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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괴랄랄 Feb 14. 2024

내 딸을 왕따시킨 건 동서의 자식들이었습니다.

파주에 사는 40대 여성

안녕하세요.

저는 파주에 살고 있는 40대 여성입니다.

한동안은 내 딸의 괴로움을 모른 채 살아갔다는 괴로움에 제대로 된 생활조차 못했고, 끔찍하게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근데 이걸 꺼내지 못하고 평생을 산다니... 홧병이 나서 죽어버릴 거 같았어요.


저희 집은 꽤나 안정적인 중산층의 가정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맞벌이 가정이다보니 여유가 없는 사정은 아니었죠. 두 생명이 2년 터울로 저희에게 찾아왔고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요.


모든 일의 시작은 그 때 부터였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학년이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소비가 늘어갔습니다.


"엄마, 애들은 다 아이폰 쓴다는데 나도 아이폰"

"노스페이스 눕시 사줘"


초등학교만 되어도 아이들은 뚜렷하게 원하는 브랜드의 옷, 기기, 장난감이 생기더군요. 하하

뿐만 아니라 또래 아이들에게 뒤쳐질라 공부도 틈틈이 시켜야했기에 말 그대로 허리가 휘었습니다.


남편이 결국 돈에 눈을 뒤집기 시작했죠. 여기저기 투자처를 알아보고 사업을 알아보는데 말릴 새도 없더라고요. 그 때부터 정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집이 망하는 건.

순식간에 빨간딱지가 집을 뒤덮었습니다.

한마디로 밖에 나앉아야 되는 상황까지 온 거예요.

눈 앞이 새까맣게 아득해졌습니다. 나랑 남편놈은 둘째치고, 우리 애들은?


그렇게 손윗동서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친정은 남의 가족까지 받아줄 사정이 안됐기에 최후의 보루로 선택하게 된 곳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후회로 남는 선택이죠.


"어우, 제수씨. 편하게 살아요. 아무 걱정하지말고 일단 수습하는 것만 신경써요"


 아무리 형제끼리 친하다 해도 저에게는 시댁인데.. 당연히 눈칫밥을 배불리 먹는 일상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그 집에도 또래의 아이 둘이 있었기에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딸은 친척 집에서 노는 걸 늘 좋아했었거든요.


"엄마, 나 그럼 이제 언니들이랑 사는거야??

너무 좋아!!! 신난다!!"


큰 아들과 작은 딸 모두 손윗동서인 형님댁 쪽으로 전학갔고 학교 생활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희 부부는 이 끔찍한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는 형님 부부에게 맡기고 미친듯이 일했어요. 하루라도 빨리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요. 일이 끝나면 한밤중이었고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다른 일을 할 틈 없이 기절하는 날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나마 주말을 빼면요.


"미지야? 너 이 멍 뭐야??"

주말에 함께 목욕을 간 아이의 몸에 피멍이 잔뜩 들어있었습니다. 이로 깨문 자국도 있었구요. 순간 머릿 속이 아득해지더라고요.


"아 이거 학교에서 친구랑 싸웠어"

초등학교 여자애들끼리 이빨로 물어가며 싸우는 일이 빈번하게 있나요?? 저는 듣도 보도 못했지만 그건 제가 잘 몰라서. 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추궁했지만 아이는 이제는 화해했으니 그만 물으라며 짜증내더군요. 평소에 잘 챙기지도 못하는 못난 엄마는 또 한 번 못나게 상황을 회피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상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은 많았습니다. 저는 아마 그걸 깊게 생각하기에는 너무 지쳤었나 봐요.


정말 이상하게도 작은 딸은 제가  형님의 두 딸과 대화하는 모습만 봐도 발작수준으로 치를 떨었습니다.

형님의 두 딸 아이들은 굉장히 사근사근하고 어른들과도 말을 잘하는 조숙한 편이었어요. 당연히 우리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기에 고마워서 먹을 것도 사주고 옷도 사주며 잘 대해줬습니다.


"엄마, 준희 언니한테 자켓 사줬어? 왜? 왜???!"

"엄마, 내가 준희 언니가 먹은 그릇 설거지하지 말랬지!!"

엄마의 사랑을 뺏겼다고 생각하는 질투일까.

