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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객주>를 주제로한 복합 문화 공간

027 객주문학관

by 바이크 타는 집사

<객주문학관>

- http://gaekju.com

관람시간 : 09:00~18:00(11월~2월 : 09:00~17: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문의전화: 054) 873-8011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스물일곱 번째 객주 문학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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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군에 위치한 객주문학관은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를 주제로 한 문학관이다. 태백산맥 문학관과 마찬가지로 대하소설 한편을 주제로 한 문학관이다.


소설 객주를 주제로한 복합 문화 공간


객주 문학관 홈페이지에는 문학관의 정체성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객주'는 단순한 문학에서 나아가 조선 후기 보부상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당시의 의식주와 언어, 상업,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상세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소설이 당대의 사회, 문화, 언어 등을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특히 객주는 조선 후기의 풍습, 당시 보부상들의 삶과 거래 방식 그리고 조선후기의 언어(말투와 방언 등)가 그대로 살아 있어 그 가치를 더욱 인정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설 관련 전시관 뿐 아니라, 소설도서관, 스페이스 객주, 연수관, 민속전시실 등이 있다. 특히 '스페이스 객주' 공간은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1층에는 소설도서관과 민속전시실, 2층에는 제2전시실과 스페이스 객주, 3층에는 제1전시실과 여송헌(집필실)이 있다. 그래서 먼저 3층으로 올라가서 내려오면서 관람하도록 구성되어 있고, 입구에도 안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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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에 올가가면 제1 전시실 들어가기 전 입구 복도 쪽으로 미술 작품들도 전시가 되어 있다. 모두 객주를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예술적 표현이면 뭐든지 좋아하는 편이라 흡족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살펴 보면서 전시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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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전시실 입구에는 '길 위의 작가' 김주영 작가가 걷는 모습의 사진이 먼저 반긴다. 이어서 그가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짧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 소설가가 되기까지

소설가 김주영은 사방 100리 안에는 공장도 없고 기찻길도 없는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탯줄을 끊고 난 순간부터" 시달려야 했던 지독한 가는은 어린 그에게 멍에와도 같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선택한 시골 직장 생활 역시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삼십대에 접어든 어느 날, 김주영은 홀연히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해 1971년 <휴면기>로 등당하였다.
5년간의 자료 수집과 5년간의 장터 순례를 거쳐 4년 9개월간 서울 신문에 연재된 <객주>는 김주영에게 "길 위의 작가"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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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에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김주영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지만 당시 교수였던 박목월 시인으로부터 '자네는 운문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와 입대를 했고, 제대 후에는 회사에 취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서른한 살 되던 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1971년 등단하여 '우리나라 최고의 이야기꾼'으로서 활약을 했다. 이후 1979년 6월부터 4년 9개월간 서울신문에 역사소설 <객주>를 연재하였고, 이 시기 5년 동안 카메라와 노트를 들고 전국의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여인숙을 전전하며 현장에서 글을 써 신문사에 보내며 연재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는 장돌뱅이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장돌뱅이가 되었고, 발품을 팔아가며 소설을 썼다.


애초에 객주는 1984년 9권으로 출간되었고, 스스로 완간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완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었다.

2009년, 그는 지금의 울진과 봉화 사이에서 보부상길(십이령 길, 금강소나무길)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 춘양장으로 넘어가는 그 길은 조선 후기 울진의 염전과 내륙의 장사를 연결하는 유일한 길로서 보부상들의 삶의 동맥이었다. 울진.두천에 서 있는 부부상 반수와 접장의 불망비(철비)가 발견되었으며 주막과 장시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봉화 오전리에서는 지금도 보부상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를 기초로 <객주> 10권 완간을 향한 작업이 제개 되었다.
- 객주문학관 홈페이지


그러다 20여 년이 지난 어느날 십이령길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마지막 10권을 집필하여 지금의 '객주' 1~10권까지 완결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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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일생과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여러 유품들, 발간된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생존해 계시는 작가다 보니,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고 잘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다양하고 풍성한 자료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많은 자료들 때문인지 동선이 복잡하다. 전시된 책들은 가벽처럼 세워진 책장이 사선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뒤로 또 다른 전시들이 있어 들어갔다 돌아 나왔다 하게 된다. 처음에는 약간 당황스럽긴 했그런데 또 이리 저리 장을 구경하며 돌아 보는 듯한 재미도 있는 것 같았다. 어? 하고 돌아 들어간 구석에서 그의 표창장들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장터를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는데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나쁘지 않은 컨셉트(물론 장터의 느낌을 의도했다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그의 소설에 있는 단어들과 그의 집필실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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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 뿐 아니라 그의 여러 소설의 주요 특징이 '거침없는 입담과 비속어'라고 한다. 객주를 읽으면서(현재 4권 읽고 있다) 나오는 그 '입담과 비속어'들은 해학적 표현을 넘어 당시의 구어들을 어떻게 이렇게 찾아내 복원했을까 싶을 정도의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각주를 확인해야 뜻을 알 수 있는 단어들이 수두룩했고, 문맥적으로 대충 파악하고 읽고 넘어가려 해도, 막히는 단어들이 있을 정도였다.


