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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028 정호승 문학관

by 바이크 타는 집사

<정호승 문학관>

- https://jeonghoseung.sscf.or.kr/pages/index.htm

관람시간: 화~금 - 10:00~21:00 / 토~일 - 10:00~18: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월요일, 공휴일 휴무
문의전화: 053) 743-7005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스물여덟 번째, 정호승 문학관이다.


붉은색의 건물이 강렬한 인상으로 들어왔다. 정호승 문학관은 좀 다른 느낌의 문학관이다. 문학관이라기보다 문화공간, 휴식공간 같은 느낌이 든다. 1층 카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편안한 느낌의 문턱이 낮은 문학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호승 문학관은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있다. 정호승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보통 생가나 태어난 곳에 문학관이 설립되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는 좀 다르다. 정호승 시인의 경우 태어나기는 하동에서 태어났지만, 대구에서 성장을 했고 대구를 고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정호승 시인 스스로도 '나는 범어천에서 자연과 인간과 문학을 배웠다. 범어천은 내 문학의 고향, 내 시의 모태'라고 말했다고 하니 대구에 문학관이 자리 잡은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다.


문학관 1층에는 카페가 2층에는 전시실이 있다. 지하 1층은 각종 행사나 강의를 위한 다목적 홀이 있다.


보통 문학관에 있는 카페는 문학관 방문객을 위한 쉼터 느낌이다. 부속건물 같은. 그런데 여기 카페는 방문객을 위한 쉼터가 아니라, 그냥 독립된 카페다. 커피도 아주 신선했고, 메뉴도 다양했다. 그러면서도 2층의 전시관과 통일된 느낌이었다. 카페 한쪽에는 정호승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도서는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나 전시 방식 등은 완전히 다르지만 부산의 '추리문학관(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11)'과 비슷한 느낌이다.



'추리문학관'처럼 카페 이용이 입장료를 대신하는 시스템은 아니다. 카페를 이용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된다. 카페를 지나쳐 바로 2층으로 가서 전시실만 관람하고 나갈 수도 있다. 반대로 카페만 이용해도 관계없다. 내가 카페에서 잠시 쉬는 동안 2층 전시실은 가지 않고 카페만 이용하고 가는 분들도 계셨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더 문학관이 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1950년 하동에서 태어나 1973년 '첨성대'가 당선되었고, 1979년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출간했다. 그는 '슬픔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한다.


내가 처음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를 읽었을 때 고요한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해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중에서

겨울밤 귤 몇 개 놓고 팔고 있는 할머니, 추운 겨울밤 밤바람은 매섭고 추위에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서 얼마 되지 않은 귤 값마저 깎아서 싸게 샀다고 기뻐하는 '너'. 그런 너에게 할머니가 가진 그 '슬픔'을 주겠다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연민과 공감은 사랑보다 소중하고, 그 슬픔이야 말로 평등한 것이다. 그 추운 밤 '너'가 가진 그 '기쁨'은 너무도 불평등하다.


그가 표현한 문장도 문장이지만, 우리의 삶을 관조하는 깊은 시선과 통찰이 느껴졌다. 고요한 시선, 그 안에는 치열한 채찍질이 담겨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20대 초반 언젠가 이 시를 읽고 정호승 시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2층 전시실의 '시인의 방'은 시인이 평소 사용하던 물건들과 사진, 정호승이 시를 발표한 문예지, 시집, 평론집, 인터뷰한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많은 것이 전시되어 있지만 크지 않다. 작은 것들이 오밀조밀 모여서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읽은 글인데 검색이 되지 않아 희미한 기억에 의존해 보는데 아래 글은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내가 아주 오래전 어딘가에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호승 시인은 학창 시절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경북의 학생 백일장은 정호승 시인이 상을 거의 휩쓸다 시피했고 심사위원을 맡았던 작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가능성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구에 '엄청난 놈'이 하나 나타났다며, 당시 작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고 한다. 학생 백일장 심시위원들이 이번에도 정호승이 나왔는지 확인할 정도였다고 한다.
<정확한 사실 관계는 확인 필요>


굳이 이 오래된 정확하지 않은 기억을 꺼낸 이유는, 정호승 시인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시적 재능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그건 분명했던 것 같다. 중학교 교내 백일장에서부터 시작해, 청소년 잡지 <학원>의 제8회 학원문학상, 제10회, 제12회 학원문학상 우수작, 특선작 등으로 당선되었고, 국문학과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가 될 떡잎이었던 것은 확실했다.


무엇보다 정호승의 작품은 교과서에도 많이 실렸고, 수능이나 모의고사 같은 데서 단골로 출제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나무위키에서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평가원이 사랑하는 수능문학의 단골시인 중 한 명이다."

복도를 따라 그림들이 걸려 있는데, 시인의 작품들과 관련된 그림들이다. 정호승 시인은 문학과 다른 장르와 활발하게 만나며 교류한 것 같다. 시노래모임인 '나팔꽃'은 물론 박항률 화백과 오랜 우정을 나누었다. 그래서 박항률 화백이 정호승의 시집의 표지화, 산문집이나 동화집의 삽화 등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막사발 장인 김용문이라는 도예가와의 협업도 눈에 띄는데 그와 함께 시도자전 '시와 도자의 만남'을 여러 차례 개최하였다고 한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만나고, 과거와 현대가 만나고, 문학과 미술이 만나는 그래서 더 다양해지고 새로워지는 건 항상 좋다.


