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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021. 동리목월문학관(박목월 생가)

by 바이크 타는 집사

<동리목월 문학관>

- https://dml.gyeongju.go.kr

관람시간: 09:00~18:00(동절기 11월~12월, 09:00~17: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 / 월요일이 공휴일(연휴일) 경우 다음날에 휴관
문의전화: 054) 779-6090


#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동리목월 문학관 라이딩 영상

https://youtu.be/i20Gjc-02QE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스물한 번째, 동리목월 문학관이다.


동리목월 문학관은 경주에 있다. 차로 30분 거리에 박목월 생가가 있다. 경주 안쪽에 문학관이 경주 서쪽 외곽에 생가가 있는데 날씨와 시간만 허락한다면 다녀올만 하다.





경주 출생인 김동리와 박목월은 각각 소설과 시에 있어서 최고의 작가들이다. 두 작가 모두 1940년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자 절필했던 작가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이고, 나 역시도 상당히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불국사 바로 옆에 있어 찾아가기도 좋은 위치에 있다. 교통편도 잘 되어 있다.


1층은 사무실, 영상실, 자료실 등이 있고, 2층에 동리문학관과 목월문학관이 있다. 사진에 보이는 계단 위 1.5층 정도로 보이는 곳이 2층이고 동리문학관, 목월 문학관이 있다. 반지하로 보이는 아래층이 1층이다.


2층 입구에 김동리 자택의 정원 석조물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관 외부에도 석조물들이 제법 전시되어 있는데,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김동리의 유품에는 도자기도 많았던 것으로 보아 조소(彫塑) 관심이 많았던 것 같고, 수집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문학관에 들어가면 입구 좌측이 동리문학관, 우측이 목월문학관이다.


동리문학관


동리문학관 입구에 오른쪽 벽면으로 작가 연보가 있고 정면에는 흉상이 있는 이미지홀이 보이는데 여기서부터 관람을 시작하면 된다. 이미지홀을 시작으로 오른쪽 벽을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관람하면 된다.


김동리는 1913년에 태어나 1934년 시 '백로'로 입선하였고,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화랑희 후예'가 당선되었고,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산화'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주로 '운명'의 문제를 다루었고, 민족의식우리의 얼을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41년 친일단체의 가입통지서를 불살라버렸고, 소설 '소녀'와 '하현'이 일제의 검열로 전문 삭제되자 절필하고 해방이 될 때까지 침묵하며 지냈다.

해방 후 대부분의 작가들이 가입해 있던 좌익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무척 쓸쓸했으나 그들과 행동을 같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며, 문학이 도구화, 구조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유치환,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서정주 등과 함께 '청년문학가협회'를 만들었고, 이후 많은 '단체'를 맡아 책무를 다했다고 한다.


나는 단체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자꾸 나에게 단체를 맡긴다.


김동리는 서울대, 고려대, 중앙대 등 강단에서 30여 년을 가르쳤다고 하며, 그의 제자들 중 등단 작가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1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서예를 좋아하여 집안에는 늘 묵향이 가득했다고 하며, '문장을 쓸 때는 고통스러운데, 글씨를 쓰는 것은 즐겁다.'라고 할 정도로 글쓰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런 동리의 생애와 문학세계가 문학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생애와 문학', '경주와 김동리', '김동리의 문학', '작품 세계' 등 주제별로 전시가 되어 있고, '등신불' 매직비전, '황토기' 애니메이션, '무녀도' 모형 등 대표작들은 별도로 시각적으로 꾸며져 있다.


전시 주제별로 주제에 해당되는 내용은 벽면에 정리되어 있고, 그 아래로 그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통 유품 코너가 따로 있는데 반해, 동리 문학관에서는 주제 전시 아래에 유품들과 친필 원고지, 수첩, 도자기 등의 전시가 이어진다.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한 전시를 읽고 관련된 사진들을 관람하다 시선을 내리면 다양한 유품들이 계속 이어지니 관람 내내 집중하게 되는 측면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전시의 집중도가 떨어지고 산만해질 것 같지만, 실제로 관람을 해보면 오히려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


생애와 작품 세계, 그의 작품과 경주 등 읽을거리가 많은 전시들은 조금씩 읽다가 금방 집중도가 떨어져 제목만 보거나 주요한 내용만 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바로 아래에 유품들과 친필 메모 같은 것들이 있으니, 조금 더 머무르며 유품들을 보게 되고, 그러면서 읽지 않고 넘어갔거나 대략 훑어 보았던 글들을 다시 읽어 보게 되기도 했다.


