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끝과 시작이 있나요. 세상은 돌고 돌뿐인걸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인가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일이 보이는 곳에서 보다 강하기도 하지요.
나는 지난가을에 친구들과 함께 땅 아래 이곳으로 내려왔어요. 봄이 오면 땅 위로 내밀 건강한 싹을 준비하고 있지요.
여기서 우리는 훗날을 고민하지 않아요. 삶의 근심 시계는 돌고 돌다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올 테니까. 바람 같은 인생에서 오늘의 걱정이 내일이 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니까.
변수 많은 삶의 길을 미리 알고 걷는 이가 있을까요. 모두가 앞일을 모르고 가는 이 길에서 우리들은 지금을 즐길 뿐이에요. 웃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그대들이 춥다고 땅 위에서 발을 동동거릴 때 우리는 이곳에서 소꿉놀이 하며 꼬물꼬물 간지러운 첫 발아의 웃음을 짓지요.
그대들이 추위에 지칠 즈음이면 우린 파닥 팔딱 성장의 춤을 추고요, 그대들이 봄을 이야기할 때 우린 더 자란 싹의 꼬리를 늘이며 노래 불러요.
그러다 보면 훈풍 따라 봄이 날아와 우리들만의 지구를 흔들겠지요. 그러면 흙의 파동이 우리를 문득 밀어 올릴 거예요. 우린 그때 한꺼번에 까르르까르르 숨차게 웃으며 땅 위로 얼굴을 내밀겠지요.
연두색 짧은 머리는 양 갈래로 묶어야겠어요.
기다려요 그대들, 반갑게 마주 할 그 봄날을.