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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어 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022. 노계문학관

by 바이크 타는 집사

<노계문학관>

- https://www.yc.go.kr/toursub/nogye/main.do

관람시간: 10:00~17: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문의전화: 054) 330-6548


#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노계문학관 라이딩 영상

https://youtu.be/__K-Ham9rvY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스물두 번째, 노계문학관이다.(노계 박인로)


대구 경북지역은 좀 더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아 3박 4일 코스로 계획을 했다.

이번에는 좀 더 단출하게 짐을 싸서 가볍게 떠났다. DSLR 카메라 대신 폰으로 사진을 찍기로 하고 짐을 대폭 줄였더니 훨씬 가벼웠다.

IMG_7179.jpeg 청도 매전면에 있는 다리


권정생 문학관, 이육사 문학관, 조지훈 문학관, 객주 문학관, 김연대 문학관, 정호승 문학관, 한국수필 문학관, 대구 문학관, 구상 문학관, 백수 문학관, 농민 문학 기념관까지 11개 문학관을 4일 동안 둘어볼 계획이었다.


원래 노계 문학관은 계획에 없었다. 그런데 운문호를 거쳐 영천을 통해 포항을 가는 길에 노계 문학관 이정표를 보게 됐다. 아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노계? 노계 어디서 들어 봤는데? 그래, 박인로가 떠 올랐다.


한국가사문학관에서 만났던 박인로. 브런치 스토리 방문에도 올렸던 시조 '반중 조홍감이'가 떠오르면서 급 좌회전해서 들어갔다.



11개 문학관을 계획하고 출발한 3박 4일의 문학관 투어는 출발한 첫날 첫 일정을 시작하자마자 문학관 하나가 추가되어 총 12개의 문학관을 탐방하게 되었다.


첫날은 원래 이렇게 계획했었다.

스크린샷 2025-07-17 오후 2.39.45.png 빨간색은 아직 가지 않은 문학관, 노란색은 관람 완료한 문학관.


포항까지 올라가서 동해안을 타고 올라가 '구주령' 라이딩 후 '지훈문학관' 들러서 캠핑장까지 가는 거였다. 중간에 노계 문학관이 추가되면서 첫날은 지훈 문학관은 다음 날로 넘기고 360km 정도의 장거리 라이딩으로 하루를 보냈다.


TMI : 캠핑으로 문학관 투어하면 매일 아침 텐트와 캠핑용품을 걷어서 단단히 짐을 싸고 출발하는 일을 아침마다 반복해야 하는데, 날씨가 더워 아침부터 땀을 흘리며 철거하다 보면 출발하기 전부터 지치게 된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총 주행거리고 조금 늘어나더라도 문학관이 분포된 중간 지점에 캠핑장을 잡고 이틀 정도 묵으면서 다니면 좋겠다 싶어, 경로를 만들어 보니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해서는 그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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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들을 하루씩 나눠서 돌아보면 딱 좋았다. 캠핑장에서 2박을 했고, 아침에 텐트 정리만 하고 짐 없이 가볍게 라이딩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어쨌든 우연히 만나게 된 스물두 번째 문학관인 노계 문학관은 문학관 협회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고, 구글지도로 정리된 문학관에도 나와있지 않아 있는지 조차 몰랐던 문학관이다. 우연히 만나게 되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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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계 문학관은 2018년 6월에 개관하였고, 영천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립 문학관이다. 문학관 부지가 꽤 넓어 문학관 본건물 이외에도 입구의 큰 주차장과 꽤 넓은 노계 문학공원, 도계서원, 노계 묘소까지 규모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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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에서 꽤 신경 써서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3대 시인(가인)으로 꼽히는 사람이니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일 것이다.


내 브런치 스토리의 '한국가사문학관'에서 소개된 정철(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21), '보길 고산 윤선도 문학관'에서 소개된 윤선도(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16), 그리고 이번 '노계 문학관'에서 소개될 박인로가 조선의 삼대 가인(歌人)으로 불린다.


참고로 문학관의 소책자에 보면 '조선 삼대 가사문학가'로 불린다고 되어 있는데, 고산 윤선도는 익히 알려진 가사 작품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로 시조에서 탁월함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래서 보통 3대 가인(시인)으로 꼽는데, 아무리 검색해 봐도 윤선도의 가사 작품이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 삼대 가사문학가'는 확인이 필요할 듯하다.


박인로는 1561년 괴화마을(지금의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67수의 시조와 11편의 가사 그리고 110수의 한시를 남겼다고 하며, 1599년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605년 통주사가 되었다고 한다. 진동영(부산진) 통주사로 내려오는데 이때에 그 유명한 전쟁가사 '선상탄'을 쓰게 된다. 이 내용이 선상탄의 첫 부분에 서술되어 있다.

늙고 병든 몸을 주사로 보내실새
을사(을사년) 삼하(여름)에 진동영(부산)에 내려오니
관방중지(국경의 요새)예 병이 깊다 안자실랴(앉아 있으랴)
일장검 비기 차고(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구테 올나(굳이 올라가)
(기운을 돋우고 눈을 부릅 떠) 하야(두 눈을 부릅뜨고) 대마도를 굽어보니
.....
- 박인로, '선상탄' 중에서


그는 가사와 시조를 많이 남겼고, 특히 정철, 송순과 더불어 가사 문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박인로는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을 익히고 안빈낙도(安貧)선비의 정신을 실천하다고 한다.



