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겁도 없이 북클럽에 가입했다. 책이야 이것저것 많이? 읽지만(진짜?) 타인과 호흡을 맞추며 읽은 내용에 관해 생각도 공유하고 가끔 갑론을박도 하며 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하나 더해,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내용과 함께 느낌도 휘발되어 버리는 내 읽기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오래된 스트레스도 작용했다. 그저 스케줄을 맞출 수 있겠다는 단순한 이유로 등록한 그룹이 오르한 파묵 전작 읽기 클럽.
으.... 시작과 함께 후회가 큰 파도처럼 몰려왔다. 어쨌든, 과제는 목숨 지키듯? 끝내는 내 소심함 때문에 하루하루 헐떡이며 북클럽 스케줄을 따라다녔다. 초딩이 숙제하듯이... 마지막 책이, 바로 『먼 산의 기억』(2022). 작가의 일기와 그림이 마구 섞여 있는 책이다. 2006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지만, 어렸을 땐 화가가 되고 싶었다던 그답게 매 페이지에 단순하고 어린이 그림? 같은 그러나 때때로 읽기(read)가 꽤 어려운 그림이 소개됐다. 미스터리하고 어두운 그의 글을 읽으면 그림에 많은 색을 쓰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그는 그림에 파스텔톤의 밝은 색까지도 자유롭게 썼더라.
그의 다분히 사적인 기록 (일기 같은)을 읽으며 역시 글쓰기는 중노동이란 걸 다시금 깨달았다. 소설을 쓸 땐 하루 꼬박 12시간 글을 썼다고 한다. 물론 늘 혼자였고. 하루끼도 새벽부터 시작해 잠시 달리는 시간을 빼고 매일 8시간 이상씩 쓴다고 했던가? 역시나... 약간의 재능을 기반으로 나머지는 그저 꾸준함과 성실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거. 모든 다른 일처럼 글쓰기 또한 그 징글징글한 엉덩이 싸움과 버티기가 아주 중요한 요소인가 보다.
작가도 잠깐 고민했던 듯하지만, 처음엔 소설가가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글까지 출판해서 돈을 벌어야 하나 싶었다. 특히 유명한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이 출간한 메모까지 책에 담는 걸 보면서 ‘이름 팔이’를 너무 한다 싶었는데, 이 책 정도면 뭐... 그런 생각 별로 들지 않는다. 일단 그림과 색이, 그가 사는 이스탄불이, 우리의 자연과 참 달라 이국적으로 보이고... 그림도 좋다. 중간중간 소설 속 인물에 대한 평이나,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한 코멘트를 (너무 늘어져서 긴장감이 떨어진다 같은) 하는 것을 보면 소설을 쓰면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외로움에 진절머리가 났다. 소설을 쓰면서 혼자 있으면 행복하다.” (17)
“이른 아침 고요 속에 이 풍경을 바라보면 다른 모든 것, 박물관 작업, 지치고 과로해서 기절할 것 같은 느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은 잊히고 모든 것을 미소 지으며 맞이할 수 있고, 사실 세계가, 이스탄불이, 삶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28)
그의 여러 작품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른 질문은 ‘작가와 시대정신’ 같은 묻고 싶지도 않고, 누구도 시원하게 답할 수 없을 것 같은 그것. 작가는 오스만 제국이 저질렀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언급하고 글을 썼단 이유로 살인 위협을 받고, 반역죄로 기소당하고 재판을 받기도 했다. 물론 노벨상의 권위가 그를 살린 듯 하지만, 그는 오랜 시간 뉴욕과 여러 곳을 떠돌며 살아야 했다. 물론 십여 년을 떠돌다 지금은 이스탄불로 돌아와 사는 듯하지만, 그의 뒤에는 늘 경호원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 휴....
