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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y 12. 2023

영원한 그 이름은...

“Do warms go to Heaven?” (할아버지, 벌레도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나요?), “Could we float away in this house, Grandpa?”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우리 집이 둥둥 떠다닐 수도 있어요?), “When I’ve finished this lolly can we get some more? I need the sticks to make things.” (이 막대사탕 다 먹으면 더 먹어도 돼요? 막대로 만들고 싶은 게 있거든요), “Were you once a baby as well, Grandpa?” (할아버지도 아기였던 적이 있어요?)


동글동글한 꼬마 아가씨가 할아버지에게 던져 대는 이 사랑스러운 질문이 너무 귀여워서 큰 소리로 몇 번이고 읽었던 걸 기억한다. 꼬마 아가씨와 마주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또 어떤가?  


봄에는 함께 씨앗을 뿌리며,

백의의 천사가 된 꼬마 아가씨 앞에선 인형을 데리고 병원을 찾는 보호자의 모습으로,

여름이 되면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꼬마 옆에 앉아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는 꼬마 아가씨 옆에선 줄넘기를 하며,

단풍 든 호숫가에선 낚싯대를 드리운 뱃사공의 모습으로,

썰매 타는 빙판에선 꼬마의 손을 잡고 함께 스르르 미끄러지며,


할아버지는 매 페이지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등장하셨고, 꼬마 아가씨가 선택한 놀이를 본인이 더 재미있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나 옆을 지켜주고 같이 놀아주는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 아가씨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재미있었을지….


호기심, 재미처럼 청년스러운 단어를 떠올리게 하다가도 ‘할아버지’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딱 어울리기도 했던 이 할아버지의 모습 또한 귀여운 꼬마 아가씨 못지않게 내 시선을 끌었던 그림책이다. 아들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던 옛적에? 대체 몇 번이나 읽었던 책이었는지, 대체 같은 책을 몇 권이나 샀던 건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추억의 그림책 Grandpa (Burningham, 1984).


할아버지와 고래잡이? 도 하고 아프리카에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어제 함께 놀러 나가지 못했던 할아버지가,

오늘은 의자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나셨다.

우리 꼬마… 혼자 쪼그리고 앉아 텅 빈 의자를 보고 있을 뿐 울거나 하지 않는다. 쓸쓸한 장면이지만, 담백하게 그려낸 모습에 이마저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시각에 딱 맞게 이보다 더 담백하게 죽음을 설명한 경우가 있었는지....

 

머릿속 어디에 저장이 돼 있는 것인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장면이 있다.


한 겨울에 급작스레 이사를 결정했는데… 엄청 추웠는데… 회사를 조퇴하고 오니 이삿짐이 들고 나고… 춥고, 어수선하고, 번잡스럽고… 그 이사의 명목상 책임 주체는 분명 나였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대체 일은 얼마 큼이나 진척이 된 건지 알 수도 없었고, 그저 다른 누군가??? 의 일처럼 여겨졌다. 그 와중에도 이제 막 돌을 넘은 아들 녀석의 안부만이 걱정이었을 뿐이고… 집안 곳곳을 저벅저벅 돌아다니는데, 저 앞에 아버지가… 아버지의 등에는 장터 바닥 같이 소란한 바깥세상과는 무관한 편안한 모습으로 잠을 자는 아들놈이 있었다. 좁은 할아버지의 등 하나면 만사 오케이라고 말이라도 하듯 고개를 박고 침까지 흘리며 자고 있던 아들놈, 그놈이 추울까 담요까지 등에 싸매고 계시던 아버지…


“아버지, 나 돈이 없어 공부 잠시 멈춰야 할 것 같은데… 일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 녀석 때문에…” 내 한마디에 아버지는 바로, “아버지가 키워줄게”,라고 하셨고, 아들놈은 밤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불러주는 늘어지는 가락의 자장가를 들으며, 낮엔 할아버지 손을 잡고 얼굴이 까맣게 타도록 온 동네를 쏘다니며 그렇게 자랐다.


난 아버지와 내 아들놈이 함께 무엇을 공유했는지 세세한 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멀리 있는 아빠와 바쁘다고 놀아주지 않는 엄마대신 할아버지는 늘 아들놈의 장난감이 돼 주고, 침대도 됐다가, 지쳐 떨어진 아들놈이 잠에 빠지는 순간까지 좋은 목청으로 녀석에게 동화책도 읽어 주고, 노래도 불러 주었다. 어떤 날은 유치한 작은 물건 때문에 싸우는 앙숙같이 보이기도 했다가, 곧 세상 둘도 없는 절친 같이 보이기도 했던 그 둘이 만들어냈던 케미가 우리 집, 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누구는 이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너무 슬픈 이야기라고 했고, 또 누구는 어린아이의 스냅숏 같은 기억의 나열만 있을 뿐 무슨 얘기가 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내겐 장장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얘기였다. 매 계절을 가득 채우는 깜찍한 놀이가 있었고, 즐거운 상상만 조금 곁들이면 바로 내 방이, 우리 집 뜰이 훌륭한 놀이터로 변하는 신나는 딴 세상이 있었다. 그 안에 할아버지와 꼬마 아가씨가 있었고, 둘이 만들어 내는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케미가 있어 더더 좋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일매일을 함께 논 놀이의 파트너였고, 꼬마에게 가장 큰 울타리고 하늘이었는데, 그제까지 함께 논 할아버지가 어제는 함께 놀지 못했고, 오늘은 빈자리를 남기고 떠난 얘기가 있어 특히나 더 좋았다. 안타까웠지만 크게 슬프지 않았다. 아이가 소중한 친구의 죽음을 물처럼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아이는 죽음이 할아버지가 앉던 의자가 빈 의자가 된다는 것이고, 그래서 더 이상은 할아버지랑 밤늦도록 놀 수 없다는 정도로 받아들였을 거다.


맞다. 그게 죽음일 것이다.


다음 페이지에서 꼬마는 다시 들판을 뛰어논다. 이번에는 동생인 듯 보이는 아가의 유모차를 밀고 있다. 한 편의 시다. 가고, 오고… 나는 새로 온 이들과 또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그러면서 나도 서서히 저쪽 저쪽으로 한발 짝씩 옮겨가고…


아이들에게 너무 슬픈 얘기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 내시는 어른 독자들에게 아이와 함께 이 그림책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 금방 관찰할 거다. 애들은 매우 담백하게 군더더기 하나 붙이지 않고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받아들인다는 걸 말이다.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아, 할아버지가 없구나!, 떠나셨구나!, 를 자연스럽게 배운다는 걸 말이다.


우리 집은 지금 마지막장에 와 있다. 아들놈을 업고 안고 동네를 끌고 다니시던 아버지는 그 끔찍하게 여기던 아들놈을 알아보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떠나셨다. 아들놈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던 할아버지를 그저 말간 눈으로 바라보다, 한 장이 넘어가며 할아버지의 의자가 비었음을 확인하게 됐다. 그러면서 또 마지막 장이 넘어갈 거다. 그 또한 넘어가야 하는 한 장이니 당연히 넘어갈 것이고 또 괜찮을 거다. 내 그림책의 마지막 장도 넘길 때가 올 텐데, 그땐 아버지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처럼 또 그렇게 넘기면 될 일이다. 담백하게 말이다.


한 편의 담백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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