문학관은 박인로의 발자취와 일대기 영상을 시작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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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간중간에 작품들이 있고, 작은 미디어실도 있었다. 특히 노계와 셰익스피어의 공통점을 강조했는데 같은 시대에 살았는데 노계가 셰익스피어보다 3살 위였다고 한다. 그리고 둘은 공통적으로 스승과 제자가 불문명하였고, 자신의 작품을 정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타고난 천재성을 둘 다 지녔던 듯하다. 제자는 두고서라도 스승이 없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자신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였던 것 같고, 자신의 작품들을 정리하여 소회를 남기거나 작품집을 정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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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박인로와 동시대의 위인들을 정리해 둔 것이다. 서양에는 셰익스피어, 데카르트, 스피노자, 미켈란젤로 같은 사람이 있었다. 조선에는 이황, 이이, 헌나설헌, 허균 같은 이들이 있었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시대적인 배경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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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로는 시조, 가사, 한시 등 다양한 작품을 창작했다. 시조 '조홍시가', 가사 '누항사'와 '선상탄'이 그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조 '조홍시가'는 박인로가 벗인 '이덕형'에게 찾아가 홍시를 대접받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읊은 작품인데 '가사문학관' 방문기에도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 가까운 벗이었던 사람이라고만 짐작했는데, 이 '이덕형'이 우리가 잘 아는 '오성과 한음'의 한음이 이덕형의 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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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디지털 방명록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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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공원이 넓고 시비들이 중간중간 세워져 있어 걷기 좋았다. 바람도 잘 불어 의자에 앉아 쉬어가기 좋았다. 학예사님 말씀으로는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노계 묘소(아래 사진 8)도 있다며 가보길 권하셨다. 먼저 도계서원에 갔는데 서원은 개방하지 않았다. 여기서 1차 아쉬움. 서원에서 조금 더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아 그냥 되돌아왔다. 나는 도계서원에서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올라갔는데,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이고 다시 뒤돌아서 8번으로 가야 했는데 이정표가 없어 제대로 찾지 못했던 점. 여기서 2차 아쉬움.


노계묘소를 찾아가는 도중에 지도앱을 켜 봐도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의 6번 위치에서 누군가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고 계셨는데, 그래서 더더욱 '노계문학 공원'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정표 등 좀 더 자세한 안내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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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다녀오게 된, '노계문학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선상탄'과 '누항사'이다. 선상탄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쓴 전쟁 가사이고, 누항사는 '안빈낙도'를 노래한 은일가사(강호한정가)이다.

내 빈천(가난과 천함) 슬히(싫다고) 너겨(여겨) 손을 헤다(내젖는다) 물너가며(물러가며)
남의 부귀 불리(부럽게) 너겨(여겨) 손을 치다(친다고) 나아오랴(나오겠느냐)
인간(인간사) 어느 일이 명 밧긔(밖에) 삼겨시리(생겼으리)
가난타 이제 죽으며 부유하다 백 년 살랴
원헌(가난을 이겨내어 공부함) 이는 몇 날 살고 석승(부유했던 인물) 이는 몇 해 산고
빈이무원(가난하되 원망하지 않음)을 어렵다 하건마는
내 생애 이러호되 설온(서러운) 뜻은 없노왜라(없노라)
단사표음(대나무 도시락 밥과 표주박의 물, 가난한 삶)을 이도(이것도) 족히(만족하게) 너기노라
평생 한(큰) 뜻이 온포(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음)에는 없노라
태평천하에 충효를 일을 삼아
화형제(형제가 화목하게 지냄) 신붕우(벗을 믿음) 외다(그르다) 할 이 뉘 이시리(있으랴)
그 밧긔(밖에) 남은 일이야 삼긴대로(생긴대로, 타고난 대로) 살렷노라(살겠노라)

- 박인로, '누항사'


누항사의 마지막 부분이다.


가난을 쫓아낸다고 물러갈 것도 아니며, 남의 부귀를 부러워한다고 나에게 오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일이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달렸으니 가난하다고 일찍 죽고 부유하다고 오래 하는 것도 아니다. 단사표음도 만족하게 여기며, 나는 구태여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는 데에는 그 뜻을 두고 있지 않았으니, 오로지 태평천하에서 충과 효에 뜻을 두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고 친구 간에 신의를 중요하게 여길 뿐, 그 외에 다른 일들이야 타고난 대로 주어진 대로 살겠다.


청빈의 삶, 안빈낙도의 삶이 진하게 녹아 있는 작품이다.


가난은 무능력과 부끄러움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세계적인 석학 마이클 샌델이 능력주의를 경계하며 부유함이 능력이 되어버린 후기 자분주의를 통렬히 비판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부유함은 능력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그런 우리에게 물질적 가치가 아닌 정신적 가치를 일깨워준다.

박인로는 부유하다고 남들보다 더 오래 산다거나 가난하다고 남들보다 더 빨리 죽는 것도 아닌, 그저 원헌이나 석승이나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았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러기에 다만 나는 충, 효, 우애, 신의 같은 더 높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 멋지다. 물질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겠다는 패기.


박인로를 더 깊이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우연히. 출발부터 아주 좋았다.




한 줄 느낌

- 고요하고 조용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안빈낙도'의 박인로를 닮은 문학관이다.


한 줄 평

- 어렵게 느껴지는 고전 문학과 작가를 쉽게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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