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박재삼 문학관
- https://www.sacheon.go.kr/life/04063/04064.web
관람시간: 09:00~18:00(입장은 폐관시간 30분 전까지)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 추석 당일
문의전화: 055) 832-4953
#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박재삼 문학관 라이딩 영상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다섯 번째, 박재삼 문학관이다.
박재삼 시인의 고향인 삼천포 노산공원에 박재삼 문학관이 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는 박재삼을 배웠던 기억이 없다. 91년부터 93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배웠는데도 몰랐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대학 가서야 박재삼을 알게 되었고 그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읽고 온 마음이 붉게 불타 올랐다.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봐, 저것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젊은 시절을 지나며 흔들리고 표류하던 삶과 사랑. 그 서러움과 눈물이, 소리 죽은 강으로 흘러 황혼으로 스며드는 황홀한 슬픔이 끈끈하게 마음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박재삼 시인에 대해 여러 자료를 찾아 보았고, 그러면서 그가 삼천포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고향이 삼천포여서, 좁은 삼천포 바닥에 혹시 부모님이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무이, 박재삼 시인 압니꺼?
- 재삼이 오빠? 안다. 유명한 시인이 됐다이가. 삼천포에서 유명하다.
- 재삼이 '오빠'라고예? 잘 아는 사이였습니꺼?
- 그리 잘 알지는 못했고 같은 동네 살았다. 여동생이랑 친해서 서로 집에 오가며 놀았다이가 재삼이 오빠집에도 놀러가고 그랬다.
- 박새삼 시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꺼?
- 그때 뭐 같이 놀고 할 수 있나, 우리는 어려서 소꿉장난하고 할 땐데, 재삼이 오빠는 중학생인가 고등학생인가 그랬을끼다. 공부도 잘하고 말수도 별로 없고 그랬다. 나이 차이가 있응께 특별한 기억이나 뭔 그런거는 없지.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을 어머니는 '오빠'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박재삼 시인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문학관은 상당히 깨끗했고, 문학관이 위치한 노산공원도 잘 조성되어 있었다.
문학관에 방문하면 친필 원고와 편지들을 꼭 보게 된다. 누구누구 형, 누구누구 선생님께로 시작하여 '~ 하셨는지요.' '지난 행사 치르고 몸이 좋지 않아 한동안~' 등등 아날로그 시대에는 문장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완성하고 자신의 마음을 담아 며칠 후에나 받아볼 편지를 소중하게 동봉하여 보내곤 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었는지, 그때의 그 정성된 마음들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찌나 하나 같이 필체가 멋진지, 워낙에 악필인데다, 애들 글씨 같은 필체를 가진 나는 늘 그런 '으른의 필체'가 부럽다.
문학관을 구경하다 보면 사진을 남긴다는 것을 깜빡할 때가 있다. 그래서 미처 찍지 못한 사진은 시인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빌려 왔다.
박재삼 시인은 붓글씨도 즐기셨다. 전시된 액자들을 보면 필체가 정말 좋아 보였다. 그리고 바둑을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바둑 관전기를 신문에 기재하여 생계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문학관은 총 3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전시관과 시낭송체험 부스가 있었고, 시인의 연대기, 작품, 시인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이 있다.
2층은 영상을 볼 수 있는 다목적실, 박재삼 소장도서 열람실, 시 탁본 체험 공간이 있었는데, 박재삼 소장도서 열람실에 있는 책은 차마 손을 댈 수 없어 눈으로만 보고 돌아왔다.
'박재삼 시인께서 소중히 보셨던 책들입니다. 열람실 내에서 읽으시는 것은 가능하나, 함부로 가져가시는 행동은 삼가 주십시오.'
라고 쓰여 있는 알림판을 보았다. 뭔가 만져 보고 확인해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눈으로만 보고 나왔다.
3층은 어린이 도서관과 옥외휴게실이었다. 아이가 있으면 함께 앉아 시간 보내기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박재삼 시인 동상과 함께 앉아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은데, 아내가 좋아하는 시인과 함께 사진을 남겨야 한다며 찍어 주었다. 뭔가 진짜 시인이 옆에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학관의 위치가 좋다. 문학관을 향해 가는 노산 공원의 길이 좋았다. 공원에서 문학관으로 가는 길 곳곳에 시비가 세워져 있어 시를 하나하나 음미하며 걸을 수 있었다.
봄날 삼천포 앞바다는
비단이 깔리기 만장이었거니
오늘토록 필을 대어 출렁여
네게는 눈물로 둔갑해 왔는데,
스무 살 무렵의
그대와 나 사이에는
환한 꽃밭으로 비치어
눈이 아른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안개가 강으로 흘러
앞이 흐리기도 하였다.
오 아름다운 것에 끝내
노래한다는 이 망망함이여.
그 잴 수 없는 거리야말로
그대와 나 사이의 그것만이 아닌
바다의 치수에 분명하고
세상 이치의 치수 그것이었던가.
- 박재삼, <내 고향 바다 치수>
고향의 삼천포 바다는 비단 필을 풀어놓은 듯 고왔고, 그 아름다움이 '나'에게는 또 서러움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 시절의 사랑은 바다에 풀어놓은 필처럼 환한 꽃밭이기도 앞이 흐린 안개이기도 했을 것이다. 결국 사랑은 끝내 망망한 것인데, 그 무한한 거리는 그대와 나뿐만이 아닌 바다의 그 거대한 거리였고, 그것은 이 세상의 이치였다. 너무나도 멀고 한정할 수 없는 무한한 치수였다.
박재삼은 김소월을 잇는 한국 현대시에서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김소월은 외국 문예 사조들로 가득했던 당시 전통적 정서와 운율, 민요적 요소를 담은 현대적 서정시를 구축하여, 전통성 서정시의 명맥을 현대시로 이어나간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김소월은 현대시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작가다.
박재삼 역시 전쟁 이후 전통적 정서를 담은 시를 통해 당시 서정시의 절정으로 평가받으며 김소월의 뒤를 잇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 박재삼은 수능 교재에도 자주 등장하며 많은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수정가>, <추억에서>, <흥부 부부상>, <춘향이 마음> 같은 작품들은 빼 놓을 수 없는 멋진 작품들이다. 검색해 보면 수능 공부를 위한 시 분석까지 상세하게 설명이 된 글들도 많이 보인다.
박재삼 문학관에 다녀와 알게 된 시 '아득하면 되리라'로 방문기를 마칠까 한다.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 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 수는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 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 박재삼, <아득하면 되리라>
한 줄 느낌
어린 시절 가난한 삶 속에서 시를 쓰고 문장을 다듬었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느낌이었다.
한줄평
아름다운 삼천포 바다와 작가의 작품세계가 잘 어우러진 추천하고 싶은 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