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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026 지훈 문학관

by 바이크 타는 집사

<지훈 문학관>

- https://www.yyg.go.kr/jihun/

관람시간: 09:00~18:00(11월~2월 09:00~17: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문의전화: 054) 682-7763


#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지훈 문학관 라이딩 영상

https://youtu.be/2e4lyTS0LWU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스물여섯 번째 지훈문학관이다.


우리가 잘 아는 조지훈시인의 문학관이다.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에 위치해 있다. 주실마을은 조선 중기 환란을 피해 한양 조씨들이 내려와 정착한 집성촌으로 일제 강정기 갖은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지조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그런 마을과 집안에서 자랐으니 조지훈의 성품이 어떨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사실 주실마을에 가서 문학관만 보고 오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주실 마을 곳곳에 조지훈과 관련된 관람장소들이 있고, 주실마을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어, 다양한 즐거움이 있을 것 같다.

출처 - 지훈문학관 홈페이지(https://www.yyg.go.kr/jihun/jusil/guide-map)


지훈시 광장, 시인의 숲 지훈생가와 본가(방우산장), 지훈시 공원, 그 외 종택, 서당 등 유서 깊은 집성촌의 모습과 조지훈의 흔적을 따라 산책하기 좋은 코스가 즐비하다.


나는 여건 상 문학관만 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찾아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만곡정사, 종택, 지훈 본가와 생가, 문학관, 그리고 시인의 숲까지 천천히 산책하며 둘러보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대략 거리나 규모로 봤을 때 반나절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주실마을 코스모스길'이 좋다고 한다. 가을에 방문해서 마을 앞을 지나는 장군천 따라 조성된 코스모스길을 따라 조지훈을 만나고 오는 것도 좋아 보인다.


이번 전국 문학관 투어가 끝나고 나면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문학관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지훈 문학관이다. 이유는 주실마을을 한 번 걸어 보고 싶어서이다. 어쨌든, '지훈 문학관'은 주실마을과 세트로 묶여 있는 곳이니 방문할 때 주실마을을 염두에 두고 시간 계획을 짜면 문학관 관람이 더욱 풍성하게 느껴질 것 같다.




지훈 문학관은 'ㅁ자' 구조로 되어 있다. 'ㅁ자' 입구에 들어서면 중간에 큰 중정이 있고, 왼쪽부터 사무실, 세미나실 등이 이어지고 문학관은 바로 맞은편 입구에서 시작된다. 관람 동선이 상당히 깔끔하고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어 좋다.



다른 문학관들과 마찬가지로 흉상부터 전시가 시작된다. 흉상 양 옆으로 '승무' 시와 춤 영상이 반긴다. 그의 대표적인 시 중 하나인 '승무'는 전통적인 소재, 전통적인 운율과 언어를 통해 우리말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잘 드러난다. 그런 그의 시와 함께 승무 공연을 보고 있으면 그의 문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관람 동선에 따라 생애연표, 어린 시절의 조지훈에서 시작하여 시인 조지훈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이어진다.

시기별로 정리가 되어 있고, 해당 시기와 관련된 친필 원고와 작품들이 아래에 전시되어 있다. 또 맞은편 가벽에는 청록파와 조지훈에 대한 내용이 있어 그의 문학세계를 한 공간 안에 심도 깊게 보여주고 있다.




조지훈은 '동리목월 문학관(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24)' 탐방기에서도 잠시 소개했듯이,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3인으로 불린다. 1920년 태어나 한문과 국문을 배우며, 문학과 예술을 갈고 닦아 온누리를 빛내겠다는 뜻을 품고 어릴 때부터 글짓기에 몰두했다고 한다. 1939년, 문장지에 추천을 받아 등단하여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스스로 '한국문화사'를 전공이라 여기며 한국문화사를 최초로 서술하였고, 지조론을 펼치며 지조를 목숨처럼 여기는 지사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매천 황현과 만해 한용운에 견줄 정도이다.


