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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 하나가 고스란히 스며오다

- 유자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 '남해 유자막걸리'를 음주해보았다.

by 주간일기 Mar 10. 2025

오늘은 유자를 이용한 술을 한 병 가지고 왔다. 우리가 실생활에서는 그렇게 자주 접하는 재료가 아니지만, 비교적 다른 원료에 비해 '유자'는 여러 술을 빚을 때 사용되는데, 탁주를 고르던 중 우연히 내 눈에 걸리게 되어 오랜만에 이렇게 소개하게 되었다. '남해 유자막걸리', 남해의 재료들을 이용하여 만든 이 막걸리는 과연 어떠한 향미를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음주해보도록 하자.

유자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 남해 유자막걸리
브런치 글 이미지 1

일단 외관은 이 용량대에서 종종 보이는 병의 형태를 하고 있다. 비교적 병목이 짧고 둥근 몸체가 긴 모습으로, '유자'라는 재료가 들어간 술 답게 뚜껑 역시 노란색으로 둘러쌓였다. 다만 마개의 윗부분을 확인하면 '무아스파탐, 유자막걸리'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데, 표현하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이런 방식과 글자체는 옛 지역막걸리를 떠올리게 하여 나이가 든 느낌을 가져다 주지 않나 싶다. 전면부의 라벨엔 '남해 유자막걸리'라는 명칭과 함께 노오란 유자가 하나 그려져 있고, 배경 역시 유자의 여러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조금 어수선한 디자인이다.


'남해 유자막걸리'는 남해군의 '다랭이팜'에서 건강하고 맛도 좋은 우리 술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막걸리로, 남해쌀과 유자, 누룩, 그리고 단맛을 보완하고자 넣은 당액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합성감미료도 들어가지 않았다.


유기농 인증 받은 쌀과 앉은뱅이 밀누룩, 지하 150ml 암반수 등 원료 하나하나를 신경써서 빚어낸 작품이며, 단맛과 신맛이 적고 뒷맛이 깨끗해 어떠한 음식에도 잘 어울린다고 한다.


작품의 용량은 750ML, 도수는 6도, 가격은 4,700원. 혼자 마셔도 좋고, 둘이 마셔도 나쁘지 않은 양에 일반적인 막걸리와 비슷한 알콜 함유량, 최근 출시되는 전통주와 비교 하면 조금 저렴한 값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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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에 따른 술은 노르스름한 빛깔을 자랑한다. 꼭 우유에 유자를 퐁당 담궈놓은 것 같은 자태이며, 표면으로 떠오르는 입자감이 거의 보이지 않아 상당히 깔끔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탁도에 말캉거리듯 흔들리는 술방울이 매력적이다.


코를 가져다 대니 시원한 유자향이 강하게 다가온다. 유자 중에서도 생유자, 유자의 과육과 껍질, 과실의 산향, 엿당의 단내와 누룩, 레몬껍질 등이 느껴지며, 거슬리는 느낌 전혀 없이 유자라는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사실 탁주의 냄새를 맡아보면 과실의 향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훨씬 많은데, 코에 닿는 순간 상큼쌉싸름한 유자의 냄새가 밀려오는게 꼭 유자밭에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새콤달콤한 술이 혀를 감싸 안는다. 유자와 누룩, 엿당, 요구르트, 오렌지 과육 약간 등 유자의 존재감을 확실히 뽐냈던 향과는 달리 한 껏 조화에 신경을 쓴 모습이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새콤한 유자가 요구르트 같은 느낌의 맛을 뽐내며 입 안을 채워가고, 그 아래로 살짝씩 쌀과 누룩의 맛이 느껴지며 막걸리의 맛매를 더해준다. 당연하게도 알콜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코에는 약한 고소함까지 맴돌기에 맛에 있어서도 상당한 만족스러움을 가져다 주는 듯 하다. 감미와 산미 그리고 맛이 끝나갈수록 느껴지는 쌉싸름함까지, 유자를 포함한 각 맛들의 어우러짐이 가격에 비해 확실히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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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 없이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간 후에는 유자의 산미와, 껍질의 쌉싸름함, 거기에 과실과 요구르트가 반쯤 섞인 향을 코에 남겨놓고 사라진다. 여운의 길이는 3~4초 정도로, 마지막에 코에서 살짝 톡 건드리는 구수함 역시 마무리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잔을 계속해서 반복하게 만드는 달큰한 산미의 감칠맛이 참 좋다.


유자를 탁주에 굉장히 잘 녹여낸 작품이다. 유자라는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맛에 있어서는 온전한 어울림을 선보이며 각 재료들이 지나침 없이 흐르도록 빚어냈다. 사실 어느정도 옛 느낌을 가져다 주는 외관 때문에 대단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코와 혀를 대자마자 고개를 절로 끄덕거리게 만들더라. 유자밭 사이의 정자에 걸터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막걸리를 들이키는 기분이다.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도토리 묵, 참나물 전, 오징어숙회무침 등을 추천한다. 도토리 묵 한 점과 '남해 유자막걸리' 한 잔은 향긋한 시간을 당신에게 선사할 것이다.


'남해 유자막걸리', 남해 유자가 이렇게 맛있는지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유자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마셔보길 바란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상이하다. 최대 1000원 정도, 잘 살펴보고 구매하도록 하자.


남해에서 태어난 '유자막걸리'의 주간 평가는 4.1/5.0 이다. 유자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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