단어 하나 찾는데 밤을 꼬박 새우며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죠. 그러다 베란다에 나가면 새벽 4~5시경. 멀리 한강 변 가로등 불빛이 안개에 잠겨 있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필 돌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 김주영, 2009년 <신동아> 인터뷰 중


판소리나 조선후기에 나온 옛 소설들을 참고하고, 오지에 사는 사람들의 말도 수집했다고 한다. 소설을 쓰다가 고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두툼한 국어사전을 넘기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특히 그의 소설 <객주>는 "현장언어의 기록이자 복원"이며 "역사책에는 실리지 않은 하층민의 구어의 보존"으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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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전국을 유랑하며 장터를 다녔고, 현장에서 글을 썼는데 그의 작업실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장터에서 시장 상인들, 그리고 보부상의 후손들을 만나 막거리를 나누고 인근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원고를 마무리해 신문사에 보내고 또 길을 나서는 생활을 5년 내내 이어갔다고 한다. 모든 글을 작가의 자서전이고 반성문이라 생각하며,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말한다."는 그의 말은 그대로 실천되었고 작품으로 탄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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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벽이 있었던 작가 수집품들인 재래시장의 저울추와 카메라, 만연필 등이 전시되어 있고, 일상의 것들과 작품 구상 등 다양한 노트도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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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쓴 원고 노트들을 보면 놀랍다. 깨알 같은 글씨로 써 두었는데 노안이 온 나는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돋보기가 올려져 있는데 그제서야 글자들을 읽을 수 있었다. 다른 노트와 달리 '객주' 원고만 이렇게 깨알 같이 적었 둔 이유는, 아마도(내 짐작이지만) 한정된 노트에 최대한 많은 내용을 적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장터를 다니며 글을 쓰다 보니 많은 양의 노트를 들고 다니기 어려웠테니 말이다. 대하소설이니 그 내용도 방대했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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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의 제2 전시실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당시 신문에 연재된 <객주>가 연도별로 소개되어 있다. 2 전시실은 소설 '객주'를 상세히 볼 수 있도록 작품 관련 전시와 함께 보부상들의 활동, 조선 후기 당시의 시장의 모습, 관련 물건들과 각종 조형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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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전시가 하나 눈에 띄었다. 사발통문이라는게 있는데, 보통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널리 알리는 문서 정도로 알고 있었다. 사발통문의 사발이 위의 사진처럼(왼쪽 아래)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돌려 서명 같은 것을 했다고 해서 '사발통문'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의 계를 조직할 때 많이 쓰였다고 하는데, 이후 동학농민운동 등 정치적 행동을 하는데 자주 쓰였다고 한다. 원으로 둘러 서명을 하기 때문에 주동자를 알기 어렵다는 점 때문었다고 한다. 원탁의 기사 같은 그런 의미인 듯하다.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시장을 중심으로 한 여러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판, 어음, 지게, 저울, 목침 등 보부상의 도구들과 시장에서 사용된 각종 용품들과 일반 생활용품들까지 특정 시대의 민속 박물관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종류도 다양해 관람하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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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내용을 살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긴 대하소설을 요약적으로 잘 정리해 두었다. 화면을 통해 이야기의 줄거리를 하나하나 찾아 읽고 확인할 수 있다. '객주'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아무 내용이나 하나 터치해서 읽어 보면 내용을 떠올려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문학관을 방문할 당시에는 객주를 읽지 않았었고, 다녀 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4권 째 읽다가 잠시 쉬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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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마지막은 '스페이스 객주' 사전전그림이다.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작가가 북한에 방문했을 때 찍은 여러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객주를 주제로한 미술작품들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규모도 커 관람하는 시간도 조금 더 여유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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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에 가서 김주영이라는 작가와 객주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고, 아내가 읽었던 객주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다양한 비유,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 같기만 한 우리 낱말들, 거침없는 재담 속에서 드러나는 고난의 삶들 그리고 음담비속어들 뿐만 아니라 언뜻 보아도 상당한 고증을 거쳤을 당시의 상업사풍속 그리고 이를 묘사하는 문장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내가 감히 작품을 평가해도 될지 조심스럽긴 하지만(그것도 4권까지만 읽은 상태에서) 큰 줄기로 흐르는 이야기의 중심선이 희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고 작은 덩어리의 에피소드들이 종종 느슨하게 나열되는 듯해서 산만한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기념비적인 역사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고유어의 발굴 뿐 아니라 이야기의 빠른 전개, 걸죽하고 거침없는 재담은 최고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강한 흡인력으로 소설에 집중하기에 충분했다. 문학관 홈페이지에서 소개된 대로 작가 김주영은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임은 두말할 것 없다.


탐방기를 쓰기 위해 검색을 하다 발견한 인터뷰 내용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Q. 소설의 옛말을 현대어로 바꾸자는 제안을 거절했는데?

그 시절에 사용했을 법한 말들, 요새 보면 상당히 생소하지요. 생소하고 어렵고 그런데, 그걸 찾아내고 발굴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공들여서 조사를 한 거죠.

예를 들면 조신 시대 흥성대원군 시절에 아주 지독한 욕으로 '천촥할 놈'이란 말이 있습니다. 천촥. 천촥.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어원이 '천주학을 할 놈' 이런 거에요. 이런 걸 하나 발굴해냈는데 내 딴에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이고 했는데, 그걸 없애버린다면 너무 책이 안 팔린다 할지라도 그런 공을 들인 것이 아까워서 쉬운 말로 고치는 걸 삼갔죠.

하나하나 찾아내고 발굴하고 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그런 제안에 왔을 때 거절했습니다. 책 안 팔려도 좋다. 말하자만 내가 공들 들였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포기하느냐 그렇게 얘기했죠.



한 줄 느낌

- 복합문화공간의 정체성을 비교적 잘 살려 관람하는 재미가 다채롭다.


한 줄 평

- 소설과 소설에 담긴 생활 상까지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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