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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Dec 02. 2023

매우 매우 희망찬 이야기

 우리는 커서 무엇을 남기리라 생각했을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예찬하는 요즘 시대인데, 하나 정도는 잊혀도 괜찮겠지 하는 삶은 없어 짐짓 예측한다. 그러면서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울감이 드는 이유는 잊히지 말자는 희망찬 카테고리 속에 파묻혀 잊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 차에 치인 고양이. 내 눈썰미가 맞다면 아스팔트 위에 살포시 죽어있는 길고양이는 어제까지 만하더라도 내 바지가랑에 털을 묻히는 존재였다. 결코 통제되지 않는 근육의 움직임은 단 1초도 내 손바닥 안을 허락지 않는 도도한 체온으로 기억된다. 이제 이 고양이는 신체 어딘가가 터져 피를 흩뿌린 채 모두가 피해 가는 명제가 된다.


 이틀 째, 청소부의 성실함이 닫지 않는 그곳은 고양이의 털을 하루 만에 벗겨내고 거무튀튀한 살가죽과 부위를 알 수 없는 내장들을 당돌하게 까뒤집어서 피할 반경을 넓힌다. 삼 일째, 덤덤하게 사라진 시체는 길 위에 혈흔만 남긴다. 며칠 지나면 '여기에 고양이 죽었었는데..'라는 짤막한 추도사만이 남는다. 고양이의 삶은 그렇게 분분히 사라진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이야기.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들은 여유로운 날의 시선 안에서 앙상한 철근들이 희망차게 다시 박혀있는 모습으로 발견된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오려나보다 딱 그 정도의 인지. 그곳을 지날 때면 요란하게 들리는 드릴 소리와 뚱땅거리는 망치소리가 '원래 이곳은 이런 곳이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조금만 살다 보면 어느새 번뜩번뜩한 새 벽돌로 쌓인 건물이 우뚝 쏟아 다음 주 오픈이라는 깜짝 뉴스를 전한다.


 삶의 주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었는지. 나는 두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에게 종종 묻는다. 내 삶이 차에 치여 며칠 밤 사이 홀연히 사라진 길고양이처럼 남지 않기 바라는 마음으로, 새 건물에 파묻힌 이전 건물들의 잔해가 되지 않기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여 그런저런 삶이 되기에는 지금까지 겪은 감정의 곡선들이 너무나 아쉬운 마음으로.


 아, 물론 누군가는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가령 나를 사랑했었던 혹은 사랑해 주는 사람들,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내가 사랑한 사람들 중 일부겠지. 그러나 길고양이의 대한 추도사 정도로 남는다면, 그래 그 정도라면 내일 아침 다시 부활을 꿈꾸는 입장에서 우울감이 먼저 시작되는 이유 중 하나 일테지. '노래에 온길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희망을 노래하는 가사 속에는 띄어쓰기가 너무 많다. 그 사이에 나 같은 존재들이 파묻혀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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