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조태일시문학기념관
- https://www.gokseong.go.kr/tour/tourist/park?mode=view&idx=59
관람시간: 하절기: 09:00~18:00 / 동절기: 09:00~17: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법정 휴무일
문의전화: 061) 362-5868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열아홉 번째, 조태일시문학기념관이다.
조태일. 생소한 이름이다. 한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다. 역시 내 소양이 부족하다는 걸 또 한번 인정하게 된다.
문학관 입구에 시 한편이 새겨져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일것이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이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으로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달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 조태일, <국토서시>
'국토서시'는 1975년 발표했다가 판금되었던 <국토>라는 시집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우리의 땅'인 국토를 밟고 우리 땅을 거닐기 위해 '우리의 삶을 불지'피고, '피와 다 달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 바쳐야 한다. 우리는 우리 땅에 서 있지만 우리 땅이 아닌 역설적인 상황일 것이다. 그것이 억압이든, 불의든, 독재든, 우리 땅을 우리가 밟고 살아야 한다면, '풀잎 하나', '동멩이 하나'에까지 숨결이 닿도록 '삶을 불지필 일'인 것이다. 민중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달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내 모든 걸 바치겠다는 표현을 이렇게 멋지게 풀어내는 시인의 문장에 매료 되었다.
조태일 시인은 곡성 태안사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1964년 경향신문에 '아침선박'의 당선으로 문단에 등당하였고 '식칼론'이라는 시집은 참여시의 큰 성과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조태일은 '민족시인'으로 불리고 있었고, 저항시인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의 약력을 보면,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를 창립했고 1975년 제 3시집 <국토>를 간행했지만, 긴급조치 9호로 판매금지를 당한다. 그리고 1977년 양성우시인의 <겨울공화국> 발간 사건에 연루되어 고은 시인과 함께 투옥 당하였고, 1981년 평론집 <고여 있는 시와 움직이는 시> 1983년 제4시집 <가거도> 가 연이어 판매금지를 당하게 된다. 이후, 성옥문화상 예술부문 대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는 시 뿐 아니라 평론에서도 활동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문학관 입구 주차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시실과 맞은편의 창작실이 아담하게 내려 앉아 포근해 보였다.
전시실 내부는 일자로 길게 뻗어 있다. 그리고 낮은 곳에서 점점 올라가도록 경사가 져 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민족시인, 저항시인으로 불리는 그의 삶을 고려했을까? 굽어짐 없이 곧은 전시관, 그러면서 조금씩 한계단씩 천천히 위로 향하는 내부는 그의 문학과 삶을 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관 소개에 보면, 시인의 유품과 작품, 그를 기리는 문학작품들을 포함하여 2,0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많은 희귀본 시집 등도 상당히 전시되어 있었다.
보통의 경우 문학관에는 작가 연표 하나가 전시실 초입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조태일 문학관은 조금 달랐다. 먼저 시대별로 작가의 '시문학 연대표'가 순서대로 전시되어 있고, 마지막에 작가의 약력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대별 시문학 연대표는 당시의 문학의 흐름도 함께 소개되어 있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작가 시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문학관들처럼 그의 유품과 서신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 내 곳곳에 그의 작품이 걸려 있는데, 어느 하나 버릴 작품이 없는 듯하다. 섬세한 시선과 치열한 현실인식이 시에 녹아 있었고, 대체로 산문적이면서도 시적 감성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 중 눈에 들어온 시가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풀꽃을 꺾는다 하지만
너무 여리어 결코 꺾이지 않는다
피어날 때 아픈 흔들림으로
피어 있을 때 다소곳한 몸짓으로
다만 웃고만 있을 뿐
꺾으려는 손들을 마구 어루만진다
땅속 깊이 여린 사랑을 내리며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에
노래되어 흔들릴 뿐
꺾이는 것은
탐욕스런 손들일 뿐
- 조태일,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힘겨운 시대를, 수많은 시련 속에 살아가면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지혜로움이 읽힌다.
전시관 마지막에는 희귀본과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최초의 근대시집인 최남선의 '백팔번뇌',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 등의 희귀본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해서 찾아 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전시관 맞은 편에 있는 '창작실'과 '시문학 카페'가 있는데, 그 카페 안 쪽에 '시집전시관'이 있는 듯하다. 내가 갔을 당시, 카페라고는 하는데 안에 아무도 없고 문이 닫혀 있었다. 점심 식사 후 방문한 터라, 날도 덥고 시원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어 몇 번을 기웃거렸지만 아무도 없는 카페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창작실에 있는 분들이 이용하는 무인카페 같은 것이려니 생각하고 그냥 돌아 나왔는데 문이라도 한번 열어볼 걸 하는 후회가 남기도 한다. 그냥 한번 문을 열고 들어가 봐도 되는데 내 성격상 그냥 돌아나오게 된다.
민족시인 조태일의 문학세계를 기리고, 예비 문학도들의 창작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조태일시문학기념관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태안사를 방문하게 된다면 꼭 지나게 되는 태안사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2023년 태안사 일주문이 보물 2234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태안사를 방문하는 방문객들이 문학관도 많이 들른다고 한다.
문학관 탐방을 계획하지 않았다면, 이름 한번 들어 보지 못했을지 모르는 시인 조태일. 이제 그를 알게 되었고 또 그의 작품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또 하나의 문학 세계가 열렸다.
전남 지역의 문학관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짜는 바람에, 문학관 도장 깨기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하는 문학관 투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금씩 물음표를 던지던 중이었다. 그러면서 전남 지역 마지막 코스의 문학관이 '조태일시문학기념관'이었다. 문학관 투어를 통해 나는 무엇을 얻고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조태일 문학관을 통해 내 삶에 새로운 문학 세계들이 하나씩 쌓여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는 많은 의미를 남긴 문학관이다.
처음에는 올해 안에 계획한 모든 문학관을 오토바이로 다 찍고 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시작했지만, 이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문학관을 방문하는데 꼭 오토바이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올해 안에 다 돌아보지 못해도 몇 년이 걸려도 괜찮을 것 같다. 이번 문학관처럼 '시집 전시관'을 못찾고 그냥 돌아와도 또 괜찮다.
문학과 오토바이가 좋아 시작한 만큼, 문학관을 통해 더 많은 작가와 작품을 만난다면 목적을 이룬 것이 아닐까 싶다. 여의치 않다면 자동차로 다녀와도 또 어떤가. 조태일 문학관에서 마지막 경로 '우리집'을 찍고 돌아오면서, 길고 긴 길은 3시간을 달려 복귀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찍어둔 문학관을 올해가 가기 전에 다 돌아봐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좀 더 편해진 듯하다.
한 줄 느낌
- 내 삶에 새로운 문학 세계들이 하나씩 쌓여한다는 것을 느꼈다.
한 줄 평
- 조태일의 삶과 문학처럼 굽어짐 없이 곧게 뻗어 한 계단 씩 위로 향하는 멋진 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