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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Jul 30. 2024

괜찮아

  괜찮지 않다. 이제는 남이 된 사람이지만 같이 살 때는 살얼음판을 걷는 거 같았다. 한겨울, 명절 전이면 늘 불안했다. 그동안 쌓인 불만을 어떤 식으로 폭발시킬지 말이다. 그 남자는 생계를 위해 돈 버는 일을 하기 싫어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을 무척이나 고생스러워했다. 십 년을 돈 버느라 고생했는데 일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당당하게 외쳤다. 그럼 생활비는 어떻게 할 건데라는 말에 그는 놀겠다고 했다.

  살기가 가득한 눈을 잊기는 쉽지 않다. 독을 내뿜는 온몸의 살기는 몇 달을 간다. 말다툼이 육박전이 되고 일방적인 난투극으로 끝나면 온몸에 독이 올라 씩씩대던 그 살기는 한 계절이 지나야 가라앉았던 거 같다. 섬뜩한 기운이 넘치는 사람과 한 집에 있으면 숨이 막힌다. 처음으로 나한테 손을 댈 때 그는 계단 아래로 떠밀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들바들 떨었지만 그 기운을 당할 수가 없어 한 겨울에 집밖으로 내쫓겼다. 섣달 그믐밤에 나는 맨발로 길거리에 서 있었다.

  몸은 다친 데는 없니? 괜찮니? 소리는 듣지 못했다. 사돈을 만나서 얘기를 해야 되지 않겠냐고 어떻게 아무 소리가 없냐고 엄마는 길길이 날뛰었다.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 마음보다 엄마랑 싸우는 게 더 힘들었다. 다시 그 남자와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가 복잡한데 엄마는 사돈을 만나서 자식이 이런 일을 했으니 어떻게 할 거냐고 담판을 져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 대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일 년을 살면서 그들의 이상한 셈법과 화법을 익히 보아온 나로서는 말해봐야 안 통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엄마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사람들이 상스러워. 아버지의 이 한 마디 말로 밤마다 나를 들볶던 일이 끝이 났다. 딸이 다친 것보다 당신이 자존심 상한 게 더 컸다.

  재취에 남의 자식까지 녹록지 않은 결혼을 엄마는 결사 반대했다. 그 남자는 구박을 감수해야 했다.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 나도 못 받아 본 백송이 장미를 엄마한테 드렸다. 모로 치켜뜬 눈을 백화점에서 산 비싼 코트를 선물하면서 풀어보려 노력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 집에 들어서는 순간 엄마는 그 남자에게 나는 빈 손으로 오는 거 안 좋아하네, 빈손으로 오지말게라는 말로 반겼다. 명절마다 제 부모한테는 한 푼을 안 드려도 장모에게만큼은 꽤 거금의 목돈을 안겨드렸지만 늘 차가운 눈초리로 사랑스러운 둘째 사위와 비교당했다. 큰 사위에 대한 못마땅함은 내 몫이었다. 왜 이러냐 저러냐 사위에 대한 불만을 나한테 퍼부었다. 큰 사위가 무엇을 해준들 반가워한 적이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는 내 생일을 보란 듯이 챙겼다. 내 생일마다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밥을 해야 했던 나는 정말 엄마가 반갑지 않았다. 엄마는 샴푸나 저렴한 일상용품 하나 선물로 들고 와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우아하게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내 생일이 정말 싫었다. 육아에 지치고 삼시세끼 밥 차리는 노동에서 풀려날 새도 없이 부모님을 위해서 내 생일상까지 거하게 차리는 수고를 해야 했다. 내 생일이라고 당신의 당당함을 건재함을 사위 앞에 자랑하러 왔다. 동생은 엄마가 나만 사랑한다고 부러워했다.

  세 번째 그 남자의 폭력에 결혼을 끝내고 싶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 다친 데는 없냐고 너는 괜찮냐는 말은 들을 수 없다. 힘들면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오라는 친정엄마의 말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혼하지 말라고 그게 복수하는 길이라는 말을 들었다. 엄마라는 사람을 포기했다. 동생이 친정에 가서 사는 것은 안 되겠다고 전했다. 당신 체면에 이혼 한 자식이 자식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나 보다. 어쩔 수 없이 한 집안에서 별거를 했다. 그 남자에게 입을 닫았고 마음을 끊어버렸다.

  혹시나 또 폭력을 쓸까 봐 딸이 잘 지내는지 걱정하던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나의 안녕은 안중에 없었다. 괞찮아? 괞찮니? 너만 잘 있으면 된다고 다른 친정 엄마들이 딸을 걱정하는 말을 전해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 그 남자와 사는 일은 끝이 났다. 그 남자와 함께 나의 엄마도 내 마음에서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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