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창밖에선 불꽃놀이가 터진다. 이곳의 공휴일인 디파발리(인도의 축제 기간)를 기념하는 불꽃놀이다.
오늘 낮에 마신 아메리카노 속의 카페인이 아직 혈관 속을 흐르는 듯하다. 바깥에서 터지는 폭죽처럼 카페인이 뇌 이곳저곳의 뉴런에서 폭발하듯 각성상태를 유지시키려 한다. 그렇지만 평소와 같은 불안은 느껴지지 않는다.
우울은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해 왔다.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전 애인마냥 어느새 눈을 떠 보면 내 옆에 누워 있었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금에도 나를 아주 떠나가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오늘이 날인가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는 우울이 느껴진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여러 날이 되어가는 요즘, 이 시기를 견디면 우울과 나의 사이가 전과 같지 않게 될 것임을 느낀다. 오늘은 우울의 송별회 날이다.
우울은 아주 옛날 나에게 찾아왔다. 유전의 영향도,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우울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13살 무렵이었던가? 삶의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은 나와 우울이다. 지긋지긋했던 우울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허전한 기분이 든다. 이상하게 느껴지는가?
우울증은 내 삶의 큰 부분이었으며, 반드시 부정적인 부분만 차지하지 않았다. 우울 덕분에 나는 실존주의자가 되었고, 차분하고 논리 정연한 생각과 의사결정을 해왔다. 슬픔의 가치를 깨달았고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다양한 이름을 붙여나갔다. 공허는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또래보다 성숙하다는 평가를 평생 동안 받아온 것에 우울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울하지 않기 위해 명상과 요가를 시작했고, 스스로를 바쁘게 하기 위해 삶에 다양한 것을 들였다.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법을 배웠고, 책을 읽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공부해서 스스로를 이해하고자 해 보았다.
사춘기가 지나고 청년기가 시작된 지금, 내 몸과 자아가 안정되었다고 판단하여 항우울제 투약을 시작했다. 시험 기간임을 고려해 처음임에도 결코 약하지 않은 약이다. 나의 오랜 친구와 같은 우울에게 작별을 고한다. 앞으로 살면서 평생 약을 통해 호르몬을 조절하겠지만, 그럼에도 한 번씩은 나를 찾아 주길. 그럼 나는 나의 십 대를 기억하며 추억할 수 있을 테니.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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