오히려 저는 아이를 타일렀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이런 생각을 했던 저는 엄마 자격 박탈입니다.


형님의 집에는 작은 창고방이 하나 있었는데, 피아노같은 커다란 악기나 이제는 쓰지 않는 문구용품이 들어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가끔 제가 그 방에서 테이프나 칼을 가져와달라고 하면 딸 애는 답지않게 고집을 피웠습니다. 자기는 절대 그 방에 들어가지 않겠다면서요.


"엄마가 가. 난 안가. 저 방에는 안가."

다른 방에 비해 유독 추운 방이었기에 그랬을까 싶어 그 때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었죠. 참 많은 시그널을 참 둔하게도 지나쳐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 찾아왔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왔는데 반바지를 입고 있던 딸 아이의 종아리에 피가 맺혀있었습니다. 정말 눈이 뒤집히더라고요.

애아빠도 저도 훈육할 때 회초리를 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도 본 적이 없었구요. 당연히 학교 선생님의 훈육이라고 생각한 저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미지야, 종아리가 왜 그래? 누가 그랬어?"

한동안 아이는 말이 없었습니다. 입을 열지 않더군요.

피가 맺힌 종아리를 보고 이미 눈이 반쯤 돌아버린 저는 어느새 아이에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너 뭐했어? 왜 그랬어?? 누구냐고!!!"

딸 아이가 서럽게 울기 시작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어요.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싶은 마음에 아이를 앉혀놓고 조곤조곤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렇게 벌어진 딸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마치 제 머리를 오함마로 내려치는 것 같았습니다.


"언니.. 준희 언니한테 혼났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었습니다. 큰 형님도 아니고 서방님도 아니고 큰 아이한테 혼났다니요. 겨우 2살 차이나는 또래 아이를 회초리로 혼내다니요?? 순간 귀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왜?"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이에게 되물었습니다. 언니한테 대들었나. 언니를 때리기라도 했나? 언니를 할퀴었나?


"학교에서 나댄다고"

...

아이는 제가 없는 낮에 하루에도 수십번씩 큰 애에게 맞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저렇게 터무니 없었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형님의 둘째 아이는 딸과 같은 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생일은 3개월 차이였죠.


큰 아이는 딸 아이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언니라고 불러. 주희가 3개월 먼저 태어났으니까"

딸 아이는 같은 반인 둘째 아이에게 종종 실수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수를 한 날은 어김없이 집에 있는 창고 방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 방에 있는 회초리, 플라스틱 자, 효자손 모든 게 무기였대요.


"너가 잘못했으니까 혼나는거야"

"니 잘못 내가 비밀로 해줄게. 만약 내가 어른들한테 말하면 너네 집 쫓겨날걸?"

그 애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집이 망해서 여기에 얹혀 살고 있다는 걸. 그리고 우리 아이 역시 그 사실을 너무 알고 있어서 그 긴 시간동안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매일을 피똥싸며 일하는 엄마 아빠가 심지어 여기서 쫓겨나기까지 할까봐. 그래서 입을 다물었대요. 그래서 그 말도 안되는 훈육을 견뎠대요.

13살짜리 꼬마에게 저도 남편도 우리 아이들도 꼼짝없이 조롱당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돈을 몽땅 날렸을 때 조차도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방구 뀐 놈이 성낼 때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큰 형님이 회사까지 말도 안되는 개인 심부름을 시킬 때도, 서방님이 거지같고 더러운 농담을 해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습니다.


평생을 짝사랑하겠다는 다짐으로 키운 아이였습니다.

평생을 이 아이에게 을이 되자. 어디가서 다쳐도 실컷 갑질할 한 명의 사람이 되자.

그 날은 그 모든게 다 물거품이 된 날이었어요.

내 딸이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 작은 몸이 최선을 다해서 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 날로 그 집을 나왔습니다.

썅년 나와라 사자후를 지르고 그 창고방에서 개패듯이 패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참았어요.

뭘 해도 복수가 될 것 같지 않아서.


지금 저희 집은 열심히 일해서 다시 여유로운 상황으로 재기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큰 형님 집은 기존 사업이 망해서 작은 집으로 이사갔더라고요. 지금이 복수의 기회일까 싶기도 하네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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