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다.
배추를 뽑아 네 쪽 내서 소금에 절였다.
농막에서 커피를 마시며 옆 밭 남자가 말했다. 김장은 자고로 아들 며느리 데리고 가족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해야 제 맛이라고.
나는 쿠키를 커피에 찍으며 “시끌벅적 즐거운 것만 생각하지 그러기 위해 뒤에서 고생하는 며느리 생각은 안 하시나 봐요.” 말했다.
다 절여진 배추를 씻고 있는데 옆 밭 아낙이 들어왔다. 바구니에 담긴 노란 속 배추를 뜯어 맛을 보더니 배추가 고소하다고, 잘 절여졌다고 말했다.
저 건너 성희씨네는 지난주에 김장을 했는데 작년에 와서 같이했던 ‘두 며느님’이 힘들다고 올해는 하지 말자고 해서 ‘두 며느님’은 안 부르고 이웃들끼리만 했다고 그녀가 전했다.
그녀도 가서 도와주고 김치 한 통 얻어왔단다.
그녀가 하고 있고 성희씨도 한 것 같은 ‘두 며느님’ 호칭에 며느리에 대한 하대 감정이 배어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혼자 사는 성희 씨가 김장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혼자되신 성희 씨의 큰 아버지 불쌍해서 좀 줘야 하고, 막내 언니도 줘야 하고 누구도 줘야 하고.. 그래서 올해도 작년처럼 밭에서 뽑은 배추 250 포기를 다 했다고.
나는 배추를 계속 씻으며 말했다. “시어머니가 개인적으로 주고 싶은 사람 주려고 하는 김장에 며느리들 불러대면 안 되지요. 올해 그 집 며느리들 안 오길 잘했네요.”
작년 성희씨네 김장 날 나도 그 자리에 갔었다.
오후에 옆 밭 아낙을 따라갔을 때 김장을 마치고 그 집의 두 아들은 고기를 숯불에 굽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왁작왁작 고기와 큰 솥에 끓인 국과 밥을 모두 서서 먹고 있었다. 아낙들의 수다와 웃음소리로 눈 내리는 벌판이 들썩거렸다.
고기 몇 점을 집어 먹는 나의 마음에 이 고생을 원치 않았을, 겨울 수채화 풍광 속에서 아낙들의 수다와 웃음소리에 끼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두 며느리의 노고가 들어왔었다.
집안엔 소문도 안 냈는데 우리 김장하는 줄 어찌 알았는지 시동생이 전화를 했다.
“김장 허요? 메누리허구 같이 허요? 김장 날 메누리허구 수육도 같이 해서 먹으믄 재밌지라.”
“김장이야 형이랑 둘이서 서나서나 하면 되지요. 하다가 힘들면 한 숨 자고 일어나 또 하면 되고.”
다 씻은 배추 바구니를 울타리 아래로 옮겼다.
저 건너 김 사장이 지나가다가 울타리 너머로 말을 건넨다. “김장하십니꺼, 며느님은 안 왔능교.”
나는 “직장생활로 힘든 며느리 휴일엔 쉬어야지요. 며느리 알면 불편할까 봐 알리지 않고 몰래 하고 있어요.”
주방 칼로 배추 머리 쪽에 붙은 지저분한 꼭지를 떼어내며 대답했다.
지금은 두 분 다 고인이 되셨지만 상봉동에 살던 옛날에, 사이좋던 큰 올케언니와 어머니 사이에 균열을 낸 건 우리 집에 세 들어 부엌을 같이 쓰며 살던 경아엄마의 이간질이었다.
텃밭 이웃들이, 시동생이, 아니라고 이간질이 아니고 그냥 인사였다고 펄쩍 뛸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 내겐 이간질로도 들린다.
금쪽같은 내 며느리다. 자꾸 거들먹거리지들 마라.
내 새끼 내가 품는다.
김장을 빌미로 고부 사이 이간질하려는 자, 모두 유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