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도 그렇게는 안 해. 동네 구멍가게 복덕방도 일처리를 이렇게 할 리가 없다고 다들 말한다. 다들 수수료 다 주지 말고 깎으라고 한다. 일을 그따위로 하는데 왜 다 주냐고 내 일처럼 흥분했다. 뭐가 이상해도 많이 이상한 부동산을 만났다. 아들 집을 구해주느라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온 집을 보고 달려갔다. 다달이 나가는 월세가 부담스러워 전세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분이 씩씩하고 상냥했다. 그 집은 지금 볼 수가 없다고 같은 형태의 다른 집을 보여주면서 집을 사라고 권한다. 같이 간 지인이 야무지게 그럼 이 동네가 재개발이 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말이 바뀌었다. 전세가 있으면 무조건 전세부터 하셔야죠. 뭐에 홀린 거 같다. 순식간에 말과 태도가 바뀌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천만 원이 더 쌌던 빌라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그게 아직도 네이버에 있냐고 한다. 가격이 좋아서 이미 한 달 전에 나오자마자 그날로 계약한 물건이란다. 그러면서 벌금 물겠다고 빨리 광고에서 내려야겠다고 했다. 성질 급한 내가 바로 계약을 하려니 지인이 아들한테 물어봐야지 않겠냐고 나를 말렸다. 내가 지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을 본 그이는 새로 도배하고 에어컨도 설치하는 건 어떠냐고 묻고는 바로 주인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차피 하나밖에 없는 전세였는데 고맙기까지 했다. 게다가 기말고사 기간이라 시험 치느라 바쁜 아들한테 전화해 봐야 좋은 소리 들을 리가 없었다. 지인의 독촉에 결국 문자를 넣었고 아들 전화를 받았다. 그전부터 이미 아들과 합의를 본 거라 무조건 한다고 했다.
양식이랄 것도 없이 집주인 통장 사본을 프린트한 용지에 계약금 일부와 잔금날짜를 손으로 써서 준다. 허접한 종이 한 장에 당황스러웠지만 계약날 보자고 도배와 에어컨을 새로 설치하도록 얘기해 준 게 고마워 기쁘게 부동산 사무실 문을 나섰다. 지인과 정말 계약 잘했다고 신나게 떠들면서 가는데 갑자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학생들이 자기 살림을 물려주는데 내일 오전에 가서 무엇을 두고 갈지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들한테 문자를 남기고 내일 오전 시간 괜찮냐고 했더니 부동산에서 자기한테는 오후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건 뭐지? 분명히 내가 방금 전에 통화했는데 잘못 들었나 한참을 헷갈렸다. 내가 수다 떠느라 흥분해서 잘못 들었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다음날 아들은 살고 있는 학생과 연락이 안 돼서 결국 못 갔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당장 급한 건 아니니 시험 끝나고 하면 어떻겠냐고 다시 일정을 잡아달라고 했다. 보름이 지나서야 아들은 부동산 사장과 함께 집에 두고 갈 물건을 알아보러 갔는데 아들한테서 당장 내일 계약하자고 했다고 전화가 왔다. 계약은 아무 때나 해도 되니까 내일 하잔다. 아니 계약서만 쓰는 게 아니고 계약금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 여자가 정신이 있나 없나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는 건지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계약금은 얼마고 언제 날짜에 하실지 문자를 보낸 것도 아니고 아들한테 당장 하자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계약날짜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집주인한테 묻지도 않고 제멋대로 정한 날짜였기에 그쪽이랑 협의해서 알려달라고 했다. 정신이 사나웠다.
아들의 첫 집이다. 아들 이름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거라 뒤에서 지켜봤다. 집주인은 아들이 입학하면서 급하게 산 집이었다. 군대에 다녀와서 복학할 거라서 2년 이후 재계약이 안 되는 집이었다. 처음부터 알았던 것이고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군대 가는 얘기가 길어졌다. 내 아들은 군대를 다녀왔고 군대를 갈 주인 아들은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그 집 아빠는 예전 같지 않아서 요즘 군대는 갈 만하다고 군대 무용담을 늘어놓았고 내 아들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군대얘기를 하는데 부동산 사장도 끼어들어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군대 갈 걱정을 했다. 정리된 서류는 하나도 없이 책상 위에 계약할 서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바닥에 깔린 법인 인감증명서가 보였다. 느닷없이 아들 신분증명서를 가져왔냐고 하더니 사본이 필요하다고 한다. 왜? 좀 많이 이상한 듯했지만 공인중개사 자격이 있는 만큼 알아서 할 거라 생각했다. 아들은 시키는 대로 사인을 하고 서류를 받았다. 뭔가 찜찜한 마음에 계약서를 확인해 봤다. 뭐가 빠져도 많이 빠져있다. 집주인이 법인인데 법인증명 서류가 단 한 장도 없다. 친하게 지내는 부동산 사장님께 물어보러 갔다. 기가 막혀한다. 이 서류 한 장 들고 은행 가면 대출 다 해준다는 집주인의 말과는 달리 이 걸로 대출은 택도 없다고 했다. 계약금 일부를 주던 날에도 등기부등본 못 받았냐고 그것도 안 떼어준다고 따로 프린트해 주셨는데 계약서를 보고는 혀를 찼다. 아니 어떻게 일을 이런 식으로 하냐고 공인중개사 망신은 다 시킨다고 한다. 심지어 물건에 대해 부동산에서 설명을 들은 것을 확인하는 칸에 집주인 인감도장을 찍지 않았고 우리 아들은 서명도 안 했다. 계약서에 빠진 부분을 문자로 알렸다. 잔금날 서류 다시 해달라고 했다.