주전시실에는 시인의 주요 작품들, 육필원고 등을 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달다'도 친필원고가 전시되어 있었다.


운주사 와불을 뵙고 돌아오면서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으니 먼 바람에 흔들려 풍경소리 들리면 바람을 타고 내 마음이 찾아 간 줄 알아라는 짧은 구절 속에 간절한 그리움과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는 시다.


정호승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진 시는 아무래도 '수선화에게' 일 것이다. 그리고 이 시는 시노 모임인 '나팔꽃' 첫 앨범의 5번 트랙,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정호승시, 이지상작곡, 이지상노래)'라는 제목으로도 불려졌다.


'나팔꽃'은 '작게 낮게 느리게'를 추구하며 시인 정호승,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 그리고 작곡가(가수) 백창우, 김원중, 김현성, 이지상, 유형선이 참여하여 만든 시 노래 모임이다. 변방으로 밀려나는 시의 존재를 새롭게 찾아가고, 노래다움을 잃어가는 대중 음악에 시적 서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된 모임이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 '수선화에게'

유튜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음악 영상
https://youtu.be/i9-Bnn-VfXs?si=oTUzdPHKAylJvFdp


너무 잘 생긴 청년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너무나도 완벽한 자기 모습에 반해 사랑에 빠지만 그 사랑은 이루지 못할 사랑이었다. 그렇게 물 속에 비친 자신을 그리워하다 결국 물에 빠져 죽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수선화가 피었다. 그래서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 자존심, 고결함이라고 한다. 신의 저주로 인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된 나르시스. 나르시스 신화를 모티프로 쓴 작품이라고 한다. 외로움은 본질적인 것이다. 전화를 해 친구를 만나고 SNS로 소통을 한다고 해서 외로움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은 태초의 인간은 자웅동체(정확히는 남+여, 남+남, 여+여)의 완전한 존재였다고 말한다. 팔, 다리가 각각 네 개씩 머리가 두 개 있는 완벽한 존재, 그런데 완벽한 존재인 인간이 오만해지자 신은 인간을 반으로 갈랐고 결국 남과 여로(혹은 남과 남, 여와 여로) 나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반쪽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거라고 한다. 조금 어이없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을 설명해 주는 하나의 썰(?)이다.


어쨌거나 반쪽을 찾아서, 반쪽인 타인에게 '자기'라고 불러가며 하나가 되려 해도 결국 나눠진 육체는 온전히 합일할 수 없으니 외로울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래서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독자적인 한 존재로서 살아있다는, 내 실존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아주 명확한 증거가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외로움과 외로움의 만남'이고 그 만남은 '불평등한 기쁨'보다는 '평등한 슬픔'이 공유되는 만남일 때 우리는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고 그 만남은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하고 오래전 이 시를 읽고 생각을 했었다.



마지막 전시는 '예술이 된 시''음악이 된 시'다. 문학이 어떻게 다른 장르로 태어나 어울리는지 볼 수 있어 좋다. 작품 하나하나 천천히 감상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유품, 소장품보다는 그의 시와 관련된 예술 작품들이 더 많은 문학관, 많은 자료들이 있지만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문학관,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는 문학관이었다. 깨끗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20여 년 전에 강의에서 만난 시인과 닮은 듯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를 꼽으라면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오직 '김광석'이다.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 그를 '가객'이라 부르기도 했었고, 정태춘을 잇는 '음유시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나온 첫 앨범이 <가객>이라는 앨범인데, 거기에 미발표곡이었던 '부치지 않는 편지'가 실려있다.


원래 김광석은 정규 5집 앨범 '노래로 만나는 시'를 계획했고, 그 앨범에 타이틀 곡으로 '부치지 않는 편지'를 쓸 예정이었다고 한다. 제목대로 부치지 않는 편지처럼 앨범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김광석은 시와 노래가 만나는 작업을 했었고, 이걸 계기로 시노래 모임인 '나팔꽃'에 대한 아이디어가 김광석과 함께 오갔다고 한다. 결국 김광석 사후에 '나팔꽃'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김광석이 살아서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팔꽃' 첫 앨범을 들으며 너무 많이, 나는, 김광석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했다.


어쨌거나 이 '부치지 않는 편지'도 정호승 시인의 시다. 이 시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생각하며 쓴 시라고 한다. 내가 너무너무 좋아했던 가수 김광석, 그리고 20대 가장 좋아했던 시인 정호승, 이 둘의 만남이 바로 '부치지 않는 편지'이다. 이 노래로 이번 탐방기를 마무리할까 한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정호승, '부치지 않는 편지'


<부치지 않는 편지> - 정호승 시, 백창우 곡, 김광석 노래

https://youtu.be/B2jmktRpWXg?si=HMXUCM_z3lhBV0Y4




한 줄 느낌

- 카페 때문인지 문학관에서 쉼터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한 줄 평

- 시와 관련된 여러 장르의 예술 작품들이 많은 풍요로운 문화공간 같은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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