지조란 것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요, 냉철한 확집이기도 하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
- '지조론'


그래서 그는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절개를 지켰으며, 해방 이후 민족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하였다. 또한 해방 이후 친일 세력이 친미로 탈바꿈하여 보신하는 것을 비판하였고,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독재를 비판하며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반면 문학에 있어서는 박목월과 마찬가지로 문학이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도구화를 거부하며, 김동리 박목월 등과 더불어 '한국 문학가 협회' 창립위원으로 참여하여 문학의 순수성과 민족문학을 지키기 위해 힘썼다고 한다.


전통적 운율과 선(禪)의 미학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결합한 것이 조지훈 시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우리말의 보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기에 '승무', '고풍의상', '봉황수', '완화삼', '낙화', '풀잎단장' 등 많은 작품이 사랑받았고, 특히 '승무'는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문장이 우아한 시적 아름다움으로 보여주는데, 그의 필체도 그러했다. 시인들의 육필 원고들을 보면 많은 글을 습작하다 보니 날림 글씨도 많고 악필도 꽤 보인다. 하지만 조지훈의 글씨는 깨끗하고 명확했다. 그의 성품이 필체에도 그대로 드러나 보였고, 단아한 필체와 우아한 문장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낙화'와 '완화삼'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우름뒤에
머언 산이 닥아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 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조지훈, [낙화]


김소월, 박목월이 그러하듯, 이 작품에도 전통적이고 민요적인 율격인 7.5조를 띤다. 민요 등에서 나타난 친숙한 율격이다. 꽃이 지는 상황을 '귀촉도 울음'이라든지,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다든지 하는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낙화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비극적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시를 읽으면, 울고 싶은 마음을 낙화에 이입한 건지, 낙화를 보며 그에 공감하여 울고 싶어진 건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 심연에 출렁이는 슬픔을 낙화로 표현하였든, 낙화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보며 느낀 슬픔을 표현하였든, 이 작품은 감각적인 표현아름다운 율격 그리고 소박한 시어들로 깊고 아름다운 슬픔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낙화'에서 알 수 있듯 조지훈은 순수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다. 대쪽 같은 선비 정신으로 시대를 꾸짖었던 그가 어쩌면 격동의 세월을 보내며 참여시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쪽 같은 그에게 시는 '시' 다워야 했고, 그랬기에 민족의 율격과 정서를 담은 순수 서정시를 고집하고 지켜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조지훈의 작품 세계에 대한 소개가 끝나면 부인 김난희 여사의 시화, 서예 작품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부인 김난희는 뛰어난 서화가였다고 한다. 남편인 조지훈의 시를 시화나 서예로 남겼고, 그 작품들이 문학관 한편에 전시되어 있다.


지조론을 펼친 지사로서의 조지훈과 그의 업적들과 유품, 그리고 주실 마을에 대한 소개로 문학관 전시가 끝이 난다.


"일제강점기와 독재시대를 살아온 조지훈은 시인으로서, 국학자로서 또한 당대의 논객으로서 지조를 지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였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조선어학회에서 큰사전 발간에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해방 히우 한글학회 국어교본 편찬, 진단학회 국사교본 편찬에 참여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국어교과서와 국사교과서를 편찬하였고, '한국문화사서설', '한국민족운동사'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학 연구에도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시인으로서도 학자로서도 한 시대를 살았던 인물로서도 존경할만한 작가이다. 조지훈은 문학사에 빛나는 위대한 작가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인을 꼽을 때는 늘 비켜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정말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그의 작품을 이렇게 읽고 나면 깊은 감탄을 하며, 그를 또 손꼽게 된다. 우리 언어를 어떻게 이렇게 우아하게 뽑아 아름다운 선으로 흐르게 할 수 있을까? 문학관에서, 또 문학관 탐방기를 쓰면서, 그렇게 작품을 읽고 또 거푸 감탄하게 된다.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줏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초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 당혜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마리 호접
호접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곳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 조지훈, [고풍의상]





한 줄 느낌

- 주실마을 전체가 함께 문학관을 구성하고 있는 듯 따뜻한 느낌을 준다.


한 줄 평

- 문학관으로서의 기본에 충실하고 삶과 문학 모두를 충실히 담고 있는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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