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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Nov 04. 2024

정리

  새 삶을 시작하려고 다 버렸다. 수십 년을 모아 온 책을 다 버리고 결혼 후 지난한 세월을 버텨내느라 한 번도 들춰본 적이 없는 결혼식 앨범도 버렸다. 작은 집에 살면서 물건에 치어 살기 싫어서 옷과 장난감, 유아용품은 철 지나면 다 버리는데 곰팡내 풍기는 구닥다리 물건들은 한 번도 햇빛을 보여주지 않았다. 서랍장에 고이 모셔둔 팩스와 아이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까지 사용한 크레파스며 샤프, 연필, 쓰지도 않은 수첩을 모두 꺼내 버렸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는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쓰는 걸로 이어졌고 결국 살던 집을 팔았다. 화장실이 밖에 있던 월셋집에서 다시 지하로 집을 옮겼다. 지하로 옮기면서 아버지가 내 방을 정리했다. 이사 당일 오전에 이사 짐을 나르고 학교에 갔다. 내 편지꽂이에 고이 간직한 친구의 편지가 하나도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제일 친한 친구한테 일 년 동안 받았던 편지를 몽땅 버렸던 것이다. 다 부질없다고 했다. 내 추억을 아버지가 깡그리 없애 버렸다. 악을 쓰고 대들고 왜 함부로 없앴냐고 난리를 쳤다.

  아버지가 옳다. 다 부질없었다. 친구의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친구의 정성이 남아있다. 그거면 된다. 지금까지 친구의 편지를 갖고 있다고 내가 다시 읽을 것도 아니고 빛바랜 종이만 쥐고 있을 거다. 초등학교부터 아끼던 책들을 다 버리면서 아버지가 떠올랐다. 당신이 왜 다 버렸는지 내가 당신 나이가 되고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쓰지도 않을 것을 쥐고 살고 언젠가 쓸 거라는 생각으로 놓지 못한다. 시간을 거슬러 생각하면 내가 이 책을 펼치기라도 했던가 싶은 그런 책들이 한 두 권이 아니다. 심지어 나중에 내가 어른이 돼 읽겠다고 꽁꽁 숨겨둔 초등학교부터 썼던 일기장을 눈앞에 꽂아놔도 들춰보지도 않는다. 어느새 나의 과거는 장식품이 되고 만다. 아버지가 당신의 실패한 기억을 털어내기 위해 다 버렸을까? 지하방으로 이사 가면서 당신은 웬만한 짐을 다 버렸다. 당신의 짐은 옷장 한 칸으로 줄이고 모두 털어냈다.

  남편과의 삶을 정리했다. 그 남자가 떠난 후 그의 자리에는 쓰레기가 남았다. 다 못 치우고 가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물건들에 진작에 진저리를 쳤었다. 고물상집 아들도 아닌데 왜 문짝틀이며 우산틀, 그의 눈에는 보물로 보이겠지만 내 눈엔 영락없는 고철덩어리들인 쇠덩어리들만이 잔뜩 남았다. 가족보다 아끼던 어항이 수압을 못 이겨 다 터지고 난 후 다시 어항을 만들겠다고 차고 차곡 유리를 모아 두었다. 식탁 유리, 어항 유리를 며칠에 걸쳐 다 깨서 불연성 폐기물 봉투에 담았다. 나무가 골치였다. 톱으로 자를 수도 없고 망치로 빠개자니 너무 소란스러웠다. 불멍 좋아하는 후배의 캠핑장소로 달려갔다. 집안에 잔뜩 남아있던 나무들을 싸들고 갔다. 밤을 새워 나무를 태웠다. 뿌옇게 하늘이 밝아올 때까지 태우고 또 태웠다. 한 치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다 털어버렸다. 하지만 그가 남긴 공구함에는 수 십 개의 드라이버며 사용할 줄도 모르는 공구들이 여전히 한가득 남았었다. 둔다고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끔 우리 집을 수리해 주셨던 기전실 기사님께 드리기로 했다. 그분이 사용하실 것을 고르고 나머지는 분리수거로 다 버렸다.

  버리니 정리가 됐다. 더 이상 치울 것조차 없었다. 안 입던 옷과 안 쓰던 방석, 쓰지 않던 이불이며 빛바랜 천까지 모두 버렸다. 시집올 때 가져온 반짇고리도 버리고 안 쓰는 가방도 모두 버렸다. 안 쓰는 그릇도 버리고 딱 쓸 그릇만 남겼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들은 몽땅 버렸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어린 시절 물건을 정리했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 일기장을 다 버리려고 밖에 내놨지만 난 아들 몰래 다 챙겼다. 아들의 글이 소중해 버릴 수가 없었다. 엄마가 자신의 글을 모아서 간직하는 것을 알면 기겁을 하겠지만 둘러대지 않고 솔직한 글이 너무 사랑스러워 버릴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은 아들 일기에 여러 번 심호흡을 했을 거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남편이 급작스럽게 사업을 접으면서 차상위 계층이 됐었다. 4학년 때까지 우리 가정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들이 사춘기가 오기 전에 미리 사실을 알려주려고 우리 가정이 재혼가정이고 누나와는 배다른 남매라고 얘기했었다. 충격이 일상이었던 시절이라 나는 아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들이 당황한 것만 알았다. 아들의 충격은 일기장에 적혀있었다. 아버지가 재혼을 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고 누나랑 엄마가 다르다는 것에 많이 당황했었다. 구구절절이 솔직하게 적은 일기에 담임이 얼마나 놀랐을지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었다. 우리 집 경제를 걱정하던 담임의 인사를 들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결혼도 안 한 담임이 아들의 일기에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 사랑스러운 아들의 솔직한 글은 알록달록하게 펼쳐져 있었다.

  버릴 수 없는 것이 또 있었다. 아들의 유치원부터 저학년까지 그렸던 그림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들의 조막만 한 손으로 오리고 그린 그림을 남겨 둔 것은 표현하지 못한 내 사랑이었다. 사랑스럽다고 자랑스럽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들이 그리고 놀았던 흔적을 모두 모았었다. 검은곰팡이가 가득 핀 창고 안에 노란색 플라스틱 통 안에 아들의 그림은 살아있었다. 아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그리고 오리던 모습까지 그대로 살아있었다. 언젠가 아들 그림으로 액자를 만들어야겠다. 내가 살았던 이유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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