한 달이 지나 잔금을 치를 때가 됐는데 부동산은 문자가 없다. 아들한테 혹시 너한테 전화 왔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아마 잊었을 거라고 한다. 언제 만날지 잔금은 얼마고 언제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알려주는 바가 없다. 친한 사장님은 제대로 안 해줄 거라고 미리 알려주셔야 할 거 같다고 했다. 그 말이 꼭 맞았다. 참다 참다 잔금 전날 전화를 했다. 서류에 빠진 부분을 제대로 해주셔야 잔금을 치르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문자로 프린트한 사진 몇 장을 보낸다. 게다가 도배를 하려는데 학생과 연락이 안 된다고 학생이 놀러 갔냐 어디 갔냐 물어보면서 아들한테 얘기해서 알아볼 수 있냐고 하고 에어컨은 주인이 하려는 제품은 일주일이나 걸리는데 어떻게 해야 되냐고 한다. 정말 갈수록 산이다. 공인중개 수수료가 너무나 아까웠다. 도대체 일을 이따위로 하는데 수수료를 줘야 하나 갈등도 생겼다. 깎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잔금을 치르러 가면서 사진으로 보내준 법인인감증명서 날짜가 3개월이 지나도 한참 지난 거라 다시 보내달라고 전화를 했다. 갑자기 그이는 나보고 대출을 받으실 거냐고 물어서 화가 치밀었다. 그것도 잔금 치르는 날에 말이다. 아니 대출을 받건 안 받건 저가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결국 일을 이렇게 엉터리로 하면 어떻게 하냐고 계약서는 제대로 해주셔야 하지 않겠냐고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성질부리지 말고 차분하게 끝내자고 2층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을 올라갔다. 이게 또 뭔 일인지 여태 사무실에서 본 적도 없는 그녀의 남편이 책상에 대고 팔 굽혀 펴기를 하면서 나를 뜨악하게 쳐다본다. 가지가지한다. 정말.
진짜 끝이라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아까워 죽겠는 수수료를 내고 나왔다. 그이가 제대로 해줄 것 같지 않아서 토지대장이고 건물대장이고 다 뽑았고 법인 관련 열람 서류까지 몽땅 찾아 뽑아 들고 갔다. 그 서류를 슬쩍 보던 그이는 자기가 해 줄 건데 이런 건 왜 뽑으셨냐고 웃는다.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내가 다 찾았다고 했다. 할 말은 많지만 말을 꾹꾹 삼켰다. 정신 사납고 어지러운 나머지 여기는 블랙홀 같다고 했다. 그이는 자기가 정신이 좀 없다고 한다. 좀 없는 정도가 아니다. 이 정도면 이 일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학생들 상대로 이렇게 엉터리로 여태껏 일처리를 했다는 게 놀라웠다. 그 집에 살던 학생은 이사 전날 아들한테 문자를 했다. 집주인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일 하는 꼴로 봐서 그 학생한테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을 것 같아서 잔금 치렀다고 형한테 알려주라고 했었다.
이사를 위해 집청소를 하고 돌아온 날 법인인감증명서를 새로 받았다고 문자를 보내더니 느닷없이 계약날에도 등기부등본을 자기가 뽑았다고 했다. 다른 부동산은 세 번씩 뽑아준다고 잔금날 받는 거 당연한 거 아니냐고 답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6시에 문자가 왔다. 내가 계약날 등기부등본을 안 받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느 세상에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들은 말도 기억 못 하고 안 한 말을 했다고 하는 그이에게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바로 답했다. 정신없는 그이한테 잔금날 등기부등본을 뽑아달라고 한 거라고 알렸다. 시골 벽촌에서도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는 안 할 것이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