가 간첩 사건으로 동기회 밴드에 글을 올렸더니 민 병달 선배가 한쪽 말만 들어보고 편향되게 쓰지 말고 양쪽 다 들어보고 쓰라고 해서 4 명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모두 받지를 않는구나. 마지막으로 너에게 문자 보낸다. 나를 만나 내 질문에 응하는 인터뷰를 하면 반영해 주고 거부하면 이 시간 이후 내가 어떤 글을 쓰더라도 문제 삼지 말 것.
20XX. 9. 28.
전 영 수
보낸 문자의 심각함을 감지했는지 답장이 왔다.
20XX.10.1. 국군의 날
지하철 4 호선 혜화 역
2번 출구에서
11시 30 분에 만납시다.
백 운택 드림
198X 년 중위 시절 부대 신병교육대 교관을 하면서 대학로에 나와 본 후 31 년 만에 와보는 혜화역 2번 출구였다. 11시 20 분에 도착했다. 백 운택은 정확히 11 시 30 분에 2번 출구로 왔다. 동기라는 것이 참으로 편할 때가 있다. 생전 얼굴도 모르지만 동기라는 이유로 만나자마자 반말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충성! 전 영수다.”
“충성! 백 운택이다.”
악수를 하고 바로 식당으로 갔다. '마라도'라는 일식집이었다. 초밥을 2인 분 주문했다. 맥주도 3 병 시켰다.
“너와 나의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198X 년 3월 X일 소위가 된 후로 지내온 인생역정을 이야기했다. 그중 절반은 자기 자랑이었다. 11시 30 분에 만나 식사를 하면서 13시가 될 때까지 그는 말을 했고 영수는 맞장구쳤다.
“야, 문무대에서 선형과 잘 지냈어?”
“문무대 훈육관은 김 병욱, 윤 종필 , 문 달진, 방 상범 등 많이 있었고, 안 선형은 훈육관이 아니고 행정장교로 늦게 문무대에 왔어.”
“그랬구나?”
“다른 동기들은 5년 근무자들인데, 안 선형은 2 년 3 개월 의무복무로 끝이 났거든 그러니 학교에서 훈육장교 대신 행정장교 보직을 준거야. 선형이 미대 출신이라 학교에 각종 부착물 게시판 만드는 것에 전공실력 발휘했지.”
“너는 문무대가 아니라 국군체육부대에 있었지?”
“그래, 지금은 다 이전을 해서 위례 신도시가 되었지만 그 당시는 한쪽 문무대, 한쪽은 국군 체육 부대였어. 체육교육과 출신이라서 체육부대장 엄 영달 소장 전속부관을 했거든.”
“중위가 장군 전속부관 했으면 최고 보직을 마쳤네?”
“거기서 5 년 복무를 장기로 바꾼 거야?”
“인생 전환점이지 뭐.”
“그런 셈이지.”
“전영수 너는 뭐로 전역했어?”
“소령이다.”
“영수처럼 훌륭한 장교가 중영, 대령, 장군을 해야 군대 발전이 있지?”
“아니다. 내가 소령 전역을 했으니 다행이지 내가 장군까지 했으면 여러 명이 죽는다.”
“무슨 소리야?”
“중대장 시절 19XX 년 부산에서 200 만 평 탄약부대 경비 중대장을 했거든. 그 넓은 지역 언젠가는 첨단 장비로 경비를 해야지 인력으로 경비 한계가 있다고 적외선, 열상 장비로 경계를 한다고 400 미터 시험 구간에 장비를 설치하고 나보고 시험 평가를 하라고 하더군.”
“평가 잘했어?”
“사람이 지나가도 경보음이 울리고, 고양이가 지나가도 울리고, 고라니가 지나가도 울리고 더 웃기는 일은 독수리 훈련에 동기생 조 대위가 팀장이고 팀원 12 명이 왔는데 세상에 스티로폼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사람 크기로 오려서 앞에 가리고 오니 철조망 근접해도 경보가 안 울리는 거야.”
“침투당했네?”
“침투는 당했는데, 철조망 안에 탄약고는 별도 철조망이 있으니 독수리들이 여길 들어간 것이야. 완전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지. 너희들은 생포자들이다. 다 나와해서 우리 중대 상황실로 데리고 오니 팀장이 동기라서 라면에 계란 2개씩 넣어 대접했다.”
“시험 평가는?”
“사실대로 썼지. 사람이 지나가도 개나 고양이 고라니가 지나가도 경보가 울리고 독수리들이 스티로폼으로 몸을 가리고 오니 철조망에 당도해도 경보가 안 울리더라. 이 장비는 납품 불가 판정을 보고 했다. 다음 날 난리가 난 거야. 탄약 창장, 정작과장 탄약사령부 정작처장 대령이 우리 중대 내려와서 일개 대위 놈이 위에서 국방부 장관님도 다 납품받게 승인된 것을 납품 불가가 뭐야? 하더군.”
“그래서 시험 평가 결과 다시 작성했어?”
“그럼, 수정해서 납품 가능 합격(O) 했지.”
“그런 거 보면 군납비리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야?”
“군대 마지막 보직이 국군심리전단 군수과장을 했어.”
“거기서도 군납 비리가 있었어?”
“군수과장이니 검수를 뭐든지 군수과장이 하고 서명을 해야 경리부서에서 군납 회사에 돈이 지불되는데, 심리전단장 서 모 대령이 전광판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를 소니 정품 대신 B 품을 쓰고 영수증 처리만 정품 사용한 것처럼 꾸미라는 것을 내가 거절했다.”
“군수과장, 너 참 이상한 놈이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소령이 되었는지 참 답답하다.”
“단장님 정품을 쓰면 천둥 번개가 쳐도 전광판 하나에 트랜지스터 나가는 수량이 4-5 개지만 B 품을 사용하면 100 개 이상 터집니다.”
“군수과장 해봤어?”
“해 본 것이 아니라 20 년 정비기사들이 수없이 경험한 것이 그건데, 정비기사 말을 군수과장이 들어주지 않으면 누가 들어줍니까?”
“야, 아래 놈들은 다 그런 말을 해도 군수과장이 중신을 잡고 일을 해야지?”
“단장님, 제가 졸업한 용마중학교 교훈이 義에 살고 義에 죽자입니다.”
“그래서 군수과장은 죽어도 B품 안 쓰고 정품만 고집한다 이거야?”
“예.”
“중령 진급 포기한 놈으로 보인다.”
“B 품을 정품으로 납품받은 영수증 가라 정리 나하고 중령 진급하면 뭐가 좋은 데요?”
“그래, 평정이고 진급 추천이고 기대하지 마라.”
“예, 감사합니다.”
20XX 년도에 전역을 해서 20XX 년 12 월에 국방부 합동조사단에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국군심리전단에서 대북방송장비를 납품받은 것이 북한 지역까지 방송이 송출 안 되는 것을 납품받아 군수과장, 국군심리전단장이 구속 수감되었는데 전임 군수과장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수사관이 나에게 신기한 듯이 물었다.
“전 영수 소령님?”
“예?”
“군수과장 전후임자 모두 구속이 되었는데, 전 소령님만 구속 안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훈이 義에 살고 義에 죽자 인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었다.
선형이 국가보안법 재판이 있다고 문자가 왔다. 방청신청을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년 형을 받는 선형의 눈이 올무에 걸린 토끼의 눈으로 보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