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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002. 이원수문학관

by 바이크 타는 집사

<이원수문학관>

- http://www.leewonsu.co.kr/_main/main.html


관람시간: (화~금) 09:00~18:00 / (토) 09:00~17:00
휴관: 매주 일, 월, 1월 1일, 명절 및 공휴일
관람료: 무료
문의전화: 055) 294-7285(해설 요청 가능)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두 번째 문학관, 이원수 문학관이다.


마산에 위치한 이원수 문학관은 '고향의 봄' 도서관 안에 있다. 따로 문학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 안에 따로 장소를 마련해 문학관을 조성하였다.


고향의 봄 도서관과 도서관 1층에 있는 이원수 문학관


도서관의 이름인 '고향의 봄'은 홍난파의 곡 고향의 봄에서 따온 둣 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이 노래의 가사가 바로 이원수의 동시이다.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고향의 봄 도서관'은 도서관 이름에서부터 유추 가능하듯이, 이원수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도서관인 듯하다. 하지만 창원시 홈페이지(https://www.grandculture.net/changwon/dir/GC02201542)에 소개된 '고향의 봄 도서관'의 설립목적에는 "청소년들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지역 주민들의 정보이용과 문화 활동 및 평생 교육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이원수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마 그의 친일 이력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원수 정도면 문학관을 별도로 지어 어린이 문학을 테마로 하여 운영해도 충분할 정도의 비중을 가진 작가임에도 그러지 않고 도서관 내에 문학관을 꾸린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이원수는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살았다. 그가 쓴 동시가 1926년 소파 방정환에 의해 뽑혀 잡지 [어린이]를 통해 등단하였다. 작품은 1925년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1년 태어났으니 우리 나이로 15살에 쓴 작품이다. 이 시를 원래 이일래가 작곡하여 당시 마산(창원군) 지역 일부에서 불리던 노래를 홍난파가 다시 작곡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나무위키에 따르면 이일래버전, 홍난파버전이 있고, 또 일본어 버전도 있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도서관 안에 작은 '실'을 두어 꾸며진 이원수 문학관의 입구는 뭔가 '문학관'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느낌이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꽤 잘 꾸며진 알찬 문학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원수 작가의 동상과 작품들
이원수의 작품 세계와 문학에 관련된 게시물들


아동문학가여서 그런지,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소개 게시물들이 마치 초등학교 게시물 같다는 느낌(내용의 수준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게시 형식이 그렇다는 것이다.)을 받았다. 그래서 게시물들이 더 눈에 잘 들어왔고 잘 읽혔다. 그의 작품세계와 삶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예쁘게 꾸며 놓아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좋았다.


또한 그의 여러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을 수 있도록 잘 전시했다. 이원수의 작품을 최대한 많이 소개하려는 노력이 느껴졌고, 되돌아 나오면서도 그 순수한 언어들이 마음에 잔잔하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도서관 1층에 들어서면 이원수 문학관 들어가는 입구까지 시화로 그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또 다른 문학관들은 전시실과 관계자 사무실이 분리되어 있데 여기는 마치 학교 도서실의 사서 선생님 자리가 입구에 있는 것처럼 문학관 입구 한쪽에 학예사님의 자리가 있었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계셨다. 그러다 보니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친근한 느낌의 문학관이었다.


별도의 독립된 건물을 지어 문학관을 건립한 것이 아닌데도, 한국문학관협회로부터 최우수 문학관으로 선정된 걸 보면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싶다.


그가 사용하던 물품, 수첩 등
어린 시절 많이 불렀던 동요 겨울나무의 가사도 이원수의 작품이었다.


작가 이원수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고향의 봄'이 당시의 동시를 가사로 해서 만든 노래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그가 이원수라는 사람이라는 것과 어린 나이에 이 시를 썼다는 것, 방정환의 추천으로 등단하게 되었다는 것, 게다가 그 사람이 우리 지역 작가라는 것, 그리고 그 작가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는 것까지 나는 하나도 아는 것이 없었다. 어린 시절 많이 불렀던 '겨울나무'의 가사도 그의 작품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찾아보니 정말 많은 작품들을 창작했고, 청소년과 아동 문학에 있어 상당한 업적을 이룬 작가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친일 또한 분명해 보였다. 문학관에서도 친일에 대해 잘 정리해 두고 있었다.


이원수문학관에 정리된 그의 친일 작품과 관련 내용

이원수의 문제의 그 친일행적은 1942년 그가 근무하던 함안금융조합의 기관지인 '반도의 빛'에 친일 작품 5편을 발표하였는데 '지원병을 보내며' 등의 작품이 그것이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 내놓고
전장으로 가시려는 형님들이여
부디부디 큰 공을 세워주시오.
우리도 자라서, 어서 자라서
소원의 군인이 되겠습니다.
굳센 일본 병정이 되겠습니다.
- 이원수, <지원병을 보내며> 중에서


내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친일 작가들 중에서도 학도병을 찬양하거나 징병을 선동하는 글을 쓴 작가는 대체로 거르는 편이다. 작가의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을 청년들에게 징병에 나가도록 선동하는 글은 일명 '선 넘었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원수 문학관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를 걸러야 하는가? 그의 '친일작'을 걸러야 하는가? 그는 분명히 친일작가이다. 하지만 그의 아동문학이 우리 현대 아동문학에 끼친 영향과 업적 또한 상당했다.


문학계에서 친일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던지는 질문이 있다.


거목의 가지가 몇 개가 썩었다고 해서 그 나무를 통째로 베어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든 판단은 각자가 해야할 부분이지만, 개인으로서의 이원수와 작가로서의 이원수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해야 할 것인지는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뿌리까지 깊숙이 썩지 않은 한, 썩은 가지만 잘 잘라내면 거목이 푸르게 자랄 것이다.


잘 몰랐던 작가 이원수, 그의 삶과 작품을 보면서 이 질문이 분명하게 떠올랐다. 내 개인적 기준에서 '선 넘은' 친일을 한 '걸러야 할' 작가이지만, 역시 내 개인적 판단에서도 그의 업적은 안타까우리만치 크다는 것이다. 더 많은 고민과 생각을 깊어진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고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모르게 가만히 먹어봤다오

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 따 먹었다오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먹었다오
- 이원수, <찔레꽃>




이원수의 아내 최순애 역시 아동문학가였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 유명한 동요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의 '오빠 생각'이 이원수의 아내 최순애의 동시였다는 점이다. 작가 최순애에 대해 더 알고 싶었으나,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시간적 여유가 되면, 이원수 문학관에 다시 한번 방문해서 혹시 있을지 모른 작가 '최순애'에 대한 더 많은 정보들을 찾아보고 싶다.




한 줄 느낌

거목의 가지가 몇 개가 썩었다고 해서 그 나무를 통째로 베어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인지...


한줄평

아동문학의 거목인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아기자기하게 잘 정리하여 마음에 남는 문학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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