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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맨 사람이 총을 놓으면 되지.

024 권정생 동화나라

by 바이크 타는 집사

<권정생 동화나라>

- https://kcfc.or.kr/

관람시간: 10:00~17: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추석 당일
문의전화: 054-858-0808


#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권정생 어린이 문학관 라이딩 영상

https://youtu.be/2PrFA1UftjQ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스물네 번째, 권정생 동화나라(어린이 문학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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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동화나라는 거리가 가까워 생가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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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생가, 생가라고 검색이 되지만, 사실 이곳은 생가가 아니다. '생가'는 태어난 집을 말하는데, 권정생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1946년 귀국해서 문간방에서 살다 1983년 현재의 '생가'라 불리는 곳으로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정확히 발하면 '살던 집' 혹은 '권정생 가옥' 정도로 불러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먼저 동화나라를 보고, 생가에 방문하면 더 좋다. 권정생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난 후에, 그의 그런 삶이 고스란히 담긴 '가옥'을 보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방치된 듯한 그의 '가옥(생가)'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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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생가로 검색되는 선생이 타계하기 전까지 살던 '권정생 가옥'
IMG_7308.jpeg 가옥 맞은편 예쁘게 꾸며진 화장실


나는 동선의 효율성을 따져 권정생 가옥 먼저 들렀다. 정말 권정생 가옥은 아무것도 없었고, 관리도 안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위의 제일 아래 사진, 예쁘게 꾸며진 곳은 권정생 가옥의 맞은편에 만들어진 화장실이다. 당황스러웠다. 정작 작가의 가옥은 방치되다시피 있고, 방문객을 위한 화장실은 이렇게 예쁘게 조성해 놓다니 말이다. 권정생 문학관인 동화나라로 가서야 알게 되었다. 권정생 가옥이 선생의 삶의 모습대로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지도에는 '권정생 어린이문학관'으로 검색됐지만, 정확히는 '권정생 동화나라'이다. 이정표에도 '동화나라'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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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동화나라'는 폐교된 일직남부초등학교를 개조해서 꾸몄다고 한다. 2007년 권정생 선생이 타계하고 2009년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인가를 받았고, 같은 해 일직남부초등학교 폐교를 활용하기 위해 교육청에 활용 계획을 제출한 후 2014년 권정생 동화나라를 개관하게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권정생 선생의 유지를 지켜오고 있다.


동화나라 마당에는 몽실언니, 강아지 똥, 엄마 까투리 등의 조형물이 있어 입장하기 전부터 아이들이 좋아할 요소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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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학관 입구에는 고양이가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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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은 너무도 가난한 삶을 살았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이 된 후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 년 뒤 안동 일직면 농막에 식구들이 모여 살며 소작농사를 지었고, 이듬해 일직국민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17살이던 1953년 전교 1등으로 졸업하였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부산으로 가 일을 하던 중 결핵을 앓게 되었는데 그런 중에도 '별똥별'이라는 동화를 쓰고 동시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결핵이 심해져 늑막염과 폐결핵, 신장결핵과 방광결핵으로 온몸이 망가져 갔으나 병원에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모친께서 약초를 캐고 뱀, 개구리 등을 먹이며 병간호를 하면서 조금씩 호전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30살이 되던 해, 일본에 사는 셋째 형이 돈을 보내줘 병원에서 한쪽 콩팥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였고, 같은 해 겨울 방광을 들어내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변주머니를 달고 살았다고 한다. 당시 퇴원할 때 의사가 2년도 못 살 것이라고 했다고 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3년 후 33살이 되던 1969년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 현상모집에서 '강아지똥'이 당선되었고, 1974년 첫 동화집 '강아지 똥'을 펴냈다고 한다. 이후 한국아동문학상을 수상하고, 문학잡지에 연재를 하기 시작했고 1983년 지금 보존되어 있는 빌뱅이 언덕 아래 오두막집인 '권정생 가옥'으로 이사를 한다.


1986년 그의 나이 50이 되어서야 빌뱅이 언덕 아래 집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그전까지 석유 호롱불로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마당에 온갖 식물이 자라나는 대로 두었다고 한다. 풀도 함부로 베지 않고 자연 그대로 피고 지는 꽃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것이 그가 가꾸는 자연이고 그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가옥'은 그가 추구했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보존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1986년 '빌뱅이 언덕 아래 오두막집'에 전기가 들어오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직도 고무신과 호롱불이 생리적으로 제겐 어울린다는 진부한 생각을 합니다. 전기 불빛 아래에서 과연 동화가 씌어질 수 있을지 무거운 숙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9세가 되던 해에 장편동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로 새싹회 새싹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는데, 권정생은 수상을 거절했다고 한다.


