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거나 길거나
'탓 1'
박재하
남을 탓한 적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탓으로 돌리며 살아간다
그 탓이란 굴레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며
왜 존재해야 하는지
삶의 이유를 찾아보려 한다
쉽지 않다 아니 오히려
궁금증의 Q마크만 맴돈다
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 ]
'탓 2'
박재하
남에게 돌리지 말라고
마치 진리처럼 말하면서
이상한 변명의 틀에 갇혀있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남의 탓 굴레 속에선
빠져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탓 울타리의
또 다른 굴레를 하나 더 만들고
멘털의 늪에 빠져버린다
변명, 회피, 도피를 하려고
자유를 외치며 나오려 한다.
'탓 3'
박재하
할 말을 찾지 못해서 동그라미 그리듯
말과 동무가 되어 빙빙 술래잡기
하는 걸까?
수줍어서 피하는 걸까?
미안해서 도망치는 걸까?
아니면 더 뽐내고 싶어서일까?
그래도 그래도 이 한마디 하자
미안해 다음엔 더 잘할게
이 말 한마디가 네 탓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것을
네 탓이 아닌 내 탓의 울타리에서
모두가 미소 짓는 얼굴로 마주 대하는
세상에서 살아갈 테니까 보듬으며.
'탓 4'
박재하
사진 한 장으로 인연이 되고
철부지 소녀가 아버지 손에 이끌리어
소년인 듯 청년인 듯 보이는
낯선 남자와 얼굴도 보는 둥 마는둥한
시간이 흘러 어느새 하얀 백발의
노부부가 되어 두 손 꼭 잡고
한적한 골목길을 걷고 있는 것은
할배도 할망구도 서로 네 탓이 아닌
내 탓으로 여기며 살아온 이유겠지요
그러면서
늘 뭐 더 줄게 없나 하는 마음으로
살아오신 탓이겠지요
영감, 할망구 불러가며.. ,
'탓 5'
박재하
살짝 내리깐 눈에
입은 굳게 다물다
조심스레 내뱉은 말 "미안합니다"
다섯 음절로 된 한마디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후회와 함께 온 참회 그러면서
왜 그랬을까? 하는 흔들린 눈동자
흔들리는 눈빛에선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 얼굴의 표정에선
용서를 부탁합니다의 신호와 함께
다 제 잘못입니다, 다 제 탓입니다
라고 말한다..
'탓 6'
박재하
낙엽은 제 색깔이 바뀌어
땅에 떨어져 구르거나
사람들의 발에 밟히어도
자기 몸 어디엔가 숨기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을
자신의 모습 상상한다
왜? 내가 변해야 하는지,
왜? 내가 떨어져야 하는지,
한마디 변명하지 않은 채
이것이 내 삶의 흐름인 양 그렇게
받아들인다
아무런 이유 캐묻지 않으며.. ,
'탓 7'
박재하
여름은 간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가을이 좀 일찍 왔다고
투덜대지도 않는다
초록잎이 어느새 갈색잎이 되어도
바뀌어진 자신의 나무는
여전히 그렇게 서서 있으면서
갈아입을 옷을 준비한다 묵묵히
사람도 이런 사람이길
가는 여름, 가는 계절
묵묵히 서있는 나무처럼..!!
'탓 8'
박재하
분명 감사한 일인데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것
어쩌면 감사해야 하는데
우울한 표정으로 힘들어하는 것
고마워해야 하는데
당연한 듯 미소를 띠는 것
미안해하며 고백해야 하는데
없었던 듯 굳게 닫힌 입술의 침묵
용서해 달라는 한마디가 싫어서
마음의 문을 닫아놓고
자물쇠를 채워놓은 삶의 일상
우리는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혹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