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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 여기에 지금 씬냉이 꽃이 피고

004. 김달진 문학관

by 바이크 타는 집사

<김달진 문학관>

- http://www.daljin.or.kr/


관람시간: 3월~10월 : 09:00~18:00 / 11월~2월: 09:00~17:..
관람료: 무료
휴관일: 월요일, 설날, 추석
문의전화: 055) 547-2623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네 번째, 김달진문학관.


사실 김달진이라는 시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얼핏 이름을 들어본 것 같기도 한 작가일 뿐,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잘 모르는 작가의 문학관을 방문할 때는 따로 그 작가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지 않으려 한다. 첫 만남이 그의 문학관이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문학관 방문 계획을 세우면서 알게 된 정보인 진해 출신의 시인이며 정신주의 영역을 추구한 작가라는 정도만 알고 방문했다. 사실 '정신주의'라는 용어도 생소했다.


문학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문학관으로 가면 먼저 김달진 생가가 눈에 들어온다.


일제 강점기 많은 지식인들이 그랬듯 김달진 시인도 당시 유복한 집안이었던 것 같다. 집이 꽤 큰 것도 그렇지만 광이 세 칸이나 되는 것만 보아도 잘 사는 집이었을 것이다. 생가가 깨끗하게 잘 조성되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웠다고 하고, 교직에도 있었고, 우리 나이로 스물여덟에 승려가 되었다고 하는데 한학자, 교사, 승려,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기에 그 시에 담긴 성찰과 사유는 깊고 풍부했던 것일까. 그래서 그가 한국 시의 정신주의적 세계를 확고히 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게 아닐까.

문학관 초입의 '김달진 문학상 제정이유서'를 봐도 알 수 있다.


물신주의에 대한 준열한 비판과 극복을 포괄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신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김달진 문학상 제정위원회 위원을 보면 구상, 김윤성, 김종길, 신상철, 정한모, 정한숙 등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들이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어디선가 들어봤을 이름들이다. 이 작가들은 우리 문학에서 상당히 비중 있는 작가들이다. 그래서 문학 교육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작가들이다. 뿐만 아니라, 수능에도 출제될 가능성이 높아 수험생들이 공부해야 하는 작가들이다. 특히 최근 2024학년도 수능에서는 김종길 시인의 '문'이라는 작품 출제되기도 했다.


요즘 말로 '라인업 미쳤다.' 그냥 이름만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김달진 문학상 제정위원'이라는 점만 보아도 그의 문학 세계가 우리 문학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김달진 시인의 생가를 둘어보고 나오면 바로 맞은편에 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문학관은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소박했다. 방문객의 시선을 끌 무언가를 화려하게 꾸미거나 전시하기보다, 그의 일생과 그의 작품 세계를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시 세계와 닮은 꼴로 문학관이 꾸며져 있었다.

시인의 삶과 작품에 초점을 맞춘,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학관이다.

그래서일까?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화려한 부분이 없어 자칫 재미없는 문학관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인의 시 세계와 작품이 충실하게 소개되어 있어 하나하나 차분하게 살펴보면 상당히 유익하고 만족스러운 문학관임을 알 수 있다.


문학관을 둘러보면서 이런 작가를 왜 아직 나는 모르고 있었는지, 우리 문학계와 문학교육에서는 왜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문학관에서 읽었던 한 교수의 글인데, 미처 캡처를 해 두지 못해 다시 돌아와 검색해 자료를 찾았다.(디지털창원문화대전: http://aks.ai/GC02202943)

이 시에 대해 시인이자 고려대 교수인 오탁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필자는 이 작품을 우연한 기회에 읽고 어째서 이렇게 우수한 시인이 문학사에서 거의 매몰되다시피 한 상태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며 우리 문학사의 얄팍한 질에 분노를 느꼈다. 역시 한국의 문인들은 적당히 문단 정치도 하고 거드름도 피워야만 사적(史的)으로 생존하는 것일까. 이 작품은 1938년『동아 일보』에 게재됐던 것으로 그 당시의 우리 시단의 질적 수준이나 또 오늘날 우리가 현대시의 방법은 무엇이냐고 할 때 하나의 모범 답안이 될 만한 언어구조를 가지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오탁번 교수라는 분은 김달진의 문학이 현대시의 모범 답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시는 표현의 아름다움에 담긴 깊은 의미와 그 의미를 품기까지의 깊은 사색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김달진의 삶에 대한 소개보다도 중간중간에 액자로 꾸며진 그의 시를 더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에 그의 시들이 전시되어 있다.


위의 오탁번 교수가 비평한 '이 시'는 바로 [샘물]이라는 작품이다.

숲 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
물속에 하늘이 있고 흰구름이 떠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조그마한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조그마한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地球)의 섬 우에 앉았다.

