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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읽기

『달과 6펜스』

by 새벽

(서머싯 모음, 민음사)


어렸을 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것 같다. 물론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화가 <고갱>이 모델인 소설 정도로 기억한다.


언젠간 반드시 읽으리란 굳은 마음으로 사 모으기 시작한 <민음사>의 세계 문학 전집 38번인 이 작품을 드디어 읽었다.


음... 이런 얘기였구나.


작가는 오랫동안 이 화가를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고 한다. 왜 특별히 고갱이었을까? 몇 가지 가능한 이유가 떠오른다. 증권 브로커로 평범하게 살다가 갑자기 화가가 된 사람이니, 그의 삶을 한 겹만 들추어내도 서사가 차고 넘치리란 생각이 쉽게 들지 않았을까. 물론 화폭에 담긴 화가의 강렬한 색채나 원시성을 간직한 듯한 여성들의 모습에 매료됐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작가가 소설 첫 장에서 언급한 ‘인간의 신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보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의 생애에서 놀랍거나 신기한 사건들을 찾아내 전설을 만들고 광적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이' 주인공을 불멸의 세계로 들여보내는 가장 확실한 입장권'이라고 했으니, 작가는 어쩌면 화가 인생의 다소 기이한 장면을 전설로 만들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를 일이다.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이 주변에 있다면 아마 혐오스럽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 홀연히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 무책임하고 몰인정한 남자. 어느 누구의 삶에도 관여하려 들지 않고, 그리고자 하는 욕구에만 매달려 평생을 바친 남자이고, 어쩌다 그의 삶에 휘말리는 사람들은 비극적인 말로를 겪게 됐으니 말이다.


파리를 전전하며 그림을 그리던 그는 타히티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병으로 시력을 잃어도 자신이 살던 움막 벽에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며 일생일대의 작품을 남겼지만, 그조차 자신이 죽으며 바로 태워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그는 기이한 사람이었다.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가치를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의 그림 한 점쯤 소장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사는 동안의 가난과 고통’, 그리고 ‘사후의 명예’는 다른 위대한 예술가들처럼 찰스 스트릭랜드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였다.

‘달 the moon’만 바라보며 살았던 찰스 스트릭랜드는 ‘6펜스’의 일상적인 삶에는 거의 마음을 두지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그도 먹고, 몸을 움직이며 살아야 하는 인간이었으니 6펜스의 구차한 삶을 버티며 계속 ‘달’로 나아가는 것은 매번 무겁고 버거운 일이었으리라.


끝까지 ‘달’을 포기하지 않은 이 지독한 화가에게...

그리고 그가 남긴 강렬한 그림들에... 깊이 고개를 숙인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아니 나이가 사십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 더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요.” (73)


“당신 나이에 시작해서 잘 될 것 같습니까? 그림은 다들 열여덟 무렵에 시작하지 않습니까?”

“열여덟 살 때보다는 더 빨리 배울 수 있소.”

“나는 그려야 해요.”

“승산 없는 도박을 하지는 것입니까?” (74)


“다른 분야에서는 뛰어나지 않아도 별로 문제 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75)


“창세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

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포스러운 어떤 것, 그를 두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의 심연을 파헤치고 들어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비밀을 보고 만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신성한 것을 알아 버린 이의 작품이었다.”(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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