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주앉아 일어나지 못하다, '마주'를 음주해보았다.
오늘은 앉은뱅이 술이라 불리는 소곡주를 한 병 가지고 왔다. '마주', 이름부터 서정적인 친구로, 노오란 빛깔이 참 아름다운 작품이다. 모싯잎을 담고 있는 이 술은 과연 어떠한 풍미를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음주해보도록 하자.
마주앉아 일어나지 못하다, 마주
단아하다. 겉모습을 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이다. 얇고 길게 솟아오른 병은 초록색 포장지로 곱게 마감되어 있으며, 병 안으로 비추는 술 역시 노오란 얼굴로 곤히 잠든 상태이다. 전면부에는 '마주'라는 술의 이름과 함께 '모싯잎을 머금은 소곡주, 마주 앉아 마시다'라는 문구가 적혀져 있는데, 이 감성적인 문장으로 보아 술의 이름인 '마주'역시 '마주앉다'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싶다. 전체적으로 유려하단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 아닌가 싶다.
'마주'는 충청남도 서천에 위치한 '옥순가'가 양조장에서 직접 재배한 모싯잎 달인 물로 빚은 소곡주로, 100일 이상의 저온 숙성을 통해 만들어진다.
시원 쌉싸름한 모싯잎의 맛을 은은하게 느낄 수 있으며, 부드럽고 시원한 목넘김으로 누구나 부담없이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술이라고 한다.
작품의 용량은 500ML, 도수는 16도, 가격은 21,000원. 혼자 마셔도 좋고, 둘이 마셔도 나쁘지 않은 양에 일반적인 희석식 소주와 비슷한 알콜 함유량, 애주가가 아니라면 약간 부담스러운 금액을 지녔다. 이정도면 거의 엔트리급 위스키 정도의 수준이 아닐까.
잔에 따른 술은 병 안으로 보이는 것 보다 조금 더 밝은 개나리색을 뽐낸다. 아무런 이물감 없이 깨끗한 표면 아래로 흐르는 노란빛은 꼭 달이 비추는 개울가를 떠올리도록 만든다. 참 보면 볼수록 매혹적인 색깔이다.
이어서 코를 가져다 대니 상큼한 과실향이 잔을 타고 흘러나온다. 설익은 복숭아와 청매실, 청포도, 모시잎, 포도줄기, 누룩, 밀 등이 느껴지며 먼저 산뜻한 과실이 위를 스치고, 그 아래로 모시잎과 누룩이 깔려서 고소하면서도 씁쓸한 내음을 선사한다. 흔히 마시는 초록병 소주와 동일한 도수를 지녔음에도 술이 가진 특유의 향이 좀 더 도드라지는 덕에 알콜의 존재감은 거의 보이지 않으며, 입에 침을 고이게 만드는 과실의 산향이 꽤나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으면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술이 입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복숭아나 자두, 매실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산미가 적당한 단 맛과 함께 혀를 스치고, 뒤이어 이파리를 살짝 씹은듯한 쌉싸름함이 혀 뿌리에 퍼지며 고소함을 진동시킨다. 부드러운 질감에 더해지는 감미로운 씁쓸함이 달짝지근하게 혀를 잡아채며, 향과 마찬가지로 알콜이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연거푸 잔을 들이켜도 부담이 전혀 없다. 술이 목구멍으로 흐르는 동안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전체적인 조화가 훌륭해 뭐 하나 지나친 것이 보이지 않는다.
매끄럽게 이어진 목넘김 이후에는 혀에선 착 붙어 있는 시원한 단맛과 산미, 미미한 떪음과 코에는 이파리 향이 슬며시 채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때 느껴지는 여운의 길이는 4~5초 정도로, 달짝지근한 고소함이 목구멍쪽의 따뜻함과 더해지며 인상적인 마무리를 선물한다. 그 끝맛이 마음에 들어 나도 모르게 잔을 반복하고 있더라.
괜히 앉은뱅이 술이 아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도수가 그리 낮은 편은 아닌데도 정말 자연스럽게, 술술 들어가는 작품이다. 감미와 산미, 씁쓸함과 고소함을 모두 느낄 수 있는데다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채로 조화까지 유지한다. 알콜의 역함이 없어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술이기에 자신이 소곡주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마셔보면 좋겠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회나 소고기, 육전 등을 추천한다. 광어회 한점과 소곡주 한 잔은 당신을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마주', 마주 앉아서 마시다보면 둘 중 하나는 못 일어날 작품이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달짝지근한 다채로움이 끊지를 못하게 만든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10% 정도 차이난다. 잘 살펴보고 구매하도록 하자.
모싯잎을 머금은 '마주'의 주간평가는 4.1/5.0 이다. 앉은뱅이가 되어보자.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