무녀도 모형, 등신불 매직비전, 황토기 애니메이션 전시
집필실


김동리의 소설 중에서는 '역마'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역마의 마지막 부분은 늘 마음이 묘해진다.

성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산나물이 화갯골에서 연달아 자꾸 내려오는 이른 여름의 어느 장날 아침이었다. 두릅회에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키고 난 성기는 옥화더러,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맞춰 주."
하였다.
"......"
옥화는 갑자기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이 성기의 얼굴을 멍하기 바라보고 있었다.
<중략>
그의 발 앞에는, 물도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 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하동 장터 위를 굽이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이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어,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보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그의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 하여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다.


역마살. '한'의 세월을 살아야 하는 역마살.

한 때 사랑했던 계연으로 인해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으나, 계연은 이복 이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신병(神病)을 앓는 무당처럼 앓아누웠던 성기는 해를 넘기고 기운을 차린다. 마치 신내림 굿을 하듯 엿판 하나를 짊어지고 길을 떠나는 성기는 발걸음이 가볍다. 파이어족이 자발적 퇴사를 하고 떠는 여행 같은 느낌이다. 나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김동률의 '출발' 노래를 들었을 때 역마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엿판을 들고 길을 나서는 성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세 갈래'로 갈리어진 길에서 화개 쪽은 처음부터 생각이 없었고, 남아 있는 두 갈래 하동과 구례 쪽의 갈림길을 바라보고 섰던 성기는 계연이 떠난 구례 쪽이 아닌 하동으로 방향을 잡는다. 한참 미련을 둔 듯 서 있더니 결국 계연이 떠난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여운과 아이러니가 뒤섞여 오래 남는 엔딩이다.


역마살을 다룬 또 다른 소설 '메밀꽃 필 무렵'과는 또 다른 주제 의식이 흥미롭다. 허생원은 성씨 처녀와의 '기막힌 인연'이 있은 후 봉평장을 빼놓지 않는다. 봉평을 중심으로 장에서 장으로 건너 다닌다. 그러니 그의 아들일지도 모를 '동이'를 허생원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마'는 세 갈래 길은 순환구조가 아니다. 쭉 뻗은 완전한 갈림길이기에, 성기가 언젠가는 계연을 만나리라는 미련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하동행은 운명에 모든 걸 던지고 떠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독자는 헛헛한 마음에 옥화처럼 멍해지는데 정작 당사자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목월문학관


목월 문학관은 동리문학관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구성이 되어 있다. 들어서면 왼쪽으로 '작가 연보' 정면으로 흉상이 있는 '이미지홀'이 있다. 그리고 왼쪽 벽면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관람을 하면 된다.



박목월은 1915년 경주에서 태어나 1933년 동요 '퉁딱딱 통짝짝', '제비맞이'가 당선되어 동요시인으로 등단했다 그 후 1939년 '길처럼'으로 시작해 1940년 '가을 어스름'이 세 번째 추천을 받으면서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산그늘', '윤사월', '산도화', '청노루', '나그네', '하관', '이별가' 같은 유명한 시를 남긴 작가이다.


박목월은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로도 유명한 시인이다.

그런데 '청록파'는 하나의 문학 유파(같은 시적 경향을 지향하는)로 보지는 않는다. 이들의 시의 경향은 서로 달라 어떤 하나의 문학유파(시문학파나 낭만파 같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들 3인은 '문장'지를 통해 등단하였고, 해방 이후 '문장'을 통해 데뷔한 시인 중 일부는 사망하고 일부는 북에 남게 되어 만날 수 없어, 만날 수 있는 시인 중 시 세계가 이질적이지 않은 셋이 모여 시집을 내게 되었다고 한 데서도 드러난다.