우리 아동문학이 과연 어린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기에 이런 상을 주고받습니까. 아동문학만이라도 상을 없애야 합니다.


결국 새싹회에서는 안동에까지 찾아가서 상을 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정생 선생은 닷새 뒤 상금과 상패를 우편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한다. 여러 작품들이 주목을 받으며 통장에 돈은 점점 늘어났지만 그는 스스로 가난하게 살았고, 최소한의 생활비원고지를 사는 것 외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선뜻 돈을 내 놓는 분이었다고 한다.



그는 평화주의자였고, 반전주의자였고, 생태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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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초라해 보이는 오두막집에서 여생을 살았던 권정생 선생은 원고료와 책의 인세를 모은 10억여 원.


어린이들이 내 동화를 사서 읽어서 나온 것이니 모두 어린이들에게 돌려주라


는 유언을 남겼고 그렇게 해서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나는 '강아지 똥', '몽실언니'를 읽었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와 문장에 반해 그가 얼마나 청렴하게 살았고,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분의 삶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문학관 탐방기를 쓰면서 '권정생 동화나라'에 대한 소개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그냥 가서 보라고, 직접 찾아가 봐야 하는 문학관이라고만 탐방기를 남기고 싶었다. 그의 순수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서 보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삶의 흔적이 잘 정리되어 진한 감동을 주는 문학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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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개조한 터라 학교의 복도에 여러 전시물들이 있고, 교실이 전시실 형태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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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안으로 들어서면 그의 삶의 모습들과 그의 작품과 작품 세계에 대한 소개, 유품, 주변 사람들의 증언 등을 볼 수 있는데, 평탄치 않았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평생 소변줄을 달고 다녀야 했던, 지독히도 가난해 힘겨운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냈던 그에게서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순수한 언어로 쏟아져 내렸을까? 감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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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았던 오두막집이 복원되어 있는데, 기독교인이던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좋은 동화 한 편은 백번 설교보다 낫다


그렇게 그는 그 어떤 설교보다도 아름다운 수많은 동화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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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는 그가 받은 상, 해외에서 주목받았던 동화 '강아지똥' 관련 포스터와 공연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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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10억을 남겨 어린이들을 위해 쓰이길 바랐던 권정생 선생은 비료 포대로 부채를 만들어 썼다. 스스로 글을 쓰면서 스스로가 울었던 순수한 영혼의 선생은 우리가 감히 평가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평생에 10억을 남겼으니, 그는 10억 자산가로 생을 마감했다. 10억 자산가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던 집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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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을 위해 동화를 썼고, 어린이들이 사서 읽어 벌게 된 그 돈은 어린이에게 돌려 줘야 한다는 동화 작가 권정생. 그는 최소한의 생필품과 원고지 사는 데에만 돈을 썼다고 한다.


그냥 문학관(동화나라)을 돌면서 모든 순간이 숙연해졌고, 먹먹했으나 아름다웠다.


살면서 꼭 한번 가봐야할 문학관이 하나 있다면, '권정생 동화나라'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어른으로 살아야 할지,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 어른이어야 하는지 여러 기준들이 있을텐데 그 중 중요한 하나를 '권정생 동화나라'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문학관에 꾸며진 모든 것들, 모든 기록들, 그의 모든 삶의 흔적을 직접 하나하나 가서 읽고 만나 보기를 추천한다.


꼭 하나 이것만은 내 기록에도 남기고 싶다. 그의 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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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중략>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동화작가 권정생. 이 아름답고 찬란한 순수한 영혼을 나는 제대로 몰랐었다.


'동화나라' 어린이를 위한 곳이지만, 어린이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 어른이라면 가봐야 할 곳이기도 하다. 어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생각나기도 했다. 바른 어른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김장하 선생이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동화나라 입구에서 읽고 멍하니 할 말을 잃은, 시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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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한가운데
가시울타리로 갈라 놓았어요.

어떻게 하면 통일이 되니?
가시울타리 이쪽저쪽
총 맨 사람이 총을 놓으면 되지.

- 권정생, <통일이 언제 되니?>


복잡하고 어지러운 이 세상은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보면 단순해지고 명료해 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총을 내려놓으면 되는 것이다.


권정생이라는 분을 이렇게 깊이 알게 된 것이 너무나도 감사한 하루였다.






한 줄 느낌

- 전시된 모든 내용이 아름다운 감동으로 남는다.


한 줄 평

- 살면서 반드시 가봐야할 문학관이 하나 있다면, 권정생 동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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