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이육사문학관
관람시간: 09:00~18:00(11월~2월, 17:00까지)
관람료: 2,000원(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문의전화: 054) 852-7337
#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이육사 문학관 라이딩 영상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스물다섯 번째, 이육사 문학관이다.
이육사문학관은 안동에 위치해 있다. 전시관은 '문학정신관'으로 불리는데 2개 층으로 되어 있고, 2층부터 관람하게 된다. 그리고 전시실 건물 뒤쪽으로는 '생활관'이 있다. '생활관' 내에는 다목적실, 세미나실, 강의실 등이 있는데, 단체나 그룹 연수생들을 위한 객실, 식당도 함께 있다고 한다.
이육사 문학관은 탄신 100주년이 되는 2004년에 설립, 개관하였다고 하며, 2017년에 전시관, 생활관, 이육사 생가(복원)로 증축하여 재개관했다고 한다. 재개관할 때 조성된 듯한데, '이육사 문학로드'도 좋아 보인다. 복원한 생가와 전시관을 나오면 길 건너 '광아'의 시상지(윷판대)가 있고, 문학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이육사 묘소, 생가터인 잔디광장은 '청포도 시비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가벼운 산책 겸 다녀오면 좋을 가까운 거리에 하나의 길로 이어져 있다.
2017년에 재개관했으니 9년 정도 되었지만, 새 건물처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내부도 마찬가지다.
입구에는 이육사의 흉상과 그의 삶을 상징하는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고, '소년에게'라는 시도 함께 세워져 있다. 이육사의 특징인 '힘찬 어조'가 잘 느껴지는 작품이다.
낮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이육사의 생애부터 전시가 시작된다.
이육사는 1904년 문학관이 위치한 안동군 도산면에서 태어났다. 퇴계 이황의 14대 손으로 어려서부터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27년 23세 때,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는데, 이때 대구감옥의 수인번호가 264였고, 이때부터 '이육사'를 필명으로 쓰기 시작했다. 2년 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고 이후 끝없이 투옥과 석방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 1932년 조선일보 기자였던 그는 조선일보를 퇴사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에 있는 '조선혁명군사정치 간부학교' 1기생으로 입교하여 이듬해 졸업하며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는데, 이로 인해 이육사가 의열단 단원이라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전해지기도 하는데, 나 역시도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으로 지금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육사가 의열단에서 설립한 군사간부학교를 졸업하긴 하였으나 의열단에는 가입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밝혔다고 하며 '간부학교 1기생'들의 의열단 명단 18명의 그의 이름은 없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군사학교에서 정치, 경제, 철학은 물론 군사학과 탄약, 폭탄 등의 제조법, 변장법, 서류은닉법, 암살법, 철로폭파법 등의 교육을 받았으니 의열단에 버금가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7번의 감옥생활과 요주의 인물로 수배되기도 했던 그는 1943년 귀국하였다가 검거되었고 베이징으로 끌려간 후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였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로 기록되는 이육사는 시인으로서의 성과를 더욱 주목받는다. 그 유명한 '청포도', '절정', '꽃', '교목' 등을 남겼으며, 남성적이고 대륙적인 성향으로 당시 많은 시에서 나타났던 여성적 감수성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그는 시는 행동이며 진정한 의미의 참여라고 생각했다고 하며, 그는 죽음을 초월한 강인한 저항정신을 보여준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유림문학과 이육사, 안동의 유고정신과 이육사, 그의 친인척과 고향 마을 이웃 독립운동가들에게 받은 영향들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감옥 생활과 관련된 전시된 전시도 인상적이었고, 자료들의 가독성도 좋았다.
주로 2층의 1전시관은 육사의 생애, 육사의 성장 배경, 교육환경, 가정의 분위기 등 독립운동을 하게 된 배경 그리고 장진홍 의거 사전과 수감, 이원록에서 이육사로의 변천 과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1 전시관이 끝나는 지점에 문학카페도 있다. 날이 더워 아이스커피 한잔 마시며 쉬었다.
카페를 나오면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1층이 '2전시관'이다.
2층 내려가면서 만난 시 '교목'이다.
교목은 오래된 큰 나무를 말한다. 이 시는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시대를 버티며 스스로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강인하고 굳는 의지와 태도를 보여준다.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죽을지언정 어느 누구도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하는 단호한 결의를 보여준다. 이육사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고, 그의 남성적 어조와 강인한 의지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TMI: 검색하다 보니 이 작품이 2007년 수능에도 출제되었다고 한다.
1층의 2 전시실로 들어서 계단에서 내려오면 그의 독립운동과 문학활동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2017년에 재개관했으니 9년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내부도 아주 잘 관리되어 있어, 마치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문학관 같이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고, 전시 방식이나 구성이 세련되어 보기 좋았다. 두 개의 전시실 모두 넓고 자료도 풍부했다.
그는 '소위 단순한 시인'이 아니다. 시인 이육사에 대한 그의 친동생 '이원조'의 회고가 인상적이다.
천고의 초강, 이육사
이원조는 <육사시집>의 발문에서 초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초강'은 눈서리 속에서도 불의에 맞서서 버티는 정신의 고결함과 강직성을 뜻한다. 시 <절정>에서 볼 수 있듯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그런 비극적인 상황과 대결하면서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시인의 결연한 의지와 윤리적 확신은 이러한 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원조는 이육사가 '초강하고 비타협적'이었지만 친구들에게는 관대하고 어진 사람으로 알려지고 일제 경찰에게는 감시 대상인 요시찰인이었으니, 이육사는 '소위 단순한 시인'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한 줄 느낌
- 이육사는 '소위 단순한 시인'이 아님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한 줄 평
- 새로 지은 문학관인 듯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고, 풍부한 자료로 풍성한 관람이 가능한 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