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by 송나영

머리카락을 주워 모으면 가발을 만들 거 같다. 머리에 손만 대도 슬슬 빠진다. 머리 감을 때도 한 움큼의 머리가 빠지니 머리를 빗기가 무섭다. 어찌나 많이 빠지는지 겁이 난다. 나이가 드는 거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도 심란한데 이젠 진짜 노인처럼 머리가 가늘어져서 하늘거린다. 머리카락의 윤기는 온데간데없고 머리카락이 푸석푸석하다. 내가 봐도 이젠 노인이구나 싶다.

몇 년 전부터 부쩍 머리가 빠져서 고민을 하다가 탈모약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 탈모약을 먹었을 때는 머리보다 팔과 얼굴에 털이 수북하게 자랐다. 팔에 털이 덥수룩해서 빗질을 할 정도였다. 나라는 머리는 안 나고 팔과 수염으로 털이 잔뜩 나더니 차츰 머리도 잔디처럼 조금씩 솟아올랐었다. 이제는 약을 먹어도 팔이 덥수룩할 정도로 털이 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작년 겨울에는 심각했다. 거울을 보면 머리통이 훤히 비쳐 보였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바람 한 번 불어주면 머리가 홀랑 다 들려서 머리통이 다 보였다. 앞이고 옆이고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만이 머리통을 살포시 덮은 상태였다. 친구와 함께 쇼핑몰을 찾았다가 거기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을 보니 머리통이 훤히 보이는 내가 폭삭 늙어 보였다. 심란했다.

머리카락 나는 법을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서리태 콩을 사서 밤새 불려서 냄비에 푹 삶았다. 콩 싫어하는데 밥대신 먹었다. 머리가 영양이 없어서 그런가 싶었다. 어느 글에서 어려서 참기름을 발라서 머릿결이 좋고 머리숱이 많다는 얘길 들었다. 참기름을 바르면 냄새 때문에 잠을 못 잘 거 같아 머리에 올리브유를 발랐다. 머리카락이 반짝거렸다. 고기를 요즘 덜 먹어서 그런 줄 알고 잔뜩 먹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숫자가 늘지 않았다. 겨울로 들어가는 문턱에서 단풍보다 더 많이 떨어진 내 머리카락이 방바닥에 널렸다. 바람만 불어도 머리카락이 훌훌 떨어지는 거 같았다.

먹는 약만으로는 부족한 거 같아서 바르는 약을 샀다. 탈모약을 처방받는 병원으로 가서 처방전을 받았다. 약국에서는 왜 이걸 처방전을 받았냐고 한다. 바르는 탈모약은 건강보험 지원이 안 되는 거라고 다음부터는 그냥 사란다. 집에 오자마자 탈모약을 머리에 발랐다. 내 무대뽀 정신은 여지없이 발휘돼 사용법은 읽지도 않고 잔뜩 발랐다. 머리통만 우주로 날아가는 줄 알았다. 머리가 이렇게 없으니 많이 바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꼼꼼히 잔뜩 발랐다. 머리가 시원했다. 어찌나 시원한지 머리통만 똑 떼어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혼자 이 약 정말 대박이라고 신나 했다. 사용법을 보기 전까지 신났었다. 다음 날 사용법을 보고는 이거 어쩌나 싶었다. 발라도 너무 많이 바른 거였다. 하루에 0.5에서 1ml를 아침, 저녁으로 바르라는데 발라도 너무 많이 바른 거다. 한 달 치는 머리에 바른 거 같다. 그러니 뼛속까지 시원했던 거다.

탈모에 대해 알려주는 의사의 영상을 보고 아침저녁으로 머리를 감고 약을 발랐다. 머리카락에 대한 지극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나 진짜 머리가 많아졌다. 내 인생에 이렇게 내 신체에 정성을 들여본 적이 없다. 미용실도 자주 안 가고 얼굴에 스킨로션도 잘 안 바르는데 머리카락을 살려보려는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머리통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 한 번 불면 아니 바람이 불지 않아도 머리카락 사이로 내 머리통은 훤히 비쳤었다. 머리통의 경계를 나도 느끼고 싶지 않지만 거울만 보면 나 여깄소 자랑을 했다. 머리숱 많은 아줌마들이 부러운 적이 처음이다.

늙어간다. 머리가 힘이 빠지고 가늘어진다. 지난겨울 공들인 머리카락이 이제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귀찮아서 요즘 바르는 약을 두 달 이상 안 발랐더니 노파의 머릿결이다. 숱도 없고 푸석푸석하다. 우리 집은 외가 여자들이 하나같이 대머리다. 다들 환갑이 지나면 가발을 썼다. 마요네즈를 머리에 잔뜩 발랐던 엄마도 머리숱은 간직하지 못했다. 흰머리는 안 나는데 다들 빛나는 머리통을 자랑했다. 지난번에 갑자기 혈압이 올라서 미국에서 못 나오신 이모도 첫 번째 쇼핑목록이 가발이었다. 항상 가발을 쓰시는 이모가 남대문에 가발 사러 꼭 가야 한다고 했었다. 나는 흰머리에 빛나는 머리통까지 양쪽을 다 닮았다. 가발은 아직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흰머리를 자랑했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이 빛나는 훈장을 가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애들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흰머리가 슬그머니 부끄러워졌다. 늙느라 애를 썼는데 늙어 보여서 민망해졌다. 주변에서 염색하라는 말들을 했다. 거의 이십 년 이상 다니는 미용실에 가서 염색얘기를 했더니 머리 자르러 미용실도 자주 안 오는데 염색은 하겠냐고 염색은 자주 와야 하는 거란다. 머리숱도 적은데 내가 하기로 했다. 지인이 알려준 염색약을 사서 해봤더니 훨씬 젊어 보이긴 한다. 흰머리를 자랑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염색 욕심이 생겨서 자주 하다가 머리만 탈이 났다. 작년 겨울에 홀랑 빠진 게 염색 때문이 거 같아서 미용사한테 물어보니 염색 때문에 머리카락이 가늘어질 수는 있어도 빠지지는 않는단다. 내가 작년 겨울 문턱에 힘이 들었었나 보다. 애를 많이 썼나 보다. 젊어 보이고 싶은 욕심에 머리만 들볶았다. 환갑이 코앞이라 늙는 건 당연한데, 아직 마음이 늙어가는 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가끔 어지러우면 겁이 나고 머리가 훌훌 빠져서 홀딱 늙어 보이는 것도 착잡하다. 참 겁 없이 살았는데 애를 쓰고 사느라 겁이 생겼다. 지금 사는 시간이 처음이라서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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