- 김달진, [샘물]


김달진 시인의 시세계는 명상을 통한 깊은 정신세계와 깨달음을 노래하는 듯하다. 찢어진 벽지 사이 애벌 신문지에 '불(佛)'자를 발견하고 섬광이 스쳤다고 한다. 그리고 1933년 가을, 부모님과 처자식을 버리고 금강산 유정사에 가서 1934년 승려가 되었다.


매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처자식을 버리고 승려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유가 중생의 구제든, 깨달음이든 간에 버려진 처자식(당시 여자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의 삶이 얼마나 혹독했을지 생각해 보면,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처자식을 버리고 종교에 귀의한 이야기를 들으면, 21세기 인류인 나는 항상 불편하다. 어쨌든, 구도의 삶에 들어섰지만 '마음에 평정을 찾을 길 없어 고향에 들렀다가' 다음날 아내의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


고달픈 걸음 몇 걸음 걷고 서도
휘파람 멋쩍어 안 불리네
세모래밭에 쏟은 물발처럼
슬픔에 폭 먹히지 않은 내 마음의 슬픔
찬 바람 검은 주의(周衣) 자락을 날리는데
나는 그의 생일날을 외우지 못하고나!
- 김달진, [낙월]



'김달진 문학관' 바로 앞 김달진 생가와 함께 '예술사진관', '스토리텔링 박물관 소사주막', '김씨공작소' 등 근대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콘셉트의 골목이 이어진다. 그냥 지나쳤고, 방문하지는 않았다. 잠깐의 여유가 생겨 아내와 함께 김달진 문학관에 방문했던 터라, 문학관과 생가를 둘러보는 것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 문학관 주변 둘러볼 곳에 대한 정보는 경남 신문 참조.

https://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253108



김달진문학관 너머로 벚꽃단지가 있다. 다녀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원래 민간인 통제구역이었던 '진해 웅동수원지'를 올해 2025년, 57년 만에 개방했다고 한다. '웅동 벚꽃단지 개방'이라는 플래카드를 보기는 했지만, 57년 만의 개방인지는 몰랐다. 반백년만에 개방된 꽃단지가 어땠을지 생각해 보면 너무 아쉬운 부분이었다.



작가의 유품과 육필원고

문학관의 필수 전시품인 작가의 유품과 친필원고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진중한 문학관이었다.


그리고 김달진 문학상 역대 수상자를 보며, 문학상의 권위를 새삼 알 수 있었다. 송수권, 나희덕, 황동규, 오세영, 김남조, 정현종, 이런 분들은 요즘 학생들이 반드시 배우게 되는 작가들일뿐 아니라, 모두 깊은 성찰과 사색을 바탕으로 삶의 본질과 진리에 다가서는 작가들이며,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김달진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시 세계를 높이 평가하고 좋아한다. 특히 송수권, 나희덕, 황동규, 오세영 시인을 좋아했는데 모순이다. 정작 김달진 시인을 몰랐다는 점에서 이번 문학관 탐방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오래 남은 시가 하나 있다.

사람들 모두
산으로 바다로
신록철 놀이 간다 야단들인데
나는 혼자 뜰 앞을 거닐다가
그늘 밑의 조그만 씬냉이꽃을 보았다.
이 우주
여기에
지금
씬냉이꽃이 피고
나비 날은다.
- 김달진, [씬냉이 꽃]

씬냉이꽃은 씀바귀라고 한다. 지금은 4월. '신록철'이다. 화려한 꽃놀이에 다들 야단 법석이지만, 시적화자는 뜰 앞의 한쪽 구석 그늘진 곳에 숨어 있는 듯 씀바귀 꽃을 보았다. 거기에 우주가 있고, 나비가 날고 새 생명은 아름다운 봄으로 피어난다. 산수유 축제, 매화축제, 벚꽃축제, 철쭉축제. 온갖 축제들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내가 선 발 밑에 피어난 '조그만' 생명에 담긴 우주를 보고,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향유할 줄 아는 마음. 그것이 구도자의 마음이고 시인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57년 만에 개방된 '웅동 벚꽃단지' 바로 진입로까지 가 놓고도를 못 보고 돌아왔지만, 김달진 시인을 알게 되었으니 크게 아쉬워하지 않으려 한다.


이번 문학관 탐방으로 인해 알게 된 김달진 시인, 시인을 알게 되어 내 문학 세계가 더 풍부해지고, 깊어진 느낌이다. 너무 좋았다. 그래서 문학관 소개보다는 시인에 대한 소개에 더 신이 난 것 같다.

내년에 '웅동 벚꽃단지'를 계속 개방한다면, 4월 군항제 맞춰 진해에 간다면 일정에 포함하여 다녀오면 너무도 좋을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한 줄 느낌

- 위대한 시인을 알게 되어 나의 문학 세계가 더 깊어지고 풍부해진 느낌이다.

한 줄 평

- 김달진의 시 세계를 꼭 닮은 문학관.





김달진 문학관 라이딩 영상

https://youtu.be/zJacg8Bq7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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