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1. 마산문학관 (그리고 이은상)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는 제일 가까운 곳부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제일 가까운 '마산 문학관'이 첫 번째 문학관이다. 5년 넘게 사용하지 않고 묵혀두었던 DSLR을 꺼냈고, 문학관 탐방을 시작했다.
- https://www.changwon.go.kr/cwportal/depart/11062/12453/12469.web
관람시간: 09:00~18: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문의전화: 055) 255-7191
마산문학관의 정식 명칭은 '창원시립마산문학관'이다. 2005년 10월 28일 개관하였고 인문학아카데미, 문예창작교실, 수요문예교실 등의 교육프로그램과 각종 전시회도 함께 진행한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3월에는 제39기 시민문예대학 수강생을 모집하여 6월까지 운영할 예정이라는 공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생을 마산에 살았고, 문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마산문학관의 존재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잘 알려지지 않아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문학관이 아니라 꽤 활발하게 운영되는 문학관이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문학관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아, 여기서부터구나.'하고 존재를 알린다. 박물관 들어가기 전, 한글 자음 조형물은 마산합포구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전망이 좋았다.
넓진 않지만 6대 정도 주차가 가능한 전용주차장이 있었고, 평일 오후라 방문객은 나 한 명 밖에 없었다.
문학관에 들어서자 안내하시는 분이 반겨 주셨고, 내부를 둘러보려는데, 학예사님이 들어오셨다. 이 문학관의 개관 준비부터 함께 해 오셨다며, 괜찮다면 문학관에 대해 설명을 해 주겠다고 하셨다. 당연히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첫 시작부터 너무 잘 풀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마산문학관은 '이은상문학관'으로 계획을 했었다고 한다.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가곡으로도 유명한 이은상의 시 '가고파'에서 노래하는 '내 고향'은 바로 마산이다. 그래서 마산을 대표하는 노산 이은상을 기념하는 문학관을 건립하려 하였으나 그의 친일행적과 친독재행적을 이유로,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문학관의 명칭을 '노산문학관'으로 바꾸려 하였으나 반발이 계속되어, 결국 마산시의회(통합창원시 이전) 의결로 '마산문학관'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친일문제는 늘 뜨거운 이슈였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친일 부역자들에 대해서는 냉정하고도 단호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친일 작가의 행적과는 별개로 친일작품이 아닌, 문학사에 남긴 그들의 다른 작품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고민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다. 첫 문학관 탐방부터 상당히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친일작가의 문학관을 제외해야 할 것인가? 마산문학관을 다녀와서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전국에 건립된 문학관을 탐방하고, 그 문학관에 대한 내 감상과 평을 기록하겠다는 것이 내 목표이므로 일단 모든 문학관을 돌아볼 것이고 내 나름의 평가해 나가기로 했다.
학예사님의 열정이 느껴지는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에 들어서면서 '백치동인'활동을 했던 작가들의 친필 원고와 주고받은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손편지들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고, 관리를 잘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마산 문학관 내부에는 마산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작품이 한 꼭지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풍성한 자료들이 정리된 건 아니지만 필요한 내용들이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마산'하면 또, 너무도 유명한 시인 '천상병'. 물론 태어나기는 일본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적지가 마산이다.
천상병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다.
'귀천'으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은 순수한 마음으로 삶을 노래했고, 실제로도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성격이라고 알려져 있다. 술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었다고 하고, 모진 고문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는데,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후유증으로 몸이 망가지게 되었다. 치아가 다 빠져버렸고 말이 어눌해졌고 정신착란을 겪기도 했는데, 이런 이유로 1971년에는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버렸다. 이 사실을 몰랐던 가족과 동료 시인들은 실종된 그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그가 어딘가에서 객사한 것으로 여겨 그의 유고 시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생존이 확인되었다. 살아서 유고시집을 내기도 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시인이다.
그는 '귀천'에서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고 말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삶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나는 이 구절을 처절한 역설로 읽었다. 다른 시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순수함이 눈물겨운 역설로 나는 읽힌다. '갈대'를 읽고, '귀천'을 읽으면 더욱 그러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 '갈대', 천상병
마산문학관에 전시된 마산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시화전을 보며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조선어학회의 이극로 선생과 친일 작가로 알려진 이원수', '3.15 추모 시화전과 친독재행적의 이은상'. 이 모순된 전시 속에 혼란스러움도 느껴졌고, 약간의 불편함도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질곡의 근현대사의 모습이 현재의 문학관에서도 이렇게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씁쓸함도 느껴졌다.
덧붙이자면, '마산 문학관'의 이은상 지우기 문제는 친일보다는 친독재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다.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3.15 의거로 인해 마산에서 많은 어린 학생들이 죽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3.15는 마산의 아픔이자 민주주의를 지켜낸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은상은 이승만 지원 유세와 더불어, 3.15 의거를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로 비하하여 마산 시민들이 자중해야 함을 당부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 지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3.15 민주 성지인 마산에서 이은상 지우기(가고파 축제, 가고파의 고장 등)는 불가피한 문제인 듯하고, 여전히 논쟁 중인 부분이기도 하다.
한 줄 느낌
마산 문학관에서 나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한국 근현대사의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꼈다.
한줄평
작지만 깨끗하게 정리되어 활발하게 숨 쉬고 있는 문학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