어떤 이들은 말한다.... 노벨상은 시대정신이 가미되지 않은 작가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그가 작품에서 자주 화두로 삼고 있는 동. 서양의 충돌, 민족정체성, 독재, 권력 집중형 권위주의 국가 등의 이슈는 한 작가가 과연 얼마나, 혹은 어떤 방법으로 시대정신을 표현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근. 현대사와 현시점 우리나라가 경험하고 있는 이슈들 때문인지, 나는 그의 글을 읽는 반년 동안 끊임없이 파묵이 마주했던 일들에 쉽게 감정 이입했고, 같은 질문을 반복했던 것 같다.
“[...] 악의적인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일부 단어를 수정하고 설명했다. <눈>에 관한 정치적인 인터뷰가 되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 모든 두려움, 우려는 튀르키예에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절대적인 증거다. 십 년 동안 나는 이러한 두려움, 캠페인, 비난, 굴욕을 안고 살아왔다. 이는 무언가를 말하고 비판하고 싶은 욕망이며, 곤경에 휘말릴까 두려워하는, 자유가 없는 제3세계 국가의 상황이기도 하다---.” (54)
“사나흘 전 자이프르에서 "제 책은 쉰여덟 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튀르키예에서 첫 책을 출판하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발언이 "그는 자신의 책을 튀르키예에서 출판할 수 없다고 말하며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불평했다."로 바뀌었다.” (150)
“이슬람 세계에 민주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은 멋지다: 하지만 서구화된 세속주의 독재 정권이 이슬람 독재 정권으로 바뀌는 것은 두렵다----. 민중의 의로운 반란이 또 다른 독재로 이어질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두고 볼 일이다.” (151)
그는 고전과 작가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솔직히 표현했다.
이런 언급은 독서 욕구에 불을 확 질렀다고나 할까...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몇 번씩 읽고 내 것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원작이 너무 좋아서 그 번역본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새로이 번역을 하다니 놀랍다.” (77)
“나는 글을 쓸 때 가끔 책상에서 일어나 칼비노 (『새천년을 위한 여섯 가지 메모』); 보르헤스 (『선집』 과 엘리엇『엄선된 산문』)을 몇 구절 읽는다.” (137)
“나는 우리가 고전을 그 유용성 때문이 아니라 시를 위해, 우리가 오래된 것들의 연속이라는 느낌을 위해 읽는다고 생각한다.” (152)
솔직한 일기 같은 글이니, 소설에 대한 집착, 집중하지 못했을 때 갖는 일종의 죄책감? 같은 사적인 감정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그는 감정이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고, 수시로 바뀌는 사람 같다. 그만큼 감정이 풍부하다? 는 의미? 그의 글은 다소 건조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사실 굉장히 다양한 감정을 왔다 갔다 하며 곡예를 하는 사람인가 보다. 행복해하고, 무너지고, 절망하는 인간.
당신과 나처럼...
“나는 내 기분만큼이나 많은 성격을 지녔다. 새로운 기분이 들 때마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 새로운 사람이 되면 예전 생각들을 알 수가 없고 그것들에 놀라워한다--- 내 생각의 초점이 요즘 너무 많이 바뀐다. 그러니까 나는 항상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89)
“나는 쉬지 않고 일한다. 이상하다. 마치 뭔가 증명해야 할 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내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소설을 좋아하고, 그것을 써야 한다. 사람들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107)
“글을 못 쓰면 내가 나쁜 사람처럼 느껴진다.” (195)
“아침.. 새로운 장을 시작하기 전의 두려움: 이 소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잘될까? 두려워하지 마, 오르한.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245)
ㅋㅋ 마지막 그림이 참... 안대를 끼고 소파에 누워 쪽잠을 자는 모습.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마 그는 오랜 시간 저런 잠을 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그가 창조해 낸 수많은 인물과 세계에 존경을 표하면서...
아... 한 학기 동안 읽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틀어 놓은 TV 소리가 그의 꿈속 먼 산, 절벽, 섬과 등장인물들 사이에서도 들린다니... 그는 계속 먼 산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좀 아늑한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을 청하시길 바란다.
그런데, ‘먼 산의 기억’이란 무슨 의미일까? 그에게 ‘먼 산’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