이들이 주로 자연을 소재로 하여 노래한다는 점에서 시집의 제목을 '청록집'이라 하였고, 사람들이 이 세 사람을 '청록파'라 부르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청록파를 검색하면 '문학 유파'라고 많이 설명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들이 공통된 시적 지향을 갖고 뭔가를 결성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들의 시 세계에서 공통적인 '태도'들을 읽을 수 있는데, 자연을 제재로 하여 '자연의 본성을 통해 인간적 염원과 가치를 성취시키는 태도(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가 그것이다.



그리고 박목월은 김소월과 견주는 우리 시를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북에는 소월이 있고, 남에는 목월이가 날 만하다. - 정지용


그러면서 정지용은 민요풍에서 시로 발전하는데 목월이 더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1939년 등단하였으나 194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의 탄압이 극심해졌고, 김동리와 마찬가지로 박목월도 절필하였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박목월은 묻어둔 작품들을 꺼내 다듬었고, 이듬해 1946년 그 유명한 '청록집'을 발간했다. 이후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3인'으로 불린다. 그 후 1955년이 되어서야 첫 시집 '산도화'를 발간했고, 이후 시 작업이 더욱 활발해져 1959년 두 번째 시집 '난 . 기타'를 발간했다. 이후에도 많은 시집과 산문집을 발간했다고 한다.




동리문학관과 마찬가지로 '생애와 문학', '시의 배경 경주', '집필실' 등이 있는데, 역시 전시 아래쪽으로 유품들과 출판된 서적, 친필 원고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또 '시 . 이미지 영상', '육성 시낭송 영상', '동시 검색코너' 등이 있어 멀티미디어 자료도 풍부하다.



특이한 점 중 하나는, 박목월의 생활 유품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을 보면 안경, 담배파이프, 카메라, 도자기, 찻잔 등 다양한 유품들이 있는데 박목월은 생활 유품으로는 잉크, 연필, 만년필, 작은 수석 몇 점 정도였다. 집필실도 단출했다. 1962년에는 한양대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이후 한양대 문리대 학장으로도 취임하였다고 하니 그의 생활이 궁핍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가 검소한 성품이거나 지금으로 치면 미니멀리스트가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동리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목월 문학관에는 '달과 나무' 코너가 있는데, 그의 대표 시를 마음껏 읽을 수 있다.

박목월의 초기, 중기, 후기 시의 특징 정리


정말 아쉬웠던 점이 박목월의 '육성, 시낭송 영상'이 있다는데 보지 못하고 나온 점이다. 이날 아침 출발할 때는 꼭 영상으로 찍어 두어야지 했었는데 깜빡했다. 문학관 소개에 보면, '달과 나무' 코너에 육성 시낭송 영상이 있다고 하는데, 시를 읽는데 집중해서였는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냥 나와 버렸다. 이 글을 쓰면서 육성 시낭송 영상을 못 봤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쉽다.


박목월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나그네'를 많이 꼽을 것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


언어적 조형미가 압권인 작품이다. 향토적인 배경, 민요적 율격 등 친숙한 분위기와 운율을 기반으로 하여 반복어구, 명사형 종결 등으로 정서를 집중시키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그네'는 조지훈이 박목월에게 보낸 시 '완화삼'에 대한 답시이다. 완화삼 또한 걸작이다.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조지훈, <완화삼 - 목월에게>


이들이 주고받은 시는 요즘 말로 '낭만 치사량 초과'다. 조지훈이 경주로 내려가 박목월을 만나 이 시를 건넸고, 박목월은 이듬해 '나그네'로 화답을 했다고 한다.


동리목월 문학관을 보면서 '순천문학관'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들이 같은 곳에서 나고 자라, 각각 같은 문학관에 함께 있다는 점이 비슷했다. 순천의 김승옥, 정채봉 그리고 경주의 김동리 박목월. 좋아하는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한 줄 느낌

- 좋아하는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한 줄 평

- 김동리와 박목월처럼 오래됐지만 빛나는